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람요금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영화 관람료를 올려야 한다”는 영화계의 성명을 둘러싸고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영화가 살기 위해선 영화 관람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영화계의 절박한 외침과 이에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대다수 대중들. 영화 관람료 인상 논란의 면면과 실현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춘연 이사장 “만원으로 인상”

“영화 관람요금이 현실화돼야 합니다.” 지난 17일 영화인회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를 비롯한 7개 영화단체가 ‘한국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안’이란 성명을 통해 불법복제·불법다운로드를 통한 영화유통근절과 영화 관람료 인상을 제안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극장매출이 영화제작으로 선순환하기 위해선 다수의 영화가 손익분기점(BEP)을 넘겨야 하는데 지금의 관람요금구조로는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2002~2006년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11.4% 올랐다. 반면 영화 관람요금은 3.9%밖에 인상되지 않았다. 대신 같은 기간 영화제작비는 평균 31.7% 불어났다. 이런 가운데 영화 관람요금의 제자리걸음이 좋은 영화가 또 다른 좋은 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내용의 성명을 접한 대다수 대중은 즉각적인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이 지난 17일 열린 ‘2007 여성영화인축제’에서 “영화요금을 1만원선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1만원이나 하는 영화티켓을 누가 사겠냐는 것.

하지만 대중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단지 영화 보는데 돈을 더 내야해서가 아니다. 영화 관람료 인상이란 최후의 선택 전에 영화계가 제작비 절감과 수익증대를 위해 보여준 노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영화계는 고군부투 했을지라도 대중에겐 와닿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네티즌들은 관련 기사 댓글과 블로그 등에 “영화 관람료 인상 전에 질 좋은 영화부터 만들어라”, “배우들 몸값 거품제거가 먼저 아니냐”는 요지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영화 한편 당 427원씩(영화요금 7천원 기준) 부과되던 문예진흥기금이 2004년 1월 1일부로 없어졌음에도 영화 관람료가 오르지 않았던 사실을 문제 삼기도 한다.

영화광을 자처한 김기현(33·남)씨는 “7년간 영화 관람료가 오르지 않았다. 그 사이 한국영화 질은 얼마나 발전했는지 묻고 싶다”며 “구조적 병폐에서 비롯된 제작비 인상과 손실을 왜 관객들이 채워야 하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중 “관객 주머니 털지 마!”

대중의 격한 반발을 영화인들이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영화 관람료 인상 이야기가 나오거나 시행될 때마다 영화계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관람료인상을 공론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영화산업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제협 관계자는 “이번 성명은 영화 관람료를 올리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계의 절박함의 표현이다”며 “1만원은 이춘연 대표의 개인적 의견이지 값까지 정한 건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영화산업은 고사 직전이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상업영화가 약 60여 편인데 지금대로라면 내년엔 40여 편으로 떨어진다. 제작비 증가, 수입급감, DVD·비디오 등의 2차 부가판권시장 붕괴 등 모든 악재들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률의 8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극장수입률을 늘려 숨통이라도 틔우자는 것.

이에 대한 영화인들 의견은 다르다. 한 영화 관계자는 “극장 부율 문제도 풀리지 않은 시점에서 무턱대고 요금만 올릴 경우
비난은 영화계가 다 듣고 실속은 극장 쪽이 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타파를 위한 영화계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에 대해 제협 관계자는 “영화인들이 무턱대고 관람료인상을 주장한 건 아니다. 내부적 노력을 선행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영화인들은 올 상반기부터 한국영화위기의 가장 큰 책임이 내부에 있음을 인정하고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제작비 줄이기를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제작구조구축을 시작했고 마케팅비용도 덜어냈다. 스타개런티 문제 해결의지도 나타냈다. 그럼에도 이런 노력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중에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특히 대중은 스타개런티에 여전히 많은 거품이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솔직히 톱스타 몸값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나 영화단체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서류상으론 제작자가 갑이지만 실제론 배우가 갑이다 몇몇 배우들이 몸값을 낮췄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갈 길이 멀다”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극장측 “추이 지켜볼 것”

한편 영화인들의 영화 관람료 인상 제안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하다. 요금인상의 키를 쥐고 있는 극장 쪽이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전국극장협회 관계자는 “이번 성명과 관련, 영화인들과 의견을 조율한 적이 없다. 7년간 영화 관람료 변동이 없었던 만큼 인상에 대한 공감은 있지만 당장은 인상계획이 없고 올릴 수도 없다”고 밝혔다.

전국 극장들이 일제히 관람료를 올릴 경우 담합의혹을 받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것. 뭣보다 관객을 직접 상대하는 극장입장에선 거센 반발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값을 올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극장협회 관계자는 “관람료인상에 대한 관객들 반응이 워낙 부정적이고 간단한 문제가 아닌 만큼 추이를 좀 더 지켜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세계 9위의 영화시장이자 자국영화 50% 점유율을 가진 4대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선 지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 어려운 영화 관람료 인상 논란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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