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군 중 한 분인 정조는 ‘홍국영’이라는 사람을 늘 자신의 주변에 두면서 모든 정사를 처리하도록 했다. 그는 궁궐 내 숙위소에 머물면서 인사·행정·군사 등의 주요 현안들을 결정했다. 홍국영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조가 그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사도세자 때문에 죄인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쓰게 된 정조는 세손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반대파에 의한 돈으로 매수된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홍국영은 정조의 든든한 보호막을 자처했고 암살 위기에서 정조를 구해주었다. 정조가 왕이 된 후에도 홍국영을 곁에 두면서 중용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정조의 후광 속에 홍국영은 당대 최고의 실세로 떠올라 세도정치의 역사적 포문을 열었다. 그의 무소불위한 세도정치는 마땅히 대신들의 반발을 일으키고 정적들을 결집시켰다. 권력에 취한 홍국영은 술자리에서 정조를 토끼로 비하하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다가 결국 정조의 신임을 잃고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순실은 여러모로 홍국영과 닮았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 도움을 준 인연을 이용해 호가호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찌 보면 홍국영에 못지않은 권세를 휘둘렀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든든한 신임을 등에 업고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홍국영의 등용으로 정조의 개혁의지는 치명타를 입었고, 신임했던 최순실에게 속은 박 대통령의 치세에는 씻지 못할 오점을 남기게 됐다. 둘은 도움을 받아 은혜를 갚으려는 왕과 대통령의 선의를 악용한 공통점이 있다. 왕과 대통령에게 도움을 준 의도마저 의심받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임 이후 야당의 발목잡기에 걸려서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고 있던 박 대통령이 설상가상 최순실 사태를 맞아 허겁지겁 대국민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의 아이콘’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 참담함이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이 일로 지난 26일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7주년 추도식 분위기까지 망쳐놓았으니 착잡한 심정이 비견할 데 없을 것이다. 임기 4년차 친인척 또는 측근비리의 전철을 박 대통령 또한 뛰어넘지 못했다.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호시탐탐 정적의 허물이 나오기만을 노리던 사람들에게 최순실 사태는 그야말로 ‘호재 중에 호재’였다. 며칠을 굶다가 먹잇감을 찾은 ‘좀비’처럼 덤벼들고 있다. 비박계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탈당을 노골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침몰 직전에 놓여있던 당을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정권재창출에 빨간 불이 켜지자 ‘집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통령에게 “석고대죄하고 하야하라”는 비상식적 발언을 퍼부어댔다. 막말 뱉기로 유명한 한 전직 의원은 “엽기적인 그녀들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며 ‘탄핵 발의’를 부추겼다. 의원들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자제시켜야 할 제1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 ‘바지대통령’이라 폄훼했다. 

인격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그 수준으로 인정할 수밖에.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경고코자 한다. 저들이 훗날 권세를 잡았을 때 대통령 뒤에 숨어 최순실보다 더한 호가호위 행위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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