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극장 <속편2탄>

좀 있으니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스님, 왜 자꾸 등허리만 주무르셔요. 로맨스도 모르는 돌부처.”
“등허리가 아프다문서 뭔 잔소리여.”
“살이 문드러지겠어여. 아이, 잠깐만여…… 음, 이제 배를…… 아니 좀 위쪽을 부드럽게 매만져 줘요. 아아…….”
목소리로 보아 아마도 눈시울에 불그스레한 기가 돌던 젊은 보살 같았다. 주름살 투성이의 늙은 공양주 보살은 그녀의 엄마 같았는데도 마구 부려먹었다. 여자의 목청이 점점 달뜨는 것으로 보아 주지승도 손을 가만두고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청운은 좀 더 다가갔다. 하지만 문틈을 들여다보거나 창호에 귀를 갖다 대진 않고 기둥 한 구석에 기댄 채 숨을 가쁘게 소리 죽여 몰아쉬었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급기야 할딱거림으로 변했다. 저 어둠 속의 방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청운은 저도 모르게 야비한 오만가지 상상에 빠져 몸을 떨었다. 그런데 여자의 달아오른 목청과는 달리, 실망스럽게도 의외로 차분한 주지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이바구 한자리 해볼까. 얼마 전 경상도 진주에 자칭 석구봉 도사라는 자가 나타나 야단법석을 떤 사건이 있지엉?”
“으으음…… 비구니들을 농락하고 죽인 그 나쁜 놈 말이져?”
“실은 그 자가 내 친구여. 도반이었단 말이지.”
“아유 무서라! 지금은 아니겠져? 무서우면서도 왠지 실상을 제대로 알고 싶기도 해. 아, 좀 더 위쪽으로…… 가슴속이 답답해. 제발 더 세게…….”
손으로 여자를 요리하면서도 주지승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음, 진주에서 삼천포를 돌아 사천 쪽으로 가다 보면 봉명산(鳳鳴山)에 다솔사(多率寺)라는 아담한 절이 나와. 퇴락한 고찰이지만 옛날에 백범 김구 선생이나 만해 한용운 선사 들께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피신한 곳이기도 하지.”
“설마…… 그런 곳에서…… 아이, 간지러워…….”
“거기서 좀 외떨어진 곳에 여승들만 기거하던 암자가 있었지. 거기에 그놈이 나타나 분탕질을 한 거야.”
“사악한 놈! 아, 가슴이 아프다는데…… 왜 자꾸 배만 만져여. 좀 더 위쪽…….”
“허허, 능지처참을 해도 모자라겠지. 헌데 과연 그놈만 사악한 걸까?”
“무슨 소리예여? 그럼 또 누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신통술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하면 삿길로 빠져 지옥으로 든다고 하셨지. 그런데 청정한 마음으로 불도를 닦아야 할 비구니들이 신통술에 현혹돼 버렸단 말씀이야. 스스로 악도에 빠진 거지.”
“속임수를 썼으니 속은 거잖아여?”
“물론 축지법이니 축귀술 따위의 술법을 진실인 양 꾸민 놈도 나쁘지만, 부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그런 초능력 미신에 홀린 여승들에게도 잘못은 있지.”
“사형당한다고 하더군여. 쫌은 불쌍해. 아아, 가슴이 답답하댔더니 쌩까고 배꼽만 만지더만 이젠 아래로 내려가네. 의뭉스러워…….”
“이게 바로 중생제도여.”
“죽이고 싶어, 죽고 싶어.”
“사필귀정이지. 지금은 모두가 석구봉을 악마라고 지탄하지만 원래는 나름대로 멋이 있고 머리가 비상했어. 그런데 한국에서 불교 진리가 잘못 실행된다면서 괴로워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 땅에서는 종교 진리보다는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거든. 정치 모리배들이 하는 꼴을 보곤 욕을 퍼붓곤 하더니만 제풀에 밀교로 빠져버린 거지.”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쪽쪽 빠는 소리…….
“음, 밀교에 대한 오해가 많지만, 사실은 불교의 가장 높은 단계야. 인간에게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성욕을 단련해 일시적인 육체의 쾌락을 넘어 정신의 기쁨과 해방을 얻자는 거지. 성욕 속의 자연 에너지는 지렁이, 파리, 메뚜기, 암캐, 벼룩, 인간 따위의 생존 원력이야. 잘 활용하면 부처가 될 수도 있지만 삿되게 낭비하면 사망이겠지.”
