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달라지는 ‘연예인 등용문’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바꾼다. 연예계 데뷔 방법도 예외가 아니다. 1980~1990년대 최고의 연예인 등용문으로 각광받았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최근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스타가 온라인을 통해 연예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 최근엔 UCC에서 연예인 지망생들이 끼를 발산하고 있다. 케이블방송의 오락프로그램도 스타 발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스타 산실, 그 변천사를 살펴본다.

케이블방송 출연자 ‘관심 급증’

‘39kg 허윤애’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허윤애는 지난 3일 방송된 케이블방송 M.net 프로그램 <아찔한 소개팅 파이널(이하 <아찔소>)에 출연한 여성 가운데 한명. <아찔소>는 킹카(혹은 퀸카)가 여러 이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그는 커트머리와 39kg의 가냘픈 몸매, 털털한 성격으로 킹카의 마음을 얻었다. 시청자들 시선도 사로잡았다. 인기는 고스란히 온라인으로 이어져 네티즌들은 ‘39kg 허윤애가 누구냐’고 물으며 관심을 나타냈다. 그녀의 미니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네티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언론도 앞 다퉈 관련기사들을 실었다. 방송출연 한번으로 여느 스타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허윤애의 연예계 데뷔 여부를 알 순 없지만 뜬 건 틀림없다. 스타산실로서의 케이블방송과 인터넷 위력을 실감했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연예계 등용문도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90년대 미인대회 ‘스타 산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최고의 연예계 등용문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와 제과업체 전속모델 선발대회였다.

지상파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생방송되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그 자체로 엄청난 화제거리였다. 본선에 뽑힌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아름다움과 인지도를 고루 갖춘 미스코리아를 연예관계자들은 앞 다퉈 스카우트했다. 김성령, 김남주, 이승연, 고현정, 오현경, 김사랑, 손태영, 박시연, 이보영 등은 미스코리아대회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은 뒤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롯데와 빙그레 등 제과업체 전속모델선발대회도 청춘스타들을 발굴했다. 이미연, 원미경, 안문숙 등이 롯데그룹 모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한효주, 김소연 등은 빙그레 모델 출신이다.

1992년부터 시작된 슈퍼모델선발대회도 잇달아 스타를 배출하며 연예인 지망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기 대상 수상자인 이소라를 비롯해 송선미, 김선아, 한고은, 현영, 한예슬, 한지혜, 소이현, 공현주, 최여진, 이기용 등이 대표적 슈퍼모델 출신 연예인이다.

남자모델들도 연예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인성, 소지섭, 주지훈, 차승원, 유지태, 오지호, 김민준, 이민기 등이 런웨이 대신 안방극장과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는 모델출신이다.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키와 얼굴 크기 등 신체조건이 뛰어난 모델은 젊은이들에게 쉽고 빠르게 어필할 수 있다. 물론 끼도 많다”면서 “모델수명이 워낙 짧아 연예계로 나가려는 모델들이 많은 만큼 모델출신 연예인계보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길거리 캐스팅·얼짱 ‘시들’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길거리 캐스팅’도 붐을 이뤘다. 소속사 관계자나 전문캐스팅 디렉터들은 서울 압구정동과 강남구 일대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전국 각지를 돌며 ‘숨은 원석’을 찾아 다녔다. 캐스팅 디렉터이자 매니저인 A씨는 “남다른 끼와 외모를 지닌 될 성 부른 나무를 남보다 먼저 발굴, 스타로 만들겠다는 욕심”에서다. 이들이 길에서 건져 올린 보석 중 김태희, 배두나, 정려원, 강정화, 봉태규 등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다.

모델출신으로 알려진 강동원 역시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예계에 먼저 발을 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길거리 캐스팅 열기가 시들해졌다는 게 연예관계자들 중론이다. 연예인 지망생들이 먼저 기획사 문을 두드리는 추세인데다 ‘괜찮다’ 싶어 명함을 건네면 다른 기획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A씨는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여전히 길거리 캐스팅에 나서지만 노력보다 성과가 신통치 않다”고 전했다.

