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음지서 양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일본 성인영화의 한국진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인터넷 음란사이트 등 음성적인 곳에서 주로 유통되던 일본 성인영화가 정식 루트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는 횟수가 늘고 있는 것. 4차 일본문화개방으로 일본문화가 사실상 전면 개방되면서부터다. 물론 한국진출이 쉽지만은 않다. 개봉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케이블방송 등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일본성인영화 수요는 더욱 늘 것이라는 게 상당수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한국인들에게 ‘색’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고 있는 일본성인영화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최근 일본성인영화 한편이 성인영화마니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17일 필름포럼에서 개봉한 <일본남녀상열지사>가 그 작품이다.

‘야동의 원조 일본 에로영화 풀세트 감상’이란 다소 자극적인 홍보문구를 단 <일본남녀상열지사>는 일종의 옴니버스영화다. 인간의 4대 감정인 ‘희로애락’을 주제로 <거리의 여인> <하이칼라 걸의 성적 유희> <붉은 장미 부인> <로또 섹스> 등 4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가학과 피학을 넘나드는 에로틱한 설정으로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한 건 물론 각기 다른 시대배경을 내세워 일본성문화 변천사를 한 눈에 보는 재미까지 선사했다.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일본남녀상열지사>는 많은 남성들이 음성적으로 접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본성인영화만 모은 것이다”면서 “컴퓨터나 비디오로 보는 것과 스크린으로 보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해 극장개봉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일본남녀상열지사>에 이어 2월 21일엔 <도발적 관계:엠(M)(이하 ‘엠’)>이 한국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지난해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 받기도 한 <엠>은 인간의 욕망을 강도 높은 베드신과 감각적인 영상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일본 ‘핑크영화’의 거장 히로키 유이치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보다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로망 포르노’라고도 불리는 핑크영화는 일본독립영화의 한 장르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극장용 성인영화를 일컫는다.

일반 포르노와 달리 뚜렷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드라마를 지닌 작품들이 많고 상당수 유명 일본영화감독이 핑크영화로 연출을 시작했다.


단관 개봉 등 어려움 많아

인터넷 음란사이트, 불법 다운로드와 비디오 등 주로 음성적인 방법으로 국내에 유통되던 일본성인영화가 이처럼 정식 개봉되기 시작한 건 4차 일본문화개방 이후다. 음악, 방송, 영화 등 일본 문화콘텐츠가 사실상 전면 개방되면서 에로영화에 대한 규제도 완화됐다.

특히 2007년엔 여러 편의 일본영화를 동시에 구입하는 패키지구매가 인기를 끌고 일본영화전문 수입사가 생기면서 일본성인영화 개봉도 붐을 이뤘다.

지난해 11월엔 여성들을 대상으로 인기핑크영화를 상영하는 ‘핑크영화제’가 열렸고 전설적인 동명 일본 성인애니메이션을 스크린에 옮긴 <크림레몬>도 개봉돼 화제를 모았다. 에로틱 로맨스를 표방한 <사랑의 유형지>는 실제 정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일본성인영화 열기는 새해 들어서도 여전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자료에서도 일본 성인영화의 한국진출 러시를 확인할 수 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일본영화는 모두 58편. 영등위 관계자는 “폭력성이 심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도 있지만 성인영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성인영화의 국내 진출이 쉽지만은 않다. 대형 배급사를 통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다수 작품이 상영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단관개봉, 그것도 일주일 이내 상영을 끝으로 극장나들이를 접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발품을 팔지 않고선 대형 스크린으로 일본성인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인 것.

필름포럼 1개관에서 일주일 정도 상영했던 <일본남녀상열지사> 수입사 관계자는 “일본성인영화라서 특별히 극장 잡는 게 어려운 건 아니다. 여느 저예산 영화와 마찬가지로 대형 배급사를 끼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상영관을 확보하기란 힘들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등급심의 위해 자진 삭제

주변시선 때문에 사람들이 선뜻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도 일본성인영화의 흥행을 저조하게 만든다. 나 홀로 혹은 끼리끼리 모여 보는 건 상관없지만 사람 많은 극장에서 에로영화를 보기엔 민망하다는 관객, 특히 남성관객들이 적잖다.

직장인 조모(33·남)씨는 “성인남자 중 ‘야동’이나 포르노를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하지만 극장까지 가서 일본성인영화를 보기엔 주변시선이 신경 쓰인다. 낯 뜨거운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무삭제 개봉이 어렵다는 점도 일본에로영화의 국내진출에 걸림돌이 된다.

‘야동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에로영화는 자극적인 섹스신과 파격적 설정으로 유명하다. SM과 근친상간 등의 충격적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는 일본성인영화의 특징이자 인기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장면들이 포함돼 있을 경우 등급분류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 관람불가’보다 한 등급 높은 제한상영가를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개봉해야 하고 TV, 신문 등의 매체광고는 물론 비디오출시와 방송도 금지된다. 사실상 개봉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수입사가 작품흐름상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범위에서 몇몇 장면을 자진삭제하고 등급분류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홍보사 관계자는 “실제 정사 논란을 일으킨 장면이 있는 <색, 계>가 무삭제로 개봉됐지만 일본에로영화는 사정이 다르다. 작품성 확보가 어려운 만큼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기 위해 극히 일부분을 자진 삭제하고 심의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영등위 영화부 관계자 역시 “일본성인영화라고 특별한 잣대를 대는 건 아니다. 영화의 전체적 흐름과 작품성 등에 기준해 등급심의를 한다”면서 “일본성인영화의 경우 근친상간 등 비윤리적 내용이 많긴 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직장인 신모(28·남)씨는 “인터넷에 야동이 차고 넘친다”면서 “일본에로영화의 참 맛을 볼 수 있는 장면이 삭제된 영화를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볼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관객의 흥미를 끌고 작품성까지 갖춘 핑크무비를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점도 일본성인영화가 부딪힌 난관이다.


매체 증가로 수요 더욱 늘 듯

일본성인영화의 경우 불법 동영상과 비디오 등으로 발 빠르게 국내에 유통된다. 때문에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재미있으면서도 근래에 나온 작품들을 수입, 상영해야 한다. 국내에서 일본성인영화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 핑크영화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제작편수가 줄었다. 자연히 국내수입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핑크영화도 찾기 힘들어졌다.

<엠> 수입사 관계자는 “이왕이면 보다 잘 만들어진 최신 성인영화를 한국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 “일본 내 핑크영화제작이 줄어 욕심에 차는 작품을 구하기가 힘들다. 얼마 전에도 일본 시장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국내 일본성인영화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란 게 상당수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케이블방송, VOD상영관 등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콘텐츠로 일본 성인영화를 필요로 하는 곳이 늘었다는 것.

실제 대다수 일본성인영화는 단관개봉 뒤 비디오나 DVD, 케이블방송, VOD 영화관 등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다.

극장흥행은 어렵지만 여러 매체에 팔리므로 웬만하면 손해는 안 본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외화수입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그렇고 올해보다 많은 일본성인영화 수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말로 일본성인영화의 국내 진출이 가속화될 것임을 예견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일본핑크영화시장은 매우 크고 작품성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런 작품들이 국내에서 하나같이 포르노로 저평가된 부분에 대해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일본성인영화 정식 개봉에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채워졌던 수입금지란 족쇄를 벗고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한 일본성인영화가 얼마나 큰 세를 이뤄갈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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