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드라마 인기비결


케이블채널에서 자체 제작한 드라마(이하 ‘케이블 드라마’)의 인기가 심상찮다. 공중파방송에서 다루기 힘든 소재와 탄탄한 완성도로 시청자들 시선을 붙잡고 있다. 아직은 마니아층의 지지가 주를 이루지만 재미와 가능성을 인정받아 연일 세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드 열풍’처럼 시작은 약했으나 나중은 클 것이란 기대를 모으는 케이블 드라마의 인기비결과 문제점을 살펴본다.


'막돼먹은 영애씨’와 하루를

17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지난 12월 19일. 케이블채널 tvN에선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15시간 동안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의 전편(15편)이 연속 방송됐다. 21일 16편을 끝으로 막을 내린 시즌2를 기념하기 위해 tvN이 이날을 ‘막돼먹은 DAY’로 정하고 특별한 이벤트를 벌인 것.

tvN이 만든 <막돼먹은 영애씨>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접목시킨 ‘다큐드라마’로 2006년 4월 20일 첫 전파를 탔다. ‘출산드라’ 김현숙을 30살 노처녀 ‘영애’로 내세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 이야기를 보여준 이 드라마에 대한 초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회수를 거듭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극히 사실적인 에피소드와 등장인물들은 시청자의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지난 9월 시즌2가 방영됐고 2008년 2월 방송을 목표로 시즌3가 준비 중이다.

이만하면 웬만한 공중파드라마 부럽지 않은 인기다.

비단 <막돼먹은 영애씨>만이 아니다. 최근 여러 케이블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거나 받았다. MBC드라마넷의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이하 (별순검)>, OCN의 <메디컬 기방 영화관>, 지난 16일 종영한 채널CGV의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이하 <8일>)>이 대표적이다. “시청률 1%면 성공”이란 말을 듣는 케이블방송에서 세 드라마는 평균 2~3%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별순검>의 경우 케이블드라마 최초로 4% 벽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세 드라마보단 못하지만 OCN의 <에로틱판타지 천일야화>와 슈퍼액션의 등도 관심 속에 방영 중이다.


‘색’다른 소재에 ‘관심집중’

케이블드라마의 성공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색다른 소재와 높은 완성도가 비결이다. 케이블방송은 공중파방송보다 표현수위가 한결 자유롭다. 자연히 드라마소재의 폭도 넓다. 자체 제작 초반, 공중파방송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드라마를 선보였던 케이블채널들은 실패를 맛 본 뒤 케이블만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소재발굴에 들어갔다. 결과 <가족연애사>, <이브의 유혹> 등 누구나 궁금해 하지만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성’을 과감하게 그린 드라마가 잇달아 등장했다. 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영화관>을 필두로 , <천일야화> 등도 ‘19세 관람불가’ 딱지를 붙인 드라마다. 하지만 요즘 케이블드라마는 야한데서 그치지 않는다. 성을 자유자재로 변주해 차별화된 재미를 안겨준다.

성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조선시대 기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관>은 에로틱한 장면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한편 실생활에 유용한 의학정보와 방중술도 알려준다. 은 <영화관>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지만 보다 코믹하고 현대적 분위기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벗지 않고 성공한 작품 잇달아

그렇다고 케이블드라마에 선정적 소재만 있는 건 아니다. <별순검>이나 <8일>, <막돼먹은 영애씨>처럼 ‘벗지 않고도’ 성공한 작품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케이블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판 C.S.I’로 불리는 <별순검>은 조선시대 ‘과학수사대’ 활약상을 브라운관에 옮겼다. 와 비슷해 보이지만 보다 인간적인 소재와 사극이 결합된 형식으로 단숨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005년 MBC에서 방송됐다 일찍 종영된 아픔을 맛
본 <별순검>은 케이블드라마로 되살아났다. 새해 8월엔 시즌2가 방송될 예정이다.

<8일>의 경우 최근 사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정조’가 주인공이다. 다만 정조의 일생이 아닌 화성으로 원행가는 ‘8일’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오세영의 역사추리소설 <원행>을 원작 삼아 정조와 혜경궁 홍씨 등 여러 인물들을 기존 이미지와 다르게 해석한 점도 눈에 띈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노처녀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 <달자의 봄> 등의 지상파드라마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돈 많은 남자와의 해피엔딩 같은 환상적 설정을 걷어내고 평범한 여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노선을 걸었다.


영화? 드라마? 뛰어난 영상미

웬만한 공중파드라마 뺨치는 ‘완성도’도 케이블드라마의 인기요인이다. 치밀한 사전준비, 실력 있는 감독과 스텝, 배우들의 투입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별순검>의 경우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촬영을 진행해 조선시대 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흩어져 있던 단서들이 하나로 모여 의문의 사건들이 해결되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류승룡, 안내상, 박효주, 온주완 등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토속적 수사방법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8일>은 탄탄한 스토리와 더불어 빼어난 영상미로도 화제를 모았다. ‘TV영화’를 표방한 <8일>은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가고 <영원한 제국>,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연출한 박종원 감독을 필두로 촬영, 조명, 미술, CG 등 각 분야에 전문영화스텝들이 참여해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장대한 스케일과 빠른 전개까지 더해져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지난 12월 17일 한국방송비평회가 주관한 제2회 좋은 방송프로그램상의 ‘케이블·위성 부문 좋은 프로그램 부문’을 받기도 했다.


선정성 논란 등 해결해야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케이블드라마가 넘어야할 산은 높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선정성 논란.

섹시코드는 케이블드라마의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지만 ‘케이블 드라마는 결국 야하다’는 인식을 짙게 만들기도 한다. <8일>, <별순검> 등 성적소재 없이도 성공한 작품들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케이블드라마가 지나친 노출신과 섹스신으로 비난받고 있다.

케이블채널을 즐겨보는 박나래(29)씨는 “케이블드라마를 보다가 가끔 놀랄 때가 있다”며 “지상파방송보다 표현이 자유롭다지만 과할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블채널 관계자들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영화관>, <천일야화>, 등을 방송 중인 온미디어의 이영균 PR팀장은 “최근 섹시코드드라마 여러 편이 동시에 방송 되고 있다. 우연히 시기가 겹쳤을 뿐 선정성을 지향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성인코미디는 물론 공포, 정통멜로, 엽기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2008년 방송작품을 대상으로 더욱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으니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케이블드라마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지상파와 영화계에서 활동한 인재영입이 활발하다. 더욱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심각하진 않지만 부족한 예산문제도 케이블 드라마가 극복해야 할 대목이다. 40억원이 들어간 <8일>을 빼면 상당수 케이블드라마가 빡빡한 예산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 케이블채널 관계자는 “케이블드라마 제작비가 지상파보다 적은 건 사실이다. 비교 자체가 무리”라며 “효율성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의 제작비가 아주 적지는 않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예산보다 케이블방송 특징을 120% 살릴 수 있는 소재발굴이 더 중요하다. 소재가 좋으면 적은 돈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막돼먹은 영애씨>의 경우 편당제작비가 3천5백만원에 불과하지만 재미와 개성을 인정받아 1억원이 넘는 작품들 부럽잖은 인기를 누렸다.

10가구 중 7가구가 케이블방송을 보는 시대다. 실력 있는 인재와 참신한 소재로 무장한 케이블드라마는 꿈으로 불리는 ‘두 자리’ 대 시청률을 향해 오늘도 행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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