길거리 캐스팅만이 아니다.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비롯한 각종 미인대회와 방송 3사의 공채 탤런트들도 연예계 등용문으로서의 인기가 전보다 못하다.

데뷔 통로가 다양해진 까닭이다. 그 중에서도 인터넷의 힘이 가장 세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시대’가 본격 열리면서 연예계 등용문에도 변화가 생겼다. 온라인을 바탕으로 한 스타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 조PD는 인터넷에 공개한 자작곡이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음반발매로 이어졌다.

테이도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본 소속사 사장 제의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얼짱’ 출신 연예인들도 온라인을 통해 만들어졌다.

<왕과 나>에 출연 중인 구혜선을 비롯해 임수정, 남상미, 박한별, 반소영 등이 예쁜 얼굴로 온라인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뒤 연예계로 나갔다.

김옥빈 역시 제1회 네이버 얼짱 선발대회에 입상, 연예인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얼짱 열풍 이후 지나치게 많은 얼짱들이 등장, 희소성이 사라지고 각종 논란이 일면서 최근엔 얼짱 출신 연예인들이 뜸해졌다. “인
터넷에 오른 사진과 실물이 다른 경우가 많고 얼굴은 괜찮지만 끼가 없는 이들도 많다”는 매니지먼트 관계자 말에서도 얼짱 출신 연예인들
이 줄어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UCC…새로운 스타 산실

요즘은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 자체 제작 콘텐츠)가 스타산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잘 만든 UCC 한편으로 일반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이 하룻밤 새 스타로 등극한다.

내복과 몸빼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UCC로 방송에까지 출연한 ‘내복남(백두현)’과 ‘몸빼남(김경학)’, 백수생활을 그린 ‘백수송’으로 대박을 터뜨린 장성민, 사투리 랩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은 J.Q 이재광 등이 UCC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한 사람이다.

사진을 통해 얼굴만 볼 수 있는 얼짱과 달리 동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UCC에선 춤, 노래, 개그 등 재능까지 확인할 수 있어 연예관계자들의 관심도 높다.

연예기획사가 UCC를 활용한 마케팅과 오디션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엠군과 다모임 등 여러 UCC사이트도 연예기획사와의 협력 아래 스타선발대회를 열어 연예인 등용문으로서의 UCC비중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UCC가 초기 의도와 달리 연예인 지망생과 기획사에 의해 상업적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인기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한 탤런트 매니저는 “UCC는 연예계에서 중요한 마케팅 및 신인 발굴 통로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좋은 인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어느 매니지먼트사가 막겠느냐”고 반문했다.

충분히 준비한 뒤 데뷔해야

케이블방송도 날로 높아지는 인기에 힘입어 여러 신예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39kg 허윤애’보다 앞서 <아찔소>에 11대 퀸카로 출연한 신인 탤런트 이해인도 유명세를 치렀다. 지상파 방송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서영은 <색시몽>, <키드갱>, <영화관> 등을 줄줄이 히트시키며 케이블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지상파방송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으로 끼를 발산할 수 있고 논란을 통한 관심유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케이블방송은 신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에게 괜찮은 데뷔 수단”이라고 연예계 관계자들은 전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오래된 연예계 진출 통로인 ‘오디션’의 인기는 변함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뜨거워진 느낌이다.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이 소속된 SM, 빅뱅을 키운 YG엔터테인먼트, 원더걸스, 임정희 등이 있는 JYP 등 대형 매니지먼트에서 오디션으로 뽑은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관리해 데뷔시키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 기획사에서 주최하는 오디션엔 매번 수백~수천명의 지원자가 몰려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수지망생 이혜나(여·22)씨는 “대형 기획사 오디션 경쟁은 유난히 치열하다. 오디션에 합격해도 수년간 연습생 시절을 거쳐야 하지만 안정적으로 데뷔할 수 있고 충분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고 설명했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UCC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고 연예계에서 단번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날고 기는 재주꾼들이 넘치는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훈련을 쌓고 안정적인 소속사와의 계약을 통해 데뷔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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