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탄핵정국서 새누리당 몰락…새로운 둥지 필요
- 정당 선택 않고 1월 귀국 후 초스피드 정치 세력화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 이후 새누리당이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정치적 갈림길에 선 것이다. 그동안 반기문 총장의 향후 정치적 행보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차기 대선에 나선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신분 탓에 반 총장은 당적이 없는 상태이지만 새누리당 지지층과 무당층 사이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반 총장은 사실상 여권 대선후보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후폭풍과 대통령 탄핵 국면의 여파로 여권은 이미 쑥대밭이 돼버렸다. 반 총장의 제3지대 참여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현 상황에서 새누리당을 선택하는 것은 ‘대선 포기’나 마찬가지다. 반 총장으로서는 이른바 ‘플랜B’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독자적인 신당 창당에 나선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정계개편, 임기단축형 개헌 등을 둘러싼 향후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본인의 대권 도전을 뒷받침할 집짓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이 마무리되면 새누리당 이탈 또는 재편 세력과 손잡고 이르면 내년 6월 전후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게 플랜B의 골자다. 

반 총장은 지난 4월 20대 총선을 전후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정치역정을 경험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마지막으로 유력한 차기주자를 보유하지 못한 친박그룹에서 이른바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구도를 띄운 것. 이른바 여권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차기 대체재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여론의 반응 또한 나쁘지 않았다. 특히 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반 총장의 주가는 급등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야권 분열이라는 호재에도 극심한 공천파동의 여파로 새누리당이 과반 붕괴라는 대몰락을 경험한 것. 김무성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기존 유력 주자들도 차기 경쟁력에 흠집이 갔다. 오죽하면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던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의 조기 등판론이 불거질 정도로 위기 상황이 지속됐다. 극한 위기의 순간에 반 총장은 여권의 정권재창출을 담보할 구원투수로 떠올랐다.

총선 이후에는 친박·비박을 가리지 않고 반 총장을 향한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 5월 제주포럼 참석차 방한한 이후에는 차기 지지율 1위로 수직상승했다. 그 과정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단독회동으로 충청대망론도 불거졌다. 그러나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0월 중순 이후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이에 따른 촛불정국, 대통령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당청 동반 몰락에도 꺼지지 않은 지지율

반 총장을 고리로 부활을 노리던 여권의 전략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총선 직전부터 극대화된 계파갈등이 봉합되지 않았기 때문. 총선 이후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무산과 김용태 체제의 혁신비대위 좌초 논란은 물론 김희옥 비대위 체제에서는 공천파동의 주역이었던 유승민 의원의 복당 논란에 총선백서 갈등까지 불거졌다. 8월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대표 체제가 등장하면서 친박계가 부활을 꿈꾸는 듯했지만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는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낡은 정치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이후 지도부 총사퇴와 비대위 구성을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는 한 달 보름 동안 입씨름을 되풀이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 지지율 하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 것.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붕괴되면서 5% 안팎으로 폭락했다. 역대 최저치인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 6%보다 더 낮은 것이다. 새누리당 역시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국민의당에 뒤진 제3당으로의 추락을 경험했다. 반 총장이 정치적으로 혈혈단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반 총장이 정치 입문을 결심할 경우 대선출마를 뒷받침할 최대 조직이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동반 몰락은 반 총장의 향후 대권행보에 최대 악재였다. 더구나 11월부터 시작됐던 박근혜 퇴진 촛불정국이 한 달여 이상 장기화되면서 반 총장 역시 유탄을 맞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라나 반 총장의 경쟁력은 굳건했다. 대표적인 게 차기 지지율이었다. 반 총장의 지지율은 ‘비선실세 최순실국정농단 사태’의 파문은 물론 촛불시위와 탄핵정국의 여파 속에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여권이 와해 위기에 내몰렸지만 지지율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러나 급락 수준은 아니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지지율 1위가 본인의 경쟁력 상승보다는 반 총장의 하락에 따른 반사효과라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선 한국갤럽의 12월 2주차 여론조사(12월 6∼8일, 표본오차 95% 신뢰도에 ±3.1%p)에서는 20%를 기록하면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앞서 한국갤럽 조사에서 최고치는 8월 조사로 무려 28% 수준이이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12월 5∼7일,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p)에서도 차기 지지율은 문재인 23.5%(▲2.7%p), 반기문 18.2%(▼0.7%p), 이재명 16.6%(▲1.9%p), 안철수 7.5%(▼2.3%p)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촛불정국이라는 호재에도 지지율이 급락하며 빅3 후보에서 물러나 4위권으로 추락한 점과 비교해보면 반 총장의 10%대 후반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지율은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의 여파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5% 안팎으로 떨어지고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율이 1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제3당으로 몰락한 것과 비교하면 뚜렷이 대비되는 것. 사실상 여권 전체가 엉망이 된 가운데서도 반 총장의 일정 수준의 견고한 지지율은 유지하는 것은 여야의 정치구도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의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반 총장은 여권 지지층과 무당층에서 적잖은 선호도를 보였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지지층의 65%는 차기 지도자로 반기문을 선호했다. 또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24%가 반기문, 33%는 야권 후보들을 선호했다.

