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이었던 원로들의 ‘피의자’ 박 대통령 훈수 ?

[일요서울ㅣ유은영 기자] 전직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국무총리 등 정치계 원로들이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혼란 책임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원로들은 지난 11월 2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차기 대선 등 일정을 고려해 늦어도 4월 말까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 날 회동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강창희, 김수한, 김원기, 김형오, 박관용, 박희태, 임채정, 정의화 전 국회의장, 권노갑, 김덕룡, 신경식, 신영균, 정대철, 이종찬 전 의원 등 주요 여야 정치원로들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국정 혼란 책임을 촉구한 이들 원로들의 ‘정치 흑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원로로서의 ‘자격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남 눈의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남의 작은 결점은 잘 찾아내면서 자기의 큰 결점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원로들 중 상당 수가 과거 정당법 등 위반 혐의로 곤욕을 치른 바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으로 징역살이를 한 원로들이 ‘피의자’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내뱉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 “제 눈 안 들보는 안 보이고 남 눈의 티는 보인다”

원로 자격론 논쟁의 대표적 인물은 제18대 국회의장이었던 박희태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12년 2월 현직 국회의장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제공한 혐의(정당법 위반)로 박 의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국회의장 신분으로 첫 기소된 박희태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는 2012년 6월 박 전 의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당내뿐 아니라 국회 및 국정운영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집권 여당 대표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당원협의회 위원장에게 돈을 지급한 행위는 위법성 및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돈으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침해한 박 전 의장에 대해 비판했다. 박 전 의장은 2012년 12월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으나 2013년 2월 설 특별사면으로 형 선고 실효 및 특별 복권을 받았다.


제16대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과 제17대 국회의장이었던 김원기는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문제가 됐다.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난 후인 2006년 4월 박 전 회장에게 현금 2억 원과 미화 1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김 전 의장은 2004년 10월과 2006년 1월 박 전 회장에게 각각 5만 달러씩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09년 9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박 전 의장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2년, 추징금 2억 951만 9000원을 선고했고, 김 전 의장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및 추징금 1억 2345만원을 선고했다. 박 전 의장은 2013년 2월 설 특별사면으로, 김 전 의장은 2010년 8·15 특별사면으로 형 선고 실효와 특별복권을 받았다.

DJ 측근 권노갑, ‘대기업 뇌물’ 수수

DJ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권노갑 전 의원은 ‘뇌물’과 관련해 여러 차례 법정에 섰다. 1997년 6월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2억 5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노갑 전 의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죄와 알선수뢰죄를 인정하여 징역 5년, 추징금 2억 5천만 원을 선고했다. 또 200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 정몽헌 현대아산 사장으로부터 대북사업 협조 부탁과 함께 2백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04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에 추징금 150억원, 국민주택채권 500매(50억)의 몰수를 선고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노무현캠프 정대철, 굿시티 ‘특혜’의혹

노무현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정대철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굿모닝시티 윤창열 대표로부터 4억 원을 받는 등 다수의 기업들로부터 약 25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윤 대표는 공판에서 “대선을 앞두고 정 의원이 돈을 요구해 건축 인허가 대가로 2차례에 걸쳐 모두 4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2005년 2월 대법원은 정 전 의원에 대해 징역5년에 추징금 4억 1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05년 8월 정 전 의원은 광복 60주년 특별사면에 포함돼 잔여형기 집행을 면제받았다.


그 밖에도 제18대 국회의장 출신인 김형오는 2000년 16대 총선 출마 당시 부산 영도 투표소 9곳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고 경쟁자인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금권선거운동을 한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공포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의장은 1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 받고, 2심에서는 선고유예를 받았으나 2002년 11월 대법원이 일부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19대 국회의장인 정의화 역시 한나라당 의원시절 17대 총선을 앞두고 고교동문과 등반대회에 참가해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5년 2월 대법원은 정 전 국회의장에게 벌금 7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확정했다.


또 신경식 전 의원은 한나라당 선거기획단장으로 있던 2002년 12월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에게 대선자금 명목으로 1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4년 6월 항소심은 신 전 의원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YS의 측근이었던 김덕룡 전 의원은 부인의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골치를 썩었다. 김 전 의원의 부인은 서초구청장 후보로 공천받으려던 한모씨로부터 2006년 2월부터 7차례에 걸쳐 4억 3천여만 원을 받아 보관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과 추징금 2000만 원, 4억 1901만 원 몰수를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원로들의 이 같은 과거로 인해 ‘원로 자격론’ 논쟁도 꾸준히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흑역사’를 가진 원로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법 위반을 운운하는 것과 관련해 “피고인 자격으로 재판까지 받은 자들이 아직 혐의도 확정되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 ‘법 위반’을 이유로 하야니 개헌이니 운운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의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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