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한민국의 입헌정치(立憲政治)가 헌정사상 세 번째 위기로 치닫고 있다. 첫 번째 헌정 위기는 1960년 4.19 혁명에 의한 이승만 대통령 하야로 빚어졌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참가자들이 경찰의 발포로 200여명 학살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헌정이 중단되었다. 두 번째 위기는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대통령 궐위로 발생했다. 세 번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100만(경찰추산 26만) 시위대의 분노와 야당의 정치공세로 빚어지고 있다. 
 
피 흘려 쟁취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헌정질서는 최순실 사태로 혼돈에 빠져서는 아니 된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자유민주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자랑스러운 아시아 민주국가의 헌정질서가 탐욕스런 한 여인의 국정농단과 야권의 정권쟁탈 투쟁으로 마비된다면 어렵게 세워놓은 민주헌정은 후퇴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못지않게 국가적 해악이며 수치다. 
 
최순실 정국에 대한 수습책으로는 박 대통령의 ‘즉각 하야’, ‘과도내각’, ‘대통령 2선 후퇴와 중립 거국내각’, ‘여야가 추천한 총리에게 대통령의 모든 권한 위임’, ‘탄핵’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대안들과 관련,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순실 사태와 박 대통령 거취문제를 냉철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최순실 국정농단은 아직 사법당국에 의해 조사 중임을 간과해선 아니 된다. 최 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사법당국에 의해 명료하게 먼저 밝혀진 다음 박 대통령 거취문제를 결정하는 게 순서이다. 하야, 거국 내각, 탄핵 등을 외치는 민심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성난 군중은 흥분하며 극단적 처단을 요구, 법치에 역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죄형법정주의 국가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이고 어떤 형벌을 주는가는 법률에 의해서만 정할 수 있다. 법률에 의해 죄상이 판결되기 전 대통령의 하야나 거국 내각으로 몰고간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를 거부하는 거나 다름없다. 인민재판과 같다. 박 대통령의 거취문제는 범법사실이 사법당국에 의해 밝혀진 후 결정되어도 늦지 않다. 분노한 군중과 그에 편승한 야권의 정권쟁취 투쟁에 휘둘려 대한민국의 숭고한 법치주의가 파괴되어선 아니 된다. 
 
둘째, ‘박 대통령 즉각 하야’, ‘과도 내각 구성’ 등은 정치 사회 경제적 혼란을 빚어낸다는 데서 바람직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51.6%를 얻어 당선되었다. 헌정사상 41년 만에 처음 과반수를 확보한 대통령이다. 투표의 과반을 얻은 대통령을 사법당국의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의혹만으로 끌어내린다면 쿠테타나 다름 없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정권을 탈취한 것도 아니고 반역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라는 데서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최순실 씨와 박 대통령의 범법사실이 사법당국에 의해 밝혀지기도 전에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앞으로 대통령은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야당이 하야를 요구할 때마다 물러나야 한다. 헌정 중단과 걷잡을 수 없는 정치·사회·경제적 혼란을 자초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 상태에 빠져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셋째, ‘박 대통령 하야’나 ‘거국내각 구성’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입헌국가이므로 대통령의 거취는 헌법에 기초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국회에 대통령 탄핵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치권은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응징이 야권의 정권 획득이나 여권의 당권 쟁탈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랑스러운 아시아 민주국가답게 분노를 가라앉히고 법대로 냉철히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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