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사욕이 아니라 대의와 명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신조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총애하고 아껴주던 주군을 죽인 조양자(趙襄子)를 암살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옻칠을 해 나병환자로 위장하고 석탄을 삼켜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기회를 노렸다. 친구가 어려운 방법 대신 조양자의 수하에 들어가 기회를 보는 편이 어떠냐는 말에 예양은 두 마음을 갖고 주군을 모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예양의 계획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나 그의 지독한 충성심에 조양자는 눈물을 흘렸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에게서 예양의 향기가 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점과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두 마음을 갖고 모셔서는 안 된다는 불회이심사군(不懷二心事君)의 자세가 그것이다. 

이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을 ‘제값’으로 대접해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어도 인간적 도리를 다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할 것임을 강조한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대통령이 힘을 잃고 어려움에 처하자 “나부터 살고 보자”며 주군을 떠나다 못해 저주까지 해대는 사람들과 너무나 비교된다. 

지금 새누리당 모습을 보면 많은 의원들이 애당초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없었다. 오직 개인의 영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박 대통령을 ‘도구’로 이용했을 뿐이다. 

이 대표는 대표 취임 백일도 안 돼 정치 입문 후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아 인고의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려고 하고 있다. 애써 일궈놓은 정치생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힘의 원천은 뚝심과 진심이다.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그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였다. 진심만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이해시킬 수 있다는 ‘진심의 정치’를 해왔기에 대표직에까지 올랐다. 

대표 취임 후에는 총선에서 참패한 당을 추스르고 얼치기 사이비 보수로부터 당을 지키고 애국보수정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한다는 목표로 정치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순실 사태에는 배은망덕한 의원들과는 달리 곤경에 처한 대통령을 자신의 온몸을 던져 지키고 있다.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소신을 따르기도 하지만 무명의 이정현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은공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이정현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세속에 아부하지 않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판 행태를 지독히 혐오해온 터이기에 이정현의 진심정치가 오히려 낯설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통령 권력이 퍼렇게 날 서 있을 때는 입도 벙긋 못했던 군상들이 마치 가뭄에 단비 만난 숭어 떼처럼 나대는 작금의 염량세태(炎凉世態)가 이정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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