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신’ 부합한다는 金, ‘트로이 목마’ 되나?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일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신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야기된 국정 혼란을 ‘책임총리’ 카드로 돌파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김병준 교수는 ‘원조 친노’ 인사다. 이는 곧 야당이 총리 후보자를 반대할 명분이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됐음을 의미한다. 김 내정자 역시 “총리 지명 수락은 노무현 정신과 부합하는 것”이라며 포부를 내비쳤다. 국회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책임 총리’로서 국정 농단 사태를 타개하는 데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평가다. 한때는 ‘노무현의 남자’였으나 이제는 박근혜 정부의 ‘구원투수’가 된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원조 친노’이면서 정치색 옅어…난국 타개할 적임자 평가
-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후임으로 유력 거론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일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의 구원투수로 선택한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는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사 열할을 맡으며 ‘노무현의 남자’로 통하던 야권 인사다.

‘지방분권’... 盧와는 ‘인연’ 朴과는 ‘악연’

경북 고령군 출신인 김 내정자는 학식과 경륜을 두루 갖춘 합리적 인사로 꼽힌다. 그는 대구상고와 영남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TK(대구·경북) 인사다. 한국외대 대학원과 미국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각각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국내에선 강원대와 국민대에서 행정학 교수를 지내며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정치행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교수로서의 역량도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델라웨어대 유학 시절인 1984년 사회과학 분야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았으며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재직 시절에도 지방분권 이슈에 대해서는 최고 권위자의 한 명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김병준 교수의 ‘정보와 정책’ 강의를 수강했던 한 국민대학교 학생은 “김병준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김병준 교수님을 존경하게 된다”며 치켜세웠다.

무엇보다 김 후보자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단연 ‘지방분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을 맺은 계기도 ‘지방분권’ 덕분이다. 김 내정자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세운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특강을 맡은 것이 계기였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시절에는 캠프 정책자문단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후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 간사, 정부혁신지방분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거치며 노 전 대통령 퇴임까지 지척에서 보좌했다. 행정도시와 종합부동산세, 동반성장 정책 등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 또한 김 내정자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와 이별 수순 與 와도 거리 둬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과는 그동안 ‘악연’일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당시 한나라당과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한나라당은 2006년 7월 교육부총리에 오른 김 내정자를  논문 표절 의혹이 있다며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집중 포화를 가해 13일 만에 낙마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 김 후보자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전력을 다한 ‘행정수도 이전’ 정책 역시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혔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으로 이전 논의가 무산됐다.

이처럼 ‘노무현의 남자’를 자처했던 김 내정자지만 정작 현재 야권 주류인 친노(친노무현) 진영과는 좋은 관계가 아니다. ‘원조 친노’이자 노 전 대통령의 ‘책사’였던 김 내정자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부터 친노와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김 내정자는 2012년 총선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를 향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나아가 한 칼럼에는 “(문 전 대표를) 실제로 잘 모른다. 이를테면 경제·산업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역량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고 쓰기도 했다.

특히 김 내정자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거국내각을 이야기했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여야 합의로 총리를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두 그 진정성을 의심했다”면서 야권을 간접 비판했다.

그렇다고 김 내정자가 여권과 가까워진 것도 아니다. 김 내정자는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이후 열린 당선자 총회에 참석해 ‘20대 국회 새누리당에 바란다’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국가 운영체제는 완전히 고장 난 자동차” 라면서 “국정 운영을 보면 대통령제, 국회, 행정부가 모두 고장 났다. 모든 대통령이 실패해서 임기말에 만신창이가 돼서 나가는 국가는 어디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의 진박(진짜 친박) 논쟁은 국민이 볼 땐 기가 막힐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친노무현)계와 거리를 두고 계파 패권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하자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한 러브콜을 보냈다. ‘계파 정치’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현 정치권에서 계파색이 옅은 김 내정자는 자당의 정치색을 지울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 실제로 국민의당에선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후임 비대위원장으로 김 내정자가 유력하게 거론됐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김 신임 총리의 영입 추대를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다.

특히 김 내정자가 ‘원조 친노’이면서 정치색이 옅다는점 은 김 내정자에 대한 평가나 적정성과는 별개로 앞으로 있을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 동의안에 야당이 반대할 명분도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정치권 인사는 “야당은 공히 노무현 정권의 계승을 주장해왔다”며 “노 정권 정책을 만든 핵심 브레인이었던 인사를 비토한다면 그걸 부정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야당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거국내각 구성을 요구한 뒤 여권이 이를 곧바로 수용하자 공식 거부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어차피 인선 추천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야권 인사를 발굴해서 지명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 역시 “김병준 내정자와 같은 쇄신 카드는 국정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김 내정자는 평소에도 바른말과 칼 같은 조언을 하는 스타일로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김 내정자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에 대해)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대통령의 당적 보유가 지속적으로 국정 발목을 잡는 경우에는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건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총리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고 박 대통령에게 경제·사회 정책분야를 전부 맡겨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정치권은 김 내정자의 임명동의 비준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경우 국정 방향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우선 김 내정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줄곧 반대의견을 유지했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에 대해서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김 내정자는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서도 “불가능하다”며 현 정부의 논리와 대비되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일각에선 김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에 공감하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고 평가한다. 김 내정자의 저서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에서 그는 “복지만으로는 성장하지 못한다”며 “저성장의 아픔이 고스란히 서민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성장 없는 복지는 없음을 강조했다.
 
주요 약력

▲1954년 3월26일 경북 고령 출생 ▲72년 대구상업고교 졸업, 76년 영남대 정치학과 졸업, 7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석사, 1984년 미국 델라웨어대 정치학 박사 ▲1986∼2004년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지방자치특별위원회 위원장 △전국사립대교수협의회연합 공동회장 △새천년민주당 노무현대통령후보 정책자문단 단장 △대통령 정책실장 △제7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부총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공공경영연구원 이사장 △제2대 이투데이 회장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