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리모컨 하나면 퍼팅 방향·비거리 모두 조작 가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연이은 한파로 실외 활동보다 시간·공간적 제약이 없고, 계절과 날씨의 구애를 받지 않는 실내 활동이 각광받고 있다. 특히 스크린 게임장 성장이 눈에 띈다. 스크린 게임장에서는 골프, 야구, 승마, 사격 등 다양한 스포츠가 가능하다. 이 중에서 스크린 골프장은 골프와 IT가 만나 단순히 실내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닌 게임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거나 커피숍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인기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사와 골프연습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회식문화 장소로도 인기가 있어 넥타이 부대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밀실이라는 점을 이용해 도박과 내기골프가 성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급전 필요한 프로그래머, 대당 200~300만 원에 판매

이동식 장치 삽입 불가, 프로그램 본체 중앙관리 필요

국내 프로 스포츠계는 승부조작, 불법도박, 심판매수 등 선수·심판들의 일탈행위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가운데 일반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스크린 골프장에서까지 내기와 도박이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부산지검 강력부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내기 골프를 하면서 불법 개조 리모컨으로 드라이브 비거리와 퍼팅 방향 등을 조작해 억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사기)로 강모(54)씨 등 14명을 적발했다.

강 씨 등은 2011년 3월부터 9월까지 강 씨가 운영하는 부산 금정구 구서동 골프장에서 회사원 박모씨와 타당 5만~300만 원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하면서 리모컨으로 화면을 조작, 총 1억820만 원을 갈취한 혐의를 받았다.

또 이들은 2011년 2~3월 영도구 김모씨가 운영하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타당 10만~400만 원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하면서 같은 수법으로 총 1억5200만 원을 챙긴 혐의도 받았다.

강 씨는 스크린 골프 사기를 위해 공학석사인 허모(39)씨 부자에게 의뢰해 버튼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리모컨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피해자들에게 일부러 돈을 잃어줬다. 이후 사기단은 본색을 드러냈으며 피해자들을 거액의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조작 만능 리모컨

대당 200~300만 원 거래

기자는 프로그래머 성정수(가명)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게임 조작이 가능한 만능 리모컨에 대해 알아봤다. 성 씨는 “스크린 골프 사기 수법은 이미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소문이 난 상태다. 실제로 여러 스크린 골프장을 다니며 데이터를 수집해 불법 조작 만능 리모컨(이하 만능 리모컨)을 제작하는 프로그래머들도 있다”라며 “만능 리모컨은 대당 200만~300만 원 가량의 돈을 받고 팔 수 있기 때문에 급전이 필요한 프로그래머들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작·유통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상대방의 낮은 비거리,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람의 홀인원까지도 리모컨으로 조작이 가능하다. 사기행각을 벌이기 전 프로그래머와 구매자의 시뮬레이션 골프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치는 경우도 있어 최대한 구매자의 의도에 맞게 제작도 가능하다”며 “스크린과 골프이용자의 거리가 가깝지만 공이 어느 쪽으로 흘러갔고 어떤 강도로 쳤는지는 결과를 보기 전까지 골프 전문가들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래서 이를 악용해 범죄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만능 리모컨 등장한

예능 프로 방송도

MBC의 새 예능프로그램 ‘일밤-은밀하게 위대하게(이하 은위)’에서는 11일 초보 골퍼 박건형을 골프 천재로 만들어주는 몰래카메라를 브라운관에 담았다. 이날 박건형의 몰래카메라 콘셉트는 ‘골프’였다.

한창 골프에 빠져 있는 박건형은 1년가량 골프를 접했다. 소위 말하는 ‘골프 초보’다. 은위 제작진은 특수 조작이 가능한 리모컨으로 박건형을 골프 천재로 만들었다.

마법의 리모컨을 손에 쥔 존박은 박건형의 생애 첫 300m 장타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버디, 쌍 버디, 홀인원까지 성공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박건형은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지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처럼 예능프로에서까지 다뤄진 만능 리모컨은 프로그램 주인공 박건형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사용됐고 정교했다. 제작진은 만능 리모컨을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힘을 합쳐 2주 동안 만들었다고 전했다.

프로그래머 성 씨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뤄진 만큼 사회적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것을 악용하려는 의뢰자들이 급증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스크린 골프 외

다양한 기기 조작 가능

이 밖에도 성 씨는 “스크린 골프장 대부분에 CCTV가 설치된 경우가 많은데 내기골프, 도박 등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특히 만능 리모컨의 경우 상대방을 속일 정도로 작고 조작 시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라며 “과거 리모컨을 누르거나 자석을 대는 방식으로 주유기 계기판을 조작해 유사휘발유를 판매한 주유소 업주가 경찰에 적발된 것으로 안다. 이처럼 만능 리모컨은 스크린 골프 외에도 다양한 기기에 접목할 수 있는 만큼 법적인 조치와 시스템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 씨는 대안으로 “프로그램 본체 중앙 관리, 이동식 장치 삽입 불가, 매몰식 시스템 환경 구축 등 프로그램을 유통하는 업체들의 보안 시스템 강화와 관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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