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는 중국의 한류 규제, 길들이기 시작?

중국 자본 유입으로 거품낀 한국드라마 재정비 시급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가 차가워진 가운데 중국에서 일명 ‘한한령(禁韓令)’을 내렸다는 소문이 점차 현실화되며 국내 연예계의 중국 입지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

중국 ‘한한령’이 국내 연예계를 얼렸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나돌던 한한령이 실제 현실화되면서 중국에서 한류(韓流) 스타들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는 것.

최근 중국 업체들은 한류스타 대신 현지 모델로 방송 및 광고 모델을 대거 교체하는 등 한류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배우 송중기를 내세워 단숨에 중국 스마트폰계 강자로 떠올랐던 중국 스마트폰 업체 비보는 지난 11월 출시한 신제품 광고 모델을 타이완 배우인 펑위옌으로 바꿨다.

당시 현지 언론 소후닷컴에 따르면 이번 모델 교체가 공식 문건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한한령(限韓令)’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인민폐 2000만 위안(한화 약 33억 원)으로 전속 계약을 맺은 후 6개월 만에 모델에서 하차한 것이라며 이보다 앞서 지난 8월부터 사실상 중국에서는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 등에 제한이 폭넓게 이뤄져 왔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초에는 송혜교와 김수현이 광고 모델로 활약했던 화장품 업체에서도 모델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연수 문화평론가는 “사드 배치 문제로 양국 관계가 상당히 민감해지면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시적으로 연예계를 장악해 그들의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한령의 불똥은 글로벌 대세 그룹 엑소(EXO)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는 17일 예정돼 있던 중국 난징에서의 단독 공연이 갑작스레 연기됐다. 엑소는 12월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잡지 ‘루오모 보그(L’UOMO VOGUE)’에 아시아 아이돌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표지를 장식하며 글로벌 입지를 증명해오던 터라 당혹감은 더했다.

엑소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현지 주최 측의 일정 변경 요청으로 새 날짜를 협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현실화되고 있는 ‘한한령’에 연예계는 초긴장 상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중국의 ‘한한령’이 아시아권뿐 아니라 세계적 인기를 얻어나가는 과도기 한류의 행보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양국의 외교적 골이 깊어진 직후, 배우 유인나가 중국 후난위성TV에 방영하려 했던 드라마 ‘상애천사천년2 : 달빛 아래의 교환’에 출연하려다 돌연 하차했다. 당시 유인나는 드라마의 2/3가량을 이미 촬영한 상태였음에도 결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유인나의 자리에는 대만 배우 궈쉐푸가 대신했다. 이 밖에도 한중 합작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함부로 애틋하게’의 주연배우 김우빈과 수지도 이 시기에 맞물리며 예정된 중국 팬미팅을 이틀 앞두고 취소해야만 했다.

이처럼 한류스타들의 중국 진출이 가로막히자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사인 SM, YG, JYP를 비롯해 CJ E&M 등의 주가도 약 10% 이상 하락했다.

한·중이 함께 제작한 이민호·전지현 주연의 ‘푸른 바다의 전설’은 지난 11월 중순부터 한국에서만 방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드라마의 중국 수출도 빨간불이 켜졌다. 심지어 지난 9월을 끝으로 중국에서 심의를 통과한 한국 작품이 전혀 없는 상태다.

앞서 중국 내 한류열풍의 절정은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주석의 취임 후 시작됐다. 또 2015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대표 자격으로 천안문 열병식에 초청되면서 각각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를 필두로 한류가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지만 최근 사드에 대한 양국 견해차로 크게 주춤하고 있는 것이다.

한류 관광객이 2015년 국내에서 사용한 금액은 약 15조 원에 이른다. 문화콘텐츠의 수출로는 3조 원의 효과를 보고 있다. 한류는 단순한 문화콘텐츠 산업을 넘어 국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인 동시에 국가와 국가 간 문화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현재 글로벌 산업의 큰 축인 한류를 잡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발 빠른 대응이 시급해 보인다.

한 국내 연예계 관계자는 “한한령으로 국내 연예계가 상당히 위축된 것은 맞다. 그러나 몇년간 거대한 중국 자본이 흘러들어오며 국내 드라마업계에 거품도 많이 생겼다”며 “이럴 때일수록 다양한 소재와 수준 높은 콘텐츠의 개발에 힘써 시장 다각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내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한한령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기업들이 국내 드라마 제작사 지분을 인수하거나 인수합병을 하는 형태로 이미 국내 시장에 깊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라며 “한한령은 중국 연예사업에도 타격을 준다. 현재로서는 중국 기업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잠시 움츠린 것이지 한한령 분위기가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의견을 냈다.

대만 중국 통신은 지난달 22일 “중국이 ‘한한령’을 확대해 한국 드라마와 한류 스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과 광고 노출 등을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한국 연예산업에 투자한 중국기업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유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한·중 합작 드라마만 최소 50편 이상에 달하고 이중 일부는 ‘한한령’으로 당분간 방영이 불투명해져 제작이 중단되면서 양측이 적잖은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한류 지우기’에 국내 연예계는 우선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소규모 공연은 허가하지만 1만 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공연은 계속 규제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해 국내 연예계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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