반기문 신당 창당 움직임 의도적?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또 하나의 관심은 반 총장의 대권행보였다. 내년 1월 조기 귀국, 신당 창당, 대선 출마 등 온갖 관측이 난무했다. 반 총장은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해 언급을 최대한 자제했다. 다만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여러 곳에서 반 총장을 가만두지 않았다. 측근의 입을 통해 신당 창당설이 불거진 것. 여야는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차기 대선국면에서 반 총장의 신당 창당이 갖는 파괴력 때문이다.

반 총장의 신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이 몰락의 길을 걸은 만큼 새로운 둥지가 필요하다는 것. 시기와 방식의 문제일 뿐 반 총장 주도의 신당 창당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것이다. 반면 신당 창당설은 반 총장 주변세력의 과잉 언론 플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 총장은 과연 기존 정당과의 거리를 두고 독자신당 창당에 나설까. 반 총장은 이와 관련해서 의미심장한 언급을 남겼다. 본인의 입이 아니라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한국에서 일부 단체나 개인들이 마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신하여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하거나 행동하고 있다는 주장들이 보도되고 있지만, 반 총장은 이들 누구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어느 누구도 반 총장을 대신해 발언하거나 행동한다고 주장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내년 1월 중순 귀국 후에도 한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일지 의견을 청취하고 고려할 것이다.”

반 총장을 둘러싼 각종 국내 언론보도를 부인한 것. 특히 반 총장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내용의 신뢰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는 신당 창당설 또한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는 간접적 표현이다. 다만 반 총장의 해명이 신당 창당설을 직접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년 정치지형의 유동성을 고려하면 신당 창당의 가능성 또한 여전히 살아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 총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김숙 전 유엔대사와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은 내년 1월 반 총장의 귀국을 앞두고 차기 대선 준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위해 소리소문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반딧불이, 글로벌국민공동체, 반사모 등 반 총장의 정치적 팬클럽 역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제3지대도 포기, 신당 창당 승부수 실험

반 총장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친박계를 대표할 차기 주자라는 인식이 높았다. 반 총장과 새누리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퇴임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 또한 우호적이었다. 여권은 반기문이라는 유력 차기주자가 필요했다. 또 반 총장은 새누리당이라는 보수세력을 대표할 든든한 조직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국면으로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대통령은 식물이 됐고 친박계는 폐족이 아닌 멸족 위기에 내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 총장이 난파 직전의 새누리당에 승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기존 정당으로 가는 것은 선택지에서 빼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반 총장 주도의 독자신당이든 제3지대에서 새누리당 이탈세력과의 창당작업만이 남아있다. 반 총장이 귀국 이후 어떤 식으로든 신당 창당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이는 그동안 무성한 소문으로만 나돌던 친박계 대선후보나 국민의당과의 연대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신당 창당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더구나 국내 정치 경험이 전무한 반 총장이 본인을 앞세운 정당 건설은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너무 많다. 특히 신당 창당에는 최소한 6개월 가량의 물리적 시간은 물론 막대한 자금과 조직이 필수적이다. 다만 여권 외곽에는 새누리당을 대체할 수 있는 준정당 조직이 사실상 가동되고 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움직임은 물론 친이계 수장인 이재오 전 의원이 주도하는 늘푸른한국당, 비박계 중심의 새누리당 이탈 세력의 창당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국민의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2개월 만에 속성으로 정당을 만들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반기문 총장을 차기 간판으로 내세울 경우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신당 창당’이라는 반 총장의 승부수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여야 정치권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희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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