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고령 운전자…안전 ‘빨간불’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감소했으나 노인 교통사고는 되레 늘었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고령 운전자의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령 운전자 본인이 스스로의 운전 실력을 과신하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운전면허 발급·갱신 시 받는 적성검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요구된다.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인 운전 교통사고 70% 급증
신체기능 저하·운전능력 과신·시늉뿐인 부실 적성검사

# 지난 21일 오전 7시 30분쯤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의 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던 대형버스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었다. 이 대형버스는 반대 차선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3대를 잇따라 들이받은 뒤 주변 상가 건물을 부수면서 멈춰 섰다. 운전자 전 씨(71)는 경찰에서 “핸들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전 씨의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 지난 6월 24일 오후 5시쯤 부산 북구 화명동에서 한 상가 지하주차장을 나오던 승용차가 갑자기 편도 2차선 도로를 가로질렀다. 차량은 맞은 편 인도를 지나던 여중생 2명을 쳤다. 이들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운전자 이모(70)씨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봤다.

# 지난해 10월 10일에는 서울 소공동 한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서던 택시 차량이 주변 화단을 들이받더니 주차된 고급 승용차 4대를 연달아 충격했다. 사고 후 택시 기사(당시 75세)는 “운전을 40년이나 했는데 이런 사고를 내겠느냐”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영상 증거를 내놓자 본인 과실을 인정했다.

위와 같은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27%가 감소했으나,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오히려 4.8% 늘었다. 특히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는 69.6%로 급증했다.

노인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늘어나는 원인은 우선 신체·인지능력의 저하와 고령 운전자 스스로의 운전능력에 대한 과신이 꼽힌다. 

경찰청 관계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능력이 저하돼 민첩성, 순발력 등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며 “특히 야간이나 흐린 날씨, 복잡한 도심 환경에서는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개인별 신체기능에 적합한 안전운전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어르신 운전자는 스스로의 운전능력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아 안전운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증가하는 노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9월 말 ‘노인 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해 운전면허 갱신주기를 현재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현재는 65세 미만은 10년, 이상은 5년), 운전면허 갱신 때마다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 올해부터 65세 이상 버스 운전사의 경우는 3년 마다, 70세 이상은 매년 7가지 종류의 자격유지검사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서울 구로구 소재 버스 80대를 운영하고 있는 오모 대표는 “요즘 65세 이상 기사분들 잘 안 뽑는 경향이 있다”며 “나이가 많을수록 사고율 높은 데다 최근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까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지원하는 것도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허술한 적성검사 
‘시늉만…’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운전면허 발급·갱신 시 받는 허술한 적성검사라는 것이다. 1종 보통면허의 경우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이 검사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신체검사는 시력검사와 질병 보유 여부 진단 두 가지로 나뉘는데, 검사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이패스’급이다. 보통 3분 내외로 순식간에 끝난다.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종 면허는 이조차도 하지 않는다.

또 청력과 색약, 정신병력 등의 질병 보유 여부를 ‘스스로’ 진단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체크하지 않는 이상 알려지지 않는다. 신체검사를 받지 않고 의사의 진단서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한 건강검진내역을 대체해 제출해도 되지만 본인의 병력을 숨기려면 신체검사를 통해 감출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단, 치매·뇌전증 등으로 ‘6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있는 경우는 관계 당국의 시스템에 의해 분류돼 ‘수시 적성검사’ 대상이 된다. 이런 운전자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고, 3개월 안에 다시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65세 이상 수시 적성검사 대상자 711명 중 면허가 취소된 고령 운전자는 204명(28.7%)에 그쳤다. 

게다가 병력을 가지고 있지만 ‘6개월 이하’로 입원했거나 치매 판정을 받았지만 약만 먹는 초기 환자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도로교통공단 정의석 교수는 “신체검사는 형식적이고, 질병 보유 여부는 고령 운전자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교통 당국이 전혀 알 수 없다”며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운전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의사 소견서가 없으면 고령자 면허를 갱신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관련 당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라서 인권침해 논란이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경찰청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정신질환 운전자에 대한 의료정보 공유 방안을 추진했지만 인권침해라는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가 “안전운행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정보로 한정해 개인의 동의 없이 제공받으면 사생활 침해”라고 지적해 제동이 걸린 바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개인 의료정보를 다루는 문제에 대해 현재 의료계 자문을 받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건강상 문제로 운전할 수 없는 사람을 빠르게 선별해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건강검진이나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이 운전 불가능 병력을 파악하면 이를 선제적으로 운전면허 관리 당국에 신고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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