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TV 전원을 켜기가 겁이 난다. 거의 모든 뉴스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전무후무한 정치권 스캔들을 다루고 있는데, 방송을 보면서 느껴지는 분노와 참담함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방송은 이번 사태를 마치 연예인 가십 다루듯 호들갑스러운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어 가뜩이나 편치 않는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이래저래 속이 많이 상하다 보니 요즘 같은 때는 필자처럼 뉴스를 외면하고 싶은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 지지율 한 자릿수, 국정이 마비될 정도의 혼란한 정국을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가 이런 모습 보려고 투표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또, 이 판국에 성난 민심을 지렛대 삼아 권력 쟁탈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야권의 허술하기짝이 없는 모습까지 뉴스를 채우고 있다. 여야 막론하고 하나같이 볼썽사납다. 정치인 특유의 구린 냄새를 역겨워하는 비위 약한 국민들은 당분간 뉴스 보기를 멀리할 것 같다.

우울한 보도에 지친 필자는 뉴스 프로그램을 피해보려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하나를 접했다. 자폐성장애를 지닌 아들과 엄마가 클라리넷 연주단을 꾸리며 겪게 되는 사연이었다.

연주단원 전원이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돼 있어 애로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운 이들의 모임이라 짐작할 만 하다. 하지만 이 악단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고 배려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단체는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아 냈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연주자라는 직업인으로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의 존경하는 정치인들은 서로 간에 헤게모니 장악, 속된 말로 밥그릇 싸움만 하지 말고 발달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서로 간에 어떻게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지를 눈여겨봤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우리 국민 모두 분노 표출보다는 발달장애인처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가운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내는 지혜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필자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터라 발달장애인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안다. 이들을 보살피는 가족들이 얼마나 지쳐 있을지,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실태를 생각하면 더 암담하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복지 지출 비율은 꼴찌에서 세 번째이다. 장애인의 저 고용과 낮은 경제력도 문제이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지독한 사회적 편견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게 쉽지 않다. 뉴스에 등장하는 ‘축사 노예, 염전 노예’ 라는 단어가 그들의 실상을 말해준다.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의 연주활동을 그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필자에게 유독 더 깊은 감동과 위로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등장한 발달장애인들은 최소한 지금의 대통령과 정치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소통, 즉 이해와 배려라는 지혜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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