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곤경에 빠지자 새누리당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탈당한다. 지난 22일 남경필 경기도 지사와 비박계(非朴系) 김용태(서울 양천을·3선) 의원이 탈당했다. 정두언·정문헌 의원을 비롯한 8명도 23일 떠났다. 조선일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비박계와 중립성향 의원 61명 중 22명도 당이 바뀌지 않으면 “탈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남경필 지사는 지난 22일 탈당 이유로 “헌법 가치를 파괴하고 실정법을 위반해가며 사익을 탐하는 대통령은 자격이 없고...새누리당은 정당 다움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명령에 따라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의원은 “새누리당은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질 의지와 자격이 없다”며 탈당해 “진정한 보수의 중심을 다시 세워...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의법 조치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탈당 명분으로 거창하게 ‘국민의 명령’ ‘국민이 부여한 책임’ 운운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기회주의로 가득찼다. 그들에게 ‘국민이 부여한 책임’과 ‘국민의 명령’은 탈당하라는게 아니다. 새누리당 소속 중진으로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고 도망치지 말며 끝까지 최순실 사태를 수습하고 대응책을 찾는 데 매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새누리당이 “정당다움을 잃어버렸다”며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고자 한다”고 했다. 마치 그들은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당원처럼 처신했다. 남 지사는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은 새누리당 소속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했다. 새누리호가 침몰하자 배를 지키며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려는 책임있는 선원이 아니라 남보다 먼저 배를 버리고 탈출하려는 비굴한 짓이다. 뒤집히는 배를 버리고 먼저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남 지사는 박 대통령이 “헌법 가치를 파괴하고 실정법을 위반해가며 사익을 탐하는 대통령”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은 아직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도 남 지사는 “실정법을 위반”했고 “사익을 탐”했다고 했다. 그의 성급한 박 대통령 단죄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 범죄에 대한 형벌은 법정에 의해서만 정해진다. 그러나 남 지사는 아직 법정에 의해 죄상이 최종 판결되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했고 “사익을 탐”했다고 확언했다. 그는 자신의 탈당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통령을 ‘사익을 탐’하는 파렴치 범으로 몰고 갔다.   

그밖에도 김용태 의원은 “저와 남 지사는 새누리당을 나가 진정한 보수의 중심을 다시 세워 헌정 질서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진정한 보수’를 논하기에 앞서 ‘진정한 정당인’이 먼저 되어야 한다. 당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먼저 나가는 것은 ‘진정한 정당인’이 아니다. ‘정당인다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탈당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보수’ ‘합리적 보수’ 재탄생의 길로 가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합리적 보수’ 재탄생 주장은 곤경에서 도망치는 ‘새로운 기회주의 보수’로 들린다.

물론 박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했고 ‘사익을 탐’한 것이 법정에서 판결된다면 응당 법대로 가차없이 죄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확정판결이 나지 않았고 혐의만 난무할 따름이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비굴하게 도망치지 말고 탄핵을 추진할지언정 새누리당 사람으로 당당히 나서야 한다.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기를 꾀하면 죽을 것이란 이순신 장군의 좌우명을 되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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