국민투표로 유럽연합 등졌다가 대가 치르는 영국인

내년 4월 탈퇴 협상 시작되면 ‘탈퇴 비용’ 규모 놓고 실랑이할 듯  

탈퇴 후에도 EU라는 공동시장에 접근하려면 해마다 비용 물어야

 

한국 소비자에게도 친숙한 유니레버는 프록터앤갬블(P&G), 네슬레에 이은 세계 3위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이다. 생산 품목은 식품, 음료, 비누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도 립톤티, 도브·럭스 화장비누, 샴푸 같은 유니레버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유니레버는 마가린과 같이 서양 사람들이 빵에 발라 먹는 스프레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다. 2015년 매출은 약 65조 원으로 이는 한국 최대 식품기업 CJ제일제당의 같은 기간 매출 약 13조 원의 5배다. 영국·네덜란드 합작기업인 유니레버는 특히 영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다. 이런 유니레버가 최근 마요네즈에서 샴푸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의 영국 내 판매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하고 있다. 유니레버의 이런 가격인상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에 이은 영국 파운드화의 약세에 따른 것이다. 영국이 EU에서 떠나기로 결정하자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는 영국인들의 구매력을 위협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영국 내 식품 도매상들에게 자사 제품 가격을 평균 1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자 영국 최대 식품 도매상인 테스코가 이에 반발해 지난 12일 자사 웹사이트에서 유니레버 제품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13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의 테스코 공급 상황은 성공적으로 해결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같은 날 유니레버는 마요네즈, 비누, 아이스크림 같은 제품의 가격 인상을 판매상들에게 요구한 것이 맞는다고 확인하면서, 수입하는 원료의 대금을 달러화로 결제하다 보니 비용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든다고 가격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과 맞물린다. 파운드화 하락은 수입업자들에게 즉각 영향을 미친다. 영국 기업들의 지난 8월 수입물품 비용은 한 해 전보다 9.3% 늘어났다. 그렇더라도 수입가격 인상이 소비자에까지 미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 미만에 그쳤다. 하지만 많은 영국인에게 자국 화폐의 하락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이전보다 비싸져 더 많은 영국인을 국내에 붙잡아두고 있다. 전자제품·포도주·승용차 같은 수입품은 계속해서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영국 내의 소비자 물가 상승과는 별개로, 영국은 지난 6월 국민투표로 결정한 브렉시트 때문에 앞으로 얼마만큼의 금전적 비용, 즉 탈퇴 비용을 지불해야 할까?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의 미지급 청구서들과 연금 채무 가운데 영국 몫을 감안하면 영국이 EU에 지불해야 할 탈퇴 비용은 200억 유로(약 25조 원)이다. 독일 경제 잡지 ‘비르트샤트프보헤(주간경제)’는 지난 8월 이 액수를 250억 유로로 더 높여 잡은 바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EU 본부의 일부 관리들은 이 두 수치조차 적게 잡은 것이라고 본다. 브뤼셀의 EU본부에서 브렉시트 관련 협상을 담당하는 미셸 바르니에와 그의 팀도 아직 영국의 탈퇴 비용 추정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탈퇴 비용에 관한 협상은 데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EU협약 50조, 즉 EU탈퇴 조항을 적용하기 전에는 시작되지 않는다. 메이 총리는 내년 3월 말까지 영국의 탈퇴 의사를 통보하겠다고 약속했다. 메이 총리가 탈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 그때부터 2년 기한으로 협상이 진행되는데, 돈 문제는 워낙 민감해서 영국의 탈퇴 비용이 협상 마감일까지 확정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내년 4월 일단 탈퇴 협상이 시작되면 EU는 “미지급액 가운데 영국 몫을 지불하라”고 압박하게 되고 영국은 EU 자산 가운데 자국 몫을 챙기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EU 전체의 미지급액, 즉 부채는 2015년 2180억 유로(약 270조 원)다. 이 돈은 고속도로, 다리, 유럽 내 가난한 지역의 경제개발 사업에 사용된 빚이다. EU가 중·동부 유럽으로 확장되면서 지난 15년간 EU 차원의 빚은 급속히 늘었다. 이 빚 가운데 영국 몫을 갚아야만 영국은 EU를 떠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브렉시트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될 EU 본부 내의 영국인 관리 1730명에게 퇴직 후 소득을 보장하는 EU의 590억 유로 규모 연금 부채 가운데 1730명 분을 영국이 떠안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EU 일각에서는 영국이 1730명 분 연금 부채뿐만 아니라 모든 EU 관리를 위한 연금 부채 가운데 영국 몫을 떠안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본다. 

지불을 재가하는 것과 청구된 대금을 지불하는 것 사이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영국은 2022년 또는 2023년까지 EU 예산에 돈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EU와의 이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단지 브렉시트 협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혼 후에도 EU라는 단일 시장에 접근하기를 원하면 영국은 EU 예산에 돈을 부어야만 한다. 유럽의회 예산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라이머 뵈게 독일 기민당 소속 국회의원은 단일 시장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국가는 공동의 항아리에 돈을 넣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런 식의 지불이 없다면 영국 대학생과 영국 대학은 EU 프로그램과 자금 지원에서 제외된다. 뵈게 의원은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그리고 여타 순(純) 지불국들은, 그들이 내부 시장(유럽연합)을 위해 청구서 대금을 지불하고 영국이 어떤 지불도 하지 않으면서 그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면서 “내부 시장의 회원이 되는 데에는 해마다 발생하는 계속적인 대금 청구가 있을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그는 수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약간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이유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종적인 대금 청구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EU 지도자들은 EU를 떠나는 데 대가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런가 하면 영국은 그 대가를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서로의 입장이 이처럼 엇갈리는 데다 엄청난 액수의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내년 봄 영국·EU 간 협상이 시작된다해도 그 과정은 매우 험난할 것이다.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통과시킨 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며 후회했던 수많은 영국인은 앞으로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도 흥분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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