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연예잠망경

지난 2000년 필자가 영화제작관계로 미국에 체류할 때 그 당시 한국의 인기드라마 ‘왕초’ 팀이 필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장용우 감독을 비롯해 주연을 맡았던 차인표, 송윤아 등 연기자 10여명과 스태프까지 20여명의 인원이 아파트 수영장 옆에서 조촐한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사실 유명 스타들이지만 수영장에서 개인적인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 신기했는지 몇몇 연기자는 수영장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는 등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밤이 깊어가면서 파티가 끝나가자 필자의 미국회사 직원들 몇 명이 먹던 음식을 치우는 등 뒷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친구 한명이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나무젓가락으로 하나씩 봉투에 주워 담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자세히 보니 차인표였다.

다른 친구들은 이국적인 풀 사이드 파티에 젖어서 계속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친구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이미지 홍보를 위한 방송카메라나 사진기자 그 누구도 없었다. 연예인들을 알아 봐주는 한국 팬조차 없는 이국땅에서 남모르게 조용히 쓰레기를 줍던 차인표의 모습이 지금도 눈가에 선하다.

최근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전국이 시끄럽다.

바다를 뒤덮은 시커먼 기름띠가 온 국민의 마음을 검은 근심으로 덮어버리고 연일 오염 되가는 바다를 보면서 직접적 피해자인 태안군민들은 넋을 놓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원봉사자의 행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더니 나중에는 국민운동 형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이들 사이에는 몇몇 연예인들도 있었다.

박진희, 심은진, 최강창민, 유준상, 김강우, 김제동 등. 땀 흘리며 봉사하는 이들의 사진이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기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아냈는지 참 용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기획된 ‘이미지 상승전략’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설마 이들이 남의 고통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상승시키려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들이겠는가. 어쨌든 이들의 따뜻한 온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스포트라이트는 못 받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연예인들이 얼어붙은 손을 녹이면서 기름에 찌든 돌들의 상처를 조용히 어루만져 주고 왔을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은 필자의 과한 욕심일까.

왠지 태안에 가면 또 다른 차인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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