“아, 그래도 뭔가 신비스런 능력을 가졌으면…… 아아!”
“물론 초능력을 얻으면 좋지. 나도 신통력을 갖고 싶어. 하지만 무엇보다 죽음과 삶을 동시에 보는 수행이 먼저고 신통력은 그 결과야. 본말이 전도되면 대가리를 땅에 박은 듯이 우습지. 그 친구도 수재였지만 진리의 연꽃보다는 정욕의 초능력을 추구하다가 그런 꼴이 되었겠지. 하긴 얼마나 갑갑했겠어. 중으로 살기도 참 힘들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보다도 못한 게 요즘 인간들 같으니…… 자기들이 못하니 중들에게 투구 같은 걸 씌워 놓고 욕망과 싸우라는 꼴이지.”
“음, 하아…….”
“종교나 국가의…… 과대망상을 받아준…… 흠, 신도들이나 국민이 더 문제라구.”
“헛소리는 그만 둬여! 아, 좀 더…….”
“요 암캐 같은 년. 내가 부처 성님의 흉내를 내면서까지 해탈 법문을 해주는데도 여직 육신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는군.”
“흥, 정욕에도 연꽃의 꽃술이 떨리는 기쁨은 있어여. 스님, 댁은 왜 매만져 주기만 하는 거예여. 혹시 고자가 아니에여?”
“흠흐흐흐…… 요것이 또 색즉시공의 진리를 오염시키려는군. 그럼 어디 한번 맛을 보여 줄까, 응?”
“아아, 별안간 흉포한 맹수 놈처럼 변하면 어쩌라구여. 아으흥…….”
청운은 입 속에 고이는 침을 꼴깍 또 꼴깍 조심스레 삼키며 어두운 방의 내막을 상상해 보았다. 안타까움에 겨운 청춘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
바로 그 순간 청운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감미롭고도 안타까운 회상에서 깨어났다.
순간 여자가 두 손바닥으로 청운의 얼굴을 감싼 채 부드럽게 키스하다가 별로 반응이 없자 입술을 꽉 깨물어버린 것이었다.
“왜 이러세요?”
청운이 말하느라고 입을 열자 곧바로 부드럽고 따뜻한 혀가 침입해 모든 언어를 막고는 미꾸라지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눈을 감고 그 쾌락 속 혹은 아쉬움이 남았던 추억 속의 장면에 잠겨버리고 싶은 듯했는데……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곤 상대의 젖어든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 숫총각이니?”
여자가 입귀에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청운은 자신이 숫총각인지 뭔지 알 수 없었다. 선감원에서 당한 일로 인간의 진실과 순수가 훼손당한 것에 비하면 숫총각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숫총각 딱지는 바보 딱지…… 왜 그런지 아니?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걸 바치려 하면 바보가 되기 때문이지. 호호…….”
청운은 갑자기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여자는 깜짝 놀란 듯하더니 문득 가만히 있었다. 청운은 이미 그녀 스스로 반쯤 열어 놓은 블라우스를 헤치고 허연 가슴을 만지다가 거무스레한 유두를 발작적으로 빨아댔다.
어느덧 여자는 알몸뚱이가 되어 꿈틀거렸다. 청운이 격정을 못 이겨 성난 수소처럼 덤비자 달뜬 여자는 의외로 할딱할딱 숨을 고르면서 분별심을 보이려 했다. 
“자기야, 난 천천히 길게 하는 게 좋아. 이 세상이 끝나도록…….”
하지만 청운은 멈추지 않았다. 격렬한 운동 끝에 사정을 한 얼마 후 그의 눈에서는 왠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그 눈물을 핥다가 바로 눈 아래쪽의 파르스름한 점에 입술을 댄 채 그의 상체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보통 인간을 넘어 초인이 되어야만 해.”
청운은 혼란 속에서 마치 목각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상한 꿈속을 지나온 것만 같아. 지금은 원래대로 늙은 아줌마인데 아깐 왜 매력적인 아가씨처럼 느껴졌을까? 내가 미쳐 발광했다 치더라도, 그건 너무 우습고도 추악한 짓이었어. 마치 마녀의 요술에 홀린 듯 몽롱해서…….’
청운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새하늘교 교인들은 자신들의 목표인 ‘신인’이 되기 위해서는 설혹 최음제나 흥분제뿐만 아니라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는 엄혹한 사실을.
청운과 달리 여자는 오히려 만족감과 에너지를 얻은 활기찬 모습으로 그를 끌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주눅이 든 청운의 눈엔 그녀가 일면 초인처럼 비치기도 했다. 
