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도 밥은 주며 일 시킨다”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급식비, 정규직 13만 원 vs 비정규직 0원…“차별 10년”

올해 192억 책정…김현미 국회 예결위원장 “지켜봐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비정규직이라고 밥을 안 먹고 일하나요?”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인 시위를 벌이며 들고 있는 피켓에 적혀 있는 문구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인 우정사업본부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급식비는 ‘0원’이다. 정규직이면 월 13만 원의 정액급식비를 받는 것과 대비된다. 

사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처우 격차는 하루 이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밥값’ 문제는 다른 문제와 달라 보인다. 게다가 같은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밥값을 위협받는 현실에 대해 이들은 분개한다. 전국집배노동조합 허소연 선전국장은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구는 급식비를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밥값 문제는 곧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밥값 투쟁을 통해 근본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배노조 등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 내 산하 기관을 포함, 간접고용을 합하면 약 1만 여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우체국 전체 공무원 4만 여명의 25%에 해당한다. 4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국우편지부 우체국시설관리단지회 박정석 지회장은 우체국에 근무하는 경비원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2인 1조로 일을 하는데 한 명은 우정사업본부에서 직접 고용한 방호원(기능직 공무원)이고, 다른 한 명은 시설관리단에 간접 고용된 청사 경비원”이라며 “업무 차이가 없고 똑같이 점심을 먹는데도 정규직은 식비가 나오고 비정규직은 하나도 안 나오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고 한탄했다.

최승묵 집배노조위원장도 “우체국 집배원 중에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만 상시집배원들이 있다. 국민들에게 똑같은 우편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누구는 국가공무원을 유지하고, 누구는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우체국”이라며 “이런 차별적 요소가 10년 넘게 지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밥값은 단순히 식사비라는 개념이 아니”라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시작점이자 우리들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4년 노사합의 했지만…

그간 비정규직 처우 개선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14년 말 긴급노사협의회에서 비정규직 밥값 지급에 관한 사안이 ‘합의’됐다. 하지만 정부 예산의 칼을 쥔 기획재정부에서 반대해 예산이 확보되지 못했다. 노사협의회의 약속이 물거품 돼 버린 것이다. 기재부는 ‘타 기관 비정규직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막상 급식비를 깎은 기재부 내 비정규직들은 급식비를 따로 받는 것으로 알려져 기재부의 주장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집배 노조 등은 “최근 학교 기간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 급식비 항목은 임금차별을 해소하는 중요한 사항”이라며 “기재부는 우정사업본부 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밥값에 대한 인색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당시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은 우정사업본부가 비정규직 직원에게 지급하지 않은 급식비가 3년간 33억5000만 원을 넘는다고 지적했다. 이는 실내에서 우편물 분류를 하는 우정실무원 식비만 계산한 금액이다.

또 조직 내 차별 대우에 대한 규정 실시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우정사업본부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관리 규정’ 5조는 ‘기간제 및 시간제근로자에게 해당 기관의 같은 종류 또는 유사한 업무에 근무하는 무기계약 및 통상근로자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국회 주변에서 천막 농성 중인 모습.

부처 간 떠넘기기?

미래창조과학부는 2016년 예산안에 급식비 113억 원을 기재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또다시 무산돼 부처 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기재부와 우정사업본부는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열악하다는 지적이 많아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처우 개선을 하기로 한 부분이 있어 해당 예산은 반영하고 있고 이것으로 우정사업본부가 자체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2014년 노사합의 이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했고,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이라고 말했다.

2017년도 예산안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현재 예결위에서 증액 여부 등 최종 예산을 두고 심의 중이다. 올해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192억 원이 책정됐다. 집배노조 등은 이 예산이 본회의 통과를 관철시키기 위해 최근 1인 시위와 천막 농성까지 돌입했다.

집배노조 소속 안모씨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힘을 보태기 위해 반차까지 쓰고 지방에서 서울로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했다. 정규직인데 왜 참여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안 씨는 “지금은 정규직 신분이지만 과거 비정규직일 때의 설움을 잘 알기 때문에 시위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함께 근무하는 정규직들도 이렇게 나서기는 어렵지만 같은 마음이다”고 전했다.

본회의는 내달 2일로 예정돼 있다.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예산안 통과 여부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위원장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 예산을 증액하기 위한 요구를 정부에 요청한 상태”라며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기타 여러 비정규직 관련 예산을 추진 중이지만 다 통과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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