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더욱 뚜렷해졌다. 작금의 엄중한 상황에서 수권정당을 자처하는 제1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오전에 정국 수습을 위해 청와대에 단독 영수회담을 제의해놓고 오후에 이를 일방 취소하는 어이없는 행태를 보였다. 청와대에 대한 능멸도 이런 능멸이 없지 싶고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어 보인다. 하긴 이 같은 일이 새삼스럽지만도 않다. 최순실 파문이 일어나자 야당은 ‘거국내각’을 내세웠다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수용하자 다른 조건을 붙이는 등 그동안 수차례나 입장을 바꿨다. 이런 ‘리더십’으로는 정국 수습이 불가능할 뿐더러 이런 야당에게 행정 권력을 맡길 수는 더욱 없을 게다.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술 더 떠 매우 위험한 주장을 했다.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하는 ‘비상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운동권 세력인 정체불명의 진보좌파단체들을 참여시켜 대통령을 퇴진시킨 후 이들에게 대선일정 등 모든 현안을 맡기자는 논리다. 초헌법적인 발상이다. 이날 그는 지난 총선 때 한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 발언은 ‘전략적’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호남을 이용했다는 고백이었다. 

‘비상기구’ 역시 그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박 대통령을 퇴진시키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 내년 대선에서도 ‘전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정치하는 사람에겐 ‘적’과 ‘도구’ 딱 두 부류의 인간이 있을 뿐이라더니 문 전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량한 국민은 물론이고 불순세력까지도 ‘도구’로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정국 주도권을 맡겨도 되겠느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는 지난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로 인한 대통령 하야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 이후 얼마나 고통스러운 혼란이 일어났던가. 그 같은 경험을 또 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정말 하야라도 했을 때 선거 일정상 졸속으로 뽑은 대통령이 어떤 문제라도 일으키고 하면 또 하야하라고 아우성칠게 불 보듯한 일이다.

야당은 행정부의 모든 권한을 입법부인 국회에 넘기라고 한다. 그렇게 넘기면 국회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는 이미 그들이 지난 수년간 정쟁만을 일삼아 온 사실을 똑똑히 목도했다. 국회선진화법의 그늘 속에서 그들은 민생을 저버리고 오직 대통령의 발목만 잡았다. 지금도 전대미문의 정국 혼란 속에서 그들은 당리당략에만 빠져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의 영수 회담 무산 과정을 보면 공조는커녕 자기네끼리 싸우는 꼴사나운 모습만 각인시켰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과 공무원인 지자체 장이 시위에 나와 국민을 선동하는 행위 역시 헌법 유린이다. 국민의 분노를 이용하지 말고 국민의 뜻이 하야라고 믿는다면 국회는 탄핵 절차를 밟아야 옳다. 헌법기관이 헌법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헌정파괴이고, 또 다른 ‘국정농단’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박 대통령의 투철한 안보의식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충격에 맨 먼저 한 말 “전방은요?”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 위협이 잠시 멈춰지고 있는 이유를 짐작하는 바다. 이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이 덜컥 하야카드라도 던진다면 이야말로 대통령 무책임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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