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동·다동 일대 상인들의 혹독한 겨울나기

하나은행·금융위원회 이동에 타격, 삼성화재까지
을지로입구역 주변 오피스 임대료 높아 공실 즐비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서울 중구 을지로 29번지 삼성화재 본사가 지난 2일 강남 서초 사옥으로 이사를 마쳤다.

이번 이사로 30년간 사용해오던 둥지를 떠나는 삼성맨들만 서운한 것은 아니다. 주변 서울 중구 무교동·다동 일대 상권도 서운하다 못해 연말 대목을 놓쳐 속이 타들어간다. 신축공사로 본점을 떠난 KEB하나은행, 광화문으로 옮긴 금융위원회까지 계속해서 을지로를 떠나는 기업들로 상인들의 걱정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오후 1시 삼성화재 을지 본관 주변은 점심 식사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이 보였다. 10년간 삼성화재 건물 뒤 골목에서 잡화를 판매하고 있는 A씨는 “점심시간이라 북적인다 해도 전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매출도 점점 줄고 있는데 삼성도 이사를 간다니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골목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삼성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모아 놓은 쿠폰도 다 사용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이사 가니까 남은 쿠폰 쓰고 가야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쿠폰을 붙여 놓은 한쪽 벽이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작은 슈퍼부터 커피숍까지 울상

삼성화재 을지 본관은 지난 8월 주택·아파트 건설업체 부영그룹에 4390억 원에 매각됐다. 삼성화재 직원 1600여 명은 이달 초부터 삼성 서초 사옥에서 삼성생명과 함께 하게 된다.

부영이 현재 삼성화재 빌딩으로 옮겨 온다는 설도 있었으나 사무실 임대를 내놓으며 새로 들어올 사람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말 연초에는 삼성화재가 쓰던 지하 6층에서 지상 21층까지 비게 되는 셈이다.  

서울 중구 다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타격이 너무 커서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 했다. 그는 “삼성 사람들은 이 주변에 가장 큰 고객이었다”며 “점심시간에도 줄서서먹던 우리 식당인데 이젠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또 그는 “우리 집도 이 정돈데 다른 가게들도 비슷할 것”이라 말했다.

근처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C씨도 “이 주변은 연말 회식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연말, 연초가 되면 직장인들 모임이 많아 대목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연봉이 높아 주변 상권에선 놓칠 수 없는 고객들”이라며 “지난해 연말도 하나은행 사람들이 떠나고 타격이 컸는데 삼성까지 떠나니 올해는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주변 식당 점심은 물론 저녁 손님까지 줄어

삼성화재보다 먼저 비게 된 KEB하나은행 본점은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2014년 1월부터 시작된 공사는 2017년 7월 완공을 예정으로 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과 KEB하나은행은 재건축이 완공 되는 대로 이전할 계획이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게 됐다.

하나은행 측은 본점의 두 개 층만 사용하는 것을 확정했고 건물 매각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건물 매각에 따라 상황이 시시각각 변할 수 있어 빠른 시일에 모든 층이 채워지길 기대하긴 어렵다. 

삼성화재 건물과 하나은행 건물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식당 주인은 겨울나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 주변에서 꽤 오래 장사해서 단골들이 많았는데 다 떠났다”고 했다.

그는 “삼성과 하나은행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국제빌딩도 회사들이 나갔다 들어갔다를 반복해 매출이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이번 겨울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한탄했다. 

을지로를 떠난 것은 대기업만이 아니었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건물에 있던 금융위원회도 지난 5월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했다.

다동 옆의 무교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D씨는 “우리 집은 단골 고객으로 금융위원회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근처에 있어 잘된 것도 있지만 그 사람들을 만나러 온 기업체 사람들 또한 무시 못할 숫자였는데 금융위원회가 옮기고 나니 그 사람들도 전부 그 근처로 가지 않겠느냐”며 “사실 운영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성까지 가버리니 연말 모임뿐만 아니라 점심·저녁 식사 손님들까지 줄어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관계자는 “이 일대는 사무실 임대료가 비싸 공실이 나도 쉽게 메워지긴 힘든 편이다”며 “심지어 그 다동과 무교동 사이는 삼성빌딩 말고도 빈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은행도 건물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주인이 누가 된다 해도 사무실 임대를 한다면 빈 자리가 쉽게 채워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이런 상황에서 주변 상가가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부영 그룹 관계자는 삼성화재 건물을 매입한 이유에 대해 “지리적 위치가 좋고 교통도 발달 된 곳이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매입한 것”이라고 답했다. 부영 측은 “삼성화재 건물에 입주할 기업을 계속 물색 중이며 현재까진 계약을 맺은 곳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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