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데이트 - 영화 <무방비도시>의 손예진


김태희, 전지현 등 여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이 줄을 잇는 요즘 손예진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변신의 강도는 가장 셀 듯하다. 청순한 외모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던 그녀가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면도칼을 자유자재로 놀리는 소매치기이자 최고의 팜므파탈로 분한 것. 짙은 화장, 차가운 표정, 섹시함으로 무장한 손예진의 모습은 기대이상의 매력과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무방비도시> 시사회에서 만난 손예진은 영화개봉을 앞두고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지 두렵다”고 했다.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너무 떨려 쓰러질지도 모른다”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하루 빨리 팬들과 만나길 기다렸었다는 손예진이 이토록 소심(?)해진 건 ‘변신’ 때문이다.

최악의 강력범죄만 수사하는 광역수사대와 기업형 소매치기 조직의 대결을 그린 <무방비도시>에서 손예진은 ‘백장미’를 연기한다. 백장미는 한국은 물론 일본원정까지 가는 국제적 소매치기 조직의 리더. 동시에 육감적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 치명적 섹시함으로 경찰까지 유혹하는 팜므파탈이다.

<작업의 정석>의 내숭 9단 작업녀, <외출>의 유부녀, <연애시대>의 이혼녀 등 여러 작품들에서 청순함을 벗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그
녀지만 백장미는 달랐다. 앞선 세 작품들은 몸풀기라 할 만큼 강도 높은 이미지 변신이 요구됐다.

“겁대가리하고는… 쥐새끼들같이”라는 센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담배를 문 채 서늘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백장미를 소화하기 위해선 대사에서 말투, 표정까지 모든 걸 새롭게 구성해야 했다. ‘잘 할 수 있을까’란 걱정에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던 손예진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무방비도시>멤버로 합류했다.

예상대로 백장미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매치기인 동시에 타투이스트(문신 전문가)인 백장미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손예진은 여러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했다. 전직 소매치기에게 남의 지갑 터는 기술을 넘겨받았고 타투 숍 운영자의 허벅지에 문신을 새겨 넣으며 실력을 쌓았다.

손 여기저기 상처가 날 정도로 열심히 연습한 손예진은 면도칼로 가방 자르는 장면을 촬영한 뒤 스텝들에게 “너무 잘한다. 어디서 많이 해
본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극중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광역수사대 형사이자 백장미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김명민과 강도 높은 베드신도 촬영했다. 김명민의 말을 빌리면 ‘갈 때까지 간’ 베드신이었다.

아쉽게도 영화에선 베드신의 대부분이 편집됐지만 손예진에겐 분명 쉽잖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촬영 내내 손예진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백장미의 섹시미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상기 감독이 ‘매혹’에 중점을 두고 만든 백장미는 행동 하나하나, 심지어 숨소리에까지 뇌쇄적인 매력을 머금고 있어야 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서 섹시하게 나와야 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모든 여자는 자기 혼자만 아는 섹시함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샤워 뒤 촉촉한 모습 같은….(웃음) 근데 백장미는 누가 봐도 관능적이고 섹시하다는 느낌을 줘야했어요. 그건 제가 섹시하다고 생각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옷이나 손톱을 기르는 것 같은 표면적 섹시함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장면마다 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과 더불어 짙은 화장, 허리 뒷부분에 새겨진 ‘천수관음’ 문신도 백장미의 아찔한 매력을 강화하는 포인트다. 손예진은 천수관음 문신을 새기기 위해 3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있는 불편함도 감수했다.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덕분일까. 시사회 뒤 기자들 사이에선 “손예진의 변신이 생각보다 자연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정작 손예진은 작품 속 자기모습에 확신을 얻지 못하는 눈치다. 백장미를 잘 소화했는지 여전히 고민스럽고 아쉽다는 말 속에서 짙은 연기욕심이 묻어난다.

“<무방비도시>는 시작부터 촬영이 끝나고 몇 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촬영 전엔 백장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촬영하면서는 잘하고 있나, 촬영 뒤엔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할 지 계속 두려운 거죠. 제 연기에 제가 점수를 매기긴 힘들고 그냥 부족하고 아쉬워요. 관객들이 좋게 봐주길 바라야죠.”(웃음)

캐릭터 얘기만 한 게 아쉬웠는지 인터뷰 끄트머리에 “밝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닌데 인간의 운명에 대한 진지함과 우리네 모습을 담고 있다”며 <무방비도시>자랑을 곁들이는 손예진.

‘파격변신’이란 쉽지 않은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손예진이 다음엔 어떤 연기와 모습을 보여줄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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