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잇는 ‘트럼프 대통령’ 출현…일찌감치 예견

유권자들은 현직 대통령과 다른 인물을 차기 대통령으로 원해
트럼프, ‘오바마와의 차별화 전략’ 효과 발휘해 당선으로 연결

미국 제 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미국 안팎에 많다. 이 대목에서 지난 1월 일찌감치 그의 당선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전문가 분석이 새삼 눈길을 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2009년 1월 백악관에 들어가 2년간 백악관 수석고문을 지낸 오바마의 책사(策士)였다. 현재는 시카고대학 부설 정치연구소 소장이며 ‘신자(信者) - 정치에서 보낸 40년’이라는 책의 저자다. 그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한 선거 컨설턴트다. ‘미국 정치 9단’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액설로드가 일찍이 지난 1월 25일 뉴욕타임스에 ‘트럼프의 오바마 이론’이라는 주목할 만한 글을 발표했다. “오바마를 보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가 이 글의 전제이자 결론이다. 

일리노이 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으로 일하면서 대통령 출마를 검토하고 있던 2006년 하반기, 오바마는 액설로드에게 그의 정치 전망과 관련한 전략을 짜 달라고 부탁했다. 액설로드의 정치 분석은 여러 요인을 감안하지만, 그 뿌리에는 그가 정치 평론가 겸 선거운동 컨설턴트로 수십년간 일하면서 개발한 독보적인 이론이 있다. “퇴임할 현직 대통령을 보면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지 예상할 수 있다”가 그 이론의 핵심이다. 액설로드 이론에 따르면 현직이 출마하지 않는 미국 대통령 선거는 퇴임할 현직의 스타일과 개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좌우된다. 유권자는 좀체 그들이 현재 가진 것의 복제품을 원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교정책(矯正策), 즉 떠나는 대통령에게 없다고 대중이 판단하는 자질을 갖춘 후보를 찾는다. 젊고 정력적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신세대 지도력’을 부르짖으며 할아버지처럼 졸고 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계승했다. 청교도 이미지를 풍겼던 지미 카터는 ‘국민만큼 착한 정부’를 제시하면서 현직 대통령 제럴드 R. 포드에게 이겼다. 인기가 높은 데다 영웅시되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뒤를 이으려 출마했던 조지 H. W. 부시는 그 자신의 카리스마·우위(優位) 결여를 미묘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했다. 

액설로드는 2006년 대통령 출마를 꿈꾸는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정치인은 2008년 투표용지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다”며 “그의 이름은 조지 W. 부시”라고 오바마에게 귀띔했다. 2008년 선거전이 시작되자 많은 미국인과 대부분의 민주당원은 부시를 경솔하고 호전적이며 말썽쟁이라고 보았다. 유권자의 안중에는 빠르게 변하는 세계의 요구와 기회 따위는 없었다. 부시의 대통령직 수행은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이라크 침공 결정에 의해 심판받게 됐다. 오바마 상원의원은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는데, 그 바람에 그는 민주당 내 대부분 경쟁자들과 차별화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오바마의 프로필, 기질, 접근법이 여기저기서 공격 받고 있던 퇴임 예정 대통령과 더없는 대조를 이뤘다. 다사다난했던 7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유권자의 태도가 그 후임자의 선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액설로드는 봤다. 공화당 진영은, 건강보험 개혁에서 이민, 동성애자 권리, 기후 변화까지, 통치방식과 진보적 의제를 둘러싼 오바마의 운동권 식(式) 태도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구체적인 개별 사안도 사안이지만, 많은 공화당원은 2008년 오바마가 선거전에서 그토록 재미를 보았던 그의 자질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제 오바마의 숙고(熟考)는 머뭇거림, 인내는 약함으로 받아들여졌다. 오바마가 관용을 강조하면서 증대되는 미국의 다양성을 뜨겁게 수용하자고 국민에게 촉구하면 공화당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다. 그들은 빠르게 변하는 미국 인구 구조를 의심과 분노 속에 바라본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인보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인구, 즉 히스패닉이 더 많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의 외교에 대한 강조는 양보로 해석된다. 이러니 공화당 대권주자 가운데, 험담과 독설을 입에 달고 살며, 권위주의적이고, 가차 없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트럼프보다 오바마의 반대로서 더 나은 사람이 없다. 

트럼프의 호언장담에는 미묘함이나 복잡성이 개재될 여지가 없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공격으로서 그의 불관용을 자랑스러워하며, 멕시코에서 중국 시리아 이라크까지 세계를 굴복시키겠다고 유권자에게 약속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고 개인의 삶도 나아질 전망이 별로 없다고 믿는, 빠르고 무질서한 세상의 변화에 불만을 품은 미국인에게서 트럼프는 팬을 확보했다. “세세한 정책 따위는 아무려면 어때”라고 트럼프는 큰소리쳤다. 굳건한 의지력을 발휘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방약무인하고 강력한 트럼프보다 누가 상황을 더 잘 바로잡을 것인가? ‘그것은 내게 맡겨라’고 트럼프는 말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언론과 정치 엘리트에게서 트럼프가 숱하게 욕을 먹는 사실도 트럼프 지지자의 열정을 북돋우었을 뿐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촌스럽다며 꾸준히 트럼프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경멸당한다고 느낀다. 트럼프 진영에서 보기에 트럼프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며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전통적 정치인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사실관계가 틀렸다며 트럼프의 발언을 지적하는 사람들과 시민 여론이 어떻다며 떠드는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퍼붓는 욕설은 트럼프가 보기에 흔해 빠진 제도권의 헛소리일 뿐이다. 가차없이 신랄하고 많은 이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데다 통치와 정책수립의 세세함 따위를 우습게 보는 트럼프야말로, 불가사의하게 침착하고 신중한 성품으로 비판자들을 돌게 만드는 현직 대통령 오바마와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액설로드의 이러한 분석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내내 미국 유권자에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찍는다면 오바마에게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클린턴=오바마’ 등식을 부각했다. 오바마는 임기 말에도 높은 인기를 유지하는 등 대체로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선거에 임한 유권자 사이에서는 ‘허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틈을 비집고 트럼프는 짐짓 스스로를 ‘강력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고, 그 전략이 결과적으로 먹혀들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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