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보수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는 내란·외환의 죄처럼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비상사태는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촛불세력과 무책임한 선동 언론에 의해 실체 이상으로 그 죄가 확대재생산된 것뿐이다.

보수의 잘못은 박근혜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비판하지 않은 데 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지금은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이 뼈저리게 성찰할 때다. 

42% 안팎의 한국 보수는 그동안 사회통합, 공동체 중시, 지도층의 도덕적 엄격성 등 보수주의를 떠받드는 기본원칙을 어느 정도 지켜왔다. 여기에다 지역주의, 안보위기, 종북좌파 등 급진세력에 대한 반사이익도 지지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가 ‘보수의 실패’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탄핵 여부보다 ‘헌정 질서 수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보수당 정치인 출신이다. 그가 성공한 것은 무질서와 방종으로 혼란스러웠던 ‘영국 병’을 치유하기 위해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사회적 보수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었기 때문이다.

87년 직선제 헌법 이후 보수가 20년, 좌파가 10년 집권한 것은 한국의 보수 정당이 경제·안보 등 통치 능력이 뛰어나다고 국민이 믿었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이후 폐허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보수 선각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최순실 사태로 도매금으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나라는 보수·진보가 생산적 경쟁을 해야 발전한다. 보수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尙有十二). 보수의 기사회생은 ‘낡은 보수 가치’를 깨고 선진 통일을 선도하는 새로운 보수의 철학과 비전을 정립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한국의 보수는 ‘안정 속의 질서 있는 개혁’을 지향하는 ‘도덕적이고 따뜻한 보수’를 실현해야 한다. ‘두 개의 국민’으로 갈라지고 있는 대한민국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양극화 해소를 지상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저성장과 사회적 불평등, 저출산과 청년실업, 공공성 회복 등 국가적 당면 과제들에 대한 보수의 새로운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보수는 2007년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로 정권 탈환에 성공했고, 2012년 대선 때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수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저성장이 지속되는 바람에 ‘경제=보수’라는 통념이 무너졌다. 더 이상의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은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낙수효과도 없어 효용성을 상실했다. 이제는 중견기업·중소기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 체제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헬조선’, ‘흙수저론(論)’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해수부장관, 충북도지사, 최고위원을 역임한 정치권의 몇 안 되는 ‘트리플크라운’ 경험자인 정우택 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정 원내대표는 먼저 당의 패배주의적인 정신부터 개조해야 한다. 당원들이 “촛불로 보수를 태워버리자”는 선동정치에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 지붕 두 가족 의원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버리고 서로 단합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난마처럼 얽힌 친박-비박 간의 갈등과 반목을 포용과 화합의 용광로로 녹여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려와 관용과 용서의 덕목이 당내에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수=수구 반동’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누리당이 보수의 기본 가치에 충실하게 거듭나 보수 정당이 더 국민에게 헌신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정 원내대표는 이정현 대표의 후임 비상대책위원장과 두 톱 체제를 이뤄 신(新)보수의 깃발을 세워 보수의 시대적 역할과 정권재창출을 당당하게 설파해야 한다. 도덕률과 법치주의를 강화하고 미증유의 경제와 안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시장과 안보 보수’의 뉴 패러다임을 보여줘야 한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과감하게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IMF가 우리 경제에 던진 ‘5대 경고장’인 △ 폭발 직전의 가계부채 △ 저출산과 가파른 고령화 △ 저조한 여성·청년 고용 △OECD 꼴찌의 노동생산성 △ 경제구조 전환 지연 등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정 원내대표는 촛불 전문가인 전교조를 위시한 강성 노조와 선동 언론에 휘둘리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을 무조건 폐기하려는 좌파들의 시도에 맞서야 한다. 통진당을 해산하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고,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고,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정책 등은 옳은 정책이다. 어떤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또한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과 사경을 헤매는 보수, 혼란에 빠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한 자신의 출사표대로 ‘격차·불평등’ 해소와 ‘상생·통합’의 실현이라는 ‘보수의 민심’을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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