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 ‘정보력’ 없으면 당한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인 세 명이 잇따라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사망 사유는 모두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한국인 ‘워홀러’였다. 워홀러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외국에 가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건 이후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부정적 실태가 이슈화된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한국 청년들이 별 다른 개선책 없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외국에 나간 한국인들의 삶은 어떨까? [일요서울]에서는 각자 다른 ‘워홀러’ 생활을 경험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컨드 비자를 위한 농장일 만이 

워킹홀리데이의 해답은 아냐

K(26·남)씨는 어학과 돈벌이를 목적으로 2015년 호주 브리즈번에 머물렀다. 그는 1년가량 농장에서 워홀러로 생활을 했으며, 자세한 정보와 지인의 도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워킹홀리데이에 뛰어들었다.

K씨는 영어권 나라로 가는 터라 당연히 어학실력이 늘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엔 한국인들이 대부분이었고, 노동환경마저 열악해 서로 간의 소통 또한 부족했었다고 말했다.

호주 브리즈번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들

꿈만 같았던 워킹홀리데이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K씨의 최종 목표는 농장에서 일하며 세컨드 비자를 받아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용주가 소유한 농장용 셰어하우스에서 주당 700불 이상을 주거비로 지불하는 등 번 만큼 쓰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K씨의 주당 임금은 평균적으로 700~800불선으로, 고용주는 탈세를 위해 워커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했다. K씨는 임금을 숙소비로만 90% 이상 소모했으며, 고용주의 탈세로 인해 세컨드 비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까지 놓이게 됐다.

결국 K씨는 비슷한 처지의 한인들과 함께 고용주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나가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와 하는 수 없이 다시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K씨를 포함한 이들은 호주 워홀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고, 생활비로도 부족한 임금을 모아 티켓을 마련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K씨는 인터뷰 중 “그때 당시 생각나는 건 오직 가족뿐이었다. 한국 공사현장을 가도 그보다는 편했을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다양한 정보 창구

잘 이용해야

K씨의 경험과는 달리 대학생 김수원(25·남)씨는 워킹홀리데이를 추천한다. 그는 브리즈번에서 생활을 했고, 맬버른에 있는 한 농장에서 일을 하며 워킹홀리데이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세컨드 비자를 받아 1년 3개월간 고용주 밑에서, 하루 평균 6~7시간가량 일을 했다. K씨와는 다르게 숙소비는 주 95불 정도로 저렴했다. 김 씨는 비교적 좋은 생활환경과 복지혜택 등을 받아 워킹홀리데이에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다.

기자는 김 씨에게 K 씨의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한국에서도 불법 일자리를 얻으면 열심히 일해도 제대로 임금을 못 받듯이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할 때부터 사전조사는 필수”라며 “여행을 준비할 때도 본인이 가고 싶은 장소, 먹고 싶은 것 등 목표와 계획이 있듯 워킹홀리데이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요즘은 포털 사이트가 잘 돼 있어 기본적인 검색 능력으로도 블로그 또는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서칭 능력이 부족하다면 워킹홀리데이협회서 회원들에게 진행하는 설명회, 알선 등을 이용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많다”고 말했다.

맬버른 농장에서 생활한 김수원씨 (오른쪽)

‘워킹홀리데이’

농장만이 해답 아니다

김경태(25·남)씨는 한국에서 요리사로 일했으며, 현재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전문매장 주방 보조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하루 5~6시간 정도 근무를 하며 식사를 제공받는 등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씨 주변 동료 중 일부는 한인이 운영하는 개인 업장에서 일하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생활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호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강도가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이렇게 일을 할 바엔 한국에서 일하고 만다”라는 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또, 같은 한국인이 운영하는데도 고용주가 “한국에서도 이렇게 일하지 않냐”며 부당한 대우를 정당화한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김 씨는 한인이 운영하지만 기업에서 파생된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과 임금 착취는 경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동료들의 생활에 대해 “한인이 운영하는 매장에서 부당대우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일을 하기 전 면접 시 고용주와의 컨택을 통해 노동환경, 처우 등 세밀하게 알아보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김 씨는 “‘워홀러’ 대부분이 농어촌 농장 또는 육가공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세컨드 비자를 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뚜렷한 목표 설정보단 일반 ‘워홀러’보다 오래 있으면 어학, 돈, 인적네트워크가 커질 것이라는 허황된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기에 본래 워킹홀리데이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외국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것과 어학 능력 상승, 여가 시간을 이용한 여행으로 외국 문화를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농장과 세컨드 비자만이 워킹홀리데이의 해답은 아닐 수 있다”고 전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오페어(au pair)’새로운 출구

많은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를 지향하는 상황에 ‘오페어(불어로 동등하게 라는 뜻)’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오페어는 외국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임금을 제공받는 문화교류 시스템으로 미국, 유럽,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시행중이다. 대부분의 워킹홀리데이에 비해 임금은 적지만 숙식이 해결되고 자유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어 여행과 어학을 목표로 삼는다면 오페어를 노리는 것도 추천 할 만 하다. ‘오페어로 해외 1년 살아보기’의 저자 양호연(27·여)씨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오페어가 워킹홀리데이보다 경제적이고, 한국에서 떠나기 전 고용주와의 화상통화를 통해 모든 처우에 대해 논의를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며 “일정 시간 동안만 아이들을 돌봐주고, 그 대가로 숙식과 일정 급여를 제공받으며, 자유시간에는 어학공부와 여행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단순히 계산하면 오페어는 워킹홀리데이보다 지출을 1000만 원 가량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오페어로 해외 1년 살아보기' 저자 양호연씨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