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되면 강렬한 자극 더 원해…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ASMR’이란 소리를 통해 뇌를 자극시켜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는 현상으로 자율(Autonomous)·감각(Sensory)·쾌감(Meridian)·반응(Response)의 약자다. 바람이 부는 소리, 바닷소리, 빗소리 등을 들으면 쾌감이나 안정감 등을 느끼는 게 대표적인 예다. ASMR은 수십 년 전부터 미국 대체의학 사이트를 중심으로 소개 돼 온 음향 심리치료의 한 방법이다. 2010년 무렵부터 미국, 호주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팟캐스트,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ASMR 콘텐츠는 젊은 연령층에서 불면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강한 중독성과 의존성 때문에 우려의 시각도 있다.

무분별한 콘텐츠, 청소년들의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

광고 수익 위한 선정적 콘텐츠 제재도 필요

ASMR을 느끼게 해주는 소리 자극을 트리거(trigger)라고 한다. 사람마다 원하는 자극엔 개인차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트리거는 ‘사람이 속삭이는 소리’라고 한다.

속삭이거나 부드러운 억양으로 말한 내용을 녹음한 영상을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피부를 긁는 소리’, ‘종이를 구기는 소리’, ‘물체를 두드리는 소리’ 등의 환경소음을 통해서 ASMR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런 종류의 트리거를 다룬 영상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트리거가 작용해 기분 좋은 느낌을 받는 것을 팅글(tingle)이라 한다.

제작자들은 ‘바이노럴 사운드’로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노럴 사운드란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의 주파수 대역을 변화시켜 마치 음원이 실제로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이동하는 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기술이다. 입체감을 주는 스테레오 사운드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사운드 기술이다.

ASMR을 느끼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역할놀이를 하는 영상·소리가 제작되기도 한다. 역할놀이 상황은 미용실, 병원, 마사지, 귀청소 등이 있다. 역할 놀이 방식은 제작자가 공상적 상황을 연출할 때 청취자는 불면증이나 긴장감, 공황 상태가 완화되는 ASMR을 느끼게 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불면증을 이런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높은 조회수를 통해 광고 수익을 얻는 만큼 선정성 또한 높아져 문제가 되고 있다.

ASMR 콘텐츠 유튜브 캡쳐화면

불면증 개선?

전문가, 부작용 우려

현재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사항은 강한 중독성, 선정성, 정서 발달 영향, 자율감각 둔화, 쾌감 수단으로 전락, 심층적 연구 부족 등이 있다. ASMR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트리거를 통해 신기한 느낌을 받아 영상이나 소리를 매일 듣는 경우가 생긴다. 강력한 자극성과 중독성 때문에 수면 시 ASMR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듣고 생각나는 만큼 의존성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부 제작자들이 광고 수익을 위해 선정적인 역할 연기(롤플레이)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점이다. 이런 콘텐츠가 청소년에게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정서발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 트리거를 통해 온몸에 소름이 돋거나 짜릿한 느낌(팅글)을 오래 경험하면 감각 자체가 둔해지고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결국 점차 강한 ASMR 트리거를 찾게 되고 불면증 개선, 호기심으로 시작한 의도와는 다르게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될 수 있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신체에서 이뤄지는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에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ASMR의 시초가 외국에서 대체의학으로 나왔고 국내에서 과학적 연구로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장기 수면 장애자 황모씨

장기 수면 장애자

“놀라운 경험했다”

ASMR 콘텐츠를 약 1년가량 접한 황모(26·남)씨는 ASMR 콘텐츠를 접하기 전 오랜 불면증을 겪었다. 그는 “장기간 수면 장애를 겪어 온라인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다가 ASMR 콘텐츠를 접하게 됐다. 많은 소리 중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았고 그것은 빗소리였다”며 “불면증을 지속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 고통에 대해 모른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청취했다. 이내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 “확실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의 효과를 봤다. 특히 ASMR 콘텐츠를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숙면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다음날 개운한 느낌을 받은 경험도 많다. 건전한 ASMR 콘텐츠는 수면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일부 제작자로 인해 광고 수익을 위한 콘텐츠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선정적인 콘텐츠

규제책 시급

황 씨는 1년가량 수면 시에만 ASMR 콘텐츠를 청취했다. 그는 “직접 오래도록 경험해본 결과 강한 중독성은 느끼지 못했으며, 하루 종일 듣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에만 청취를 한다면 큰 영향이 없을 것 같다”며 “건전한 콘텐츠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조회수를 위한 선정적인 콘텐츠는 청소년들에게 무분별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해당 사이트의 실시간 검열과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ASMR 콘텐츠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가 생겨 듣고 있지만 신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확실히 모른다”며 “국내 의학계의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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