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개혁을 통한 인적청산 발언 이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일정의 상당부분을 비주류 인사들을 챙기는데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최대표는 물갈이론으로 불거졌던 비주류 중진들의 반발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최대표가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낙점했던 박근혜 의원을 이재오 사무총장의 반대로 끝내 포기하는 ‘수모’를 감수한 것도 이같은 당내 분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박의원 문제는 서청원 전대표와 무관치 않다는 후문이다. 최 대표가 결국 서 전대표를 극비리에 찾아 지원을 요청한 것도 현 당내 분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고심으로 읽혀진다. 최병렬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서 전대표와 극비리에 회동했다. 최 대표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이날 점심 회동은 총선 공천문제 논의가 핵심을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대표가 대표경선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당내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날 회동은 정국향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정가에서는 양 진영간 의견 조율을 통해 공천문제와 관련한 서 전대표의 지분 보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서 전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인선 리스트를 제시하면 이를 적극 배려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최 대표도 공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최 대표의 한 측근은 “두 사람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기 위해 분란의 불씨를 안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국대응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서 전대표의 한 측근은 “최 대표가 공천을 앞두고 당내에서 제기되는 ‘사당화 논란’에 대한 부담을 크게 가진 것으로 보였다”며 “서 전대표는 당내 후보경선에서 국민과 당원비율을 9:1로 하려는 방침이나 지구당 폐지 발표 등이 너무 일방적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단 최 대표가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터놓은 만큼 서 전대표와의 의견 조율은 갈등을 무마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관측했다.정가 일각에서는 공천밑그림에 대한 두 사람의 교감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최 대표는 당 내 다수를 이루는 민정계 보수파 등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물갈이를 위해 서 전대표와 이면타협을 시도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최대표 특보단장인 안상수 의원이 “한나라당을 바꿔야 한다는 최대표의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며 “총선 후보 50% 물갈이를 통해서라도 재창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 최대표의 공천원칙을 재확인시켜 줬다.최대표는 그동안 이회창 전총재의 측근들을 설득하고, 여러 특위를 만들어 우호 세력을 구축해 왔다. 2000년 총선 때 이회창 총재를 도와 중진 물갈이를 주도한 윤여준 의원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에 앉힌 것도 그 일환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영남 중진들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올 정도로 최 대표의 행보는 주목을 받았다. 서 전대표는 당 내분 사태에 대한 최 대표의 전향적인 수습안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회동을 통해 최 대표는 “이미 결정된 당론을 번복할 경우 더 큰 혼란과 반발이 예상된다”며 서 전대표를 설득했다.

서 전대표는 “추스를 일은 과감하게 추스르되 목표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최 대표 입장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정국현안에 대한 정면돌파를 고집해온 최 대표 원래의 정치 스타일로 볼 때 최근의 서 전대표와의 연대움직임은 최 대표가 비주류 중진 의원에 대한 ‘가지치기’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전대표가 이 부분을 어느 정도 묵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 이번 회동에서 피력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양 진영은 골치 아픈 싹을 정리하면서 추가 탈당을 막고 민주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극적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서 전대표의 한 측근은 “중진 대청소쪽으로 방향을 굳힐 경우 이들 중 상당수는 탈당하거나 공천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최 대표 측은 일단 “공천원칙의 뜻을 곡해한 것”이라며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제도를 바꾸지 않고 얼마든지 반발세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접점을 찾을 수 있고, 지금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진 가지치기’가 탈당 도미노 사태로 이어질 뿐 아니라 당에 잔류한 사람들에게도 심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최 대표의 의지에 서 전대표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서 전대표는 쉽게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 전대표쪽 인사로 알려진 최수영 서울 성북을 지구당위원장이 “당이 지나치게 투쟁적으로만 가고 있는데 국민들 눈에 좋지 않게 비치고 있다”며 “내년부터는 (비대위 체제를 끝내고) 당이 정상적으로 갔으면 한다”고 공개적으로 당 지도부를 비판한 것이 이같은 맥락이다.

최 대표는 총선정국을 풀기위해 지난 20일 김덕룡 의원과도 만나 공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최 대표의 한 측근은 “총선 정국을 앞두고 당의 단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 최 대표는 당내 중진인 서 전대표와 김 의원, 강재섭 의원 등과 수시로 만나 공천 문제를 조율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최 대표는 지난 21일 저녁 서울의 S호텔에서 당 3역과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김문수 대외인사영입위원장과 만찬을 하며 공천 문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최 대표는 이 자리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당분간 공천 문제에 대해선 개인적 의견을 말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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