전도 활동에 열을 올리던 그들은 땅거미가 내릴 무렵 마침내 창신동 빈민가 입구에서 술 취한 노숙자 한 명을 수확한 후 회당으로 귀환했다. 

천령탑 (天靈塔)
낙엽 흩날리는 스산한 계절도 어느 결에 지나가고 겨울이 왔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린 어느 날, 청운은 동대문 회당을 떠나 아차산에 있는 본당으로 가게 되었다.
예상에 없던 갑작스런 일이었다. 낡아빠진 차를 타고 답십리를 지나 눈 덮인 중랑천을 건너 군자동을 넘어서자 허허벌판 저 멀리 아차산이 보였다.
‘아, 저곳이 바로 그 야릇한 전설이 깃들었다는 산이구나.’
청운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언젠가 낡은 만화책에서 본 얘기를 떠올렸다.
이조 명종 때 홍계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점쟁이가 있었다고 한다. 족집게처럼 용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그의 집엔 늘 점을 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힘이 없어 억울하게 당한 무지렁이부터 아픈 사람, 도둑맞은 사람, 근심 많은 아낙네들에 이르기까지 속시원한 말을 들어보려고 찾아드는 사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중에는 궁중으로까지 소문이 퍼져 마침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정책을 내걸고 나라를 열었던 조선의 임금으로서는 그런 점쟁이를 혹세무민하는 무리로 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명종은 어명을 내려 홍계관을 잡아들인 다음 쥐가 든 상자를 하나 내놓고 물었다.
“네가 용하다니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맞혀 보거라. 만약 틀리면 얕은 재주만 믿고 세치 혀를 놀려 백성을 속인 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니라.”
추상같은 어명이 떨어지자 골똘히 생각하던 홍계관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쥐가 들어 있는 줄로 아뢰옵니다.”
임금은 상자 안에 쥐가 들어 있는 것을 알아맞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를 듣고 판단할 수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명을 내렸다.
“그렇다면 상자 안의 쥐가 모두 몇 마리인지 말하라!”
생각에 잠겼던 홍계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열두 마리의 쥐가 들어 있는 줄로 아뢰옵니다.”
“열두 마리라고 했느냐?”
“그렇사옵니다.”
“네 이놈! 상자 안에 쥐가 들어 있는 것은 맞지만 열두 마리가 아니라 암수 두 마리이니라.”
상자를 여니 과연 두 마리의 쥐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이놈!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여 혹세무민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죽을죄를 졌사옵니다.”
불같이 화가 난 명종은 홍계관을 사형시키라고 명했다.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쥐 중에 암놈이 새끼를 낳은 것은 어명에 따라 홍계관이 참형을 당할 장소로 옮겨졌을 때였다. 신하로부터 암쥐가 열 마리의 새끼를 낳아 상자 안에 홍계관의 말대로 쥐 열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는 보고를 받은 명종은 탄복을 했다. 뱃속에 들어 있는 쥐새끼의 숫자를 귀신이 아니고야 어떻게 알아맞힐 수 있단 말인가. 임금은 즉시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을 내렸다.
홍계관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려던 장소가 바로 아차산 밑이었다. 어명을 받든 산하가 급히 말을 몰고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어명이니 사형집행을 중지하라.”
망나니는 선뜻 칼을 내려치지 못하고 휘두르고만 있었다. 이때 어명을 받든 신하가 달려오며 무엇인가 소리를 지르자 망나니는 집행을 늦추는 것을 책망하는 줄로 생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문책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망나니는 즉시 홍계관의 목을 향해 칼을 내려치고 말았다. 오해로 인하여 한 순간 훌륭한 점쟁이의 목이 달아나고 만 것이었다. 
“아차!”
모두가 안타까워했지만 이미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 산을 아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참 안됐어. 한 번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다니!…… 왕의 한 마디에 운명이 달라져 버리는 사람들…… 신도 아닌 사람이 제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같은 인간의 삶을 마구 조져 놓은 곳은…… 바로 지옥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아. 만일 내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선감원에 안 갔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엄마가 사이비 종교에 홀리지 않았다면…… 아, 홀린 엄마가 잘못인지, 홀린 그 노인이 나쁜지 아리송해지는군. 그나저나 대체 엄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새하늘교에 들어온 게 과연 바른 길인지도 아리송해. 본당에 가면 아무래도 찾아보는 데 유리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차 하는 순간 너도 끝장날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만 해. 악마들의 소굴일지도 모르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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