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톱스타 죽였다” 악플과 정면대결 선언

탤런트, 희극인, 가수 등 1만3천여명의 대중문화예술인을 노조원으로 거느린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여의도 한예조 사무실에서 고(故) 최진실의 죽음과 관련해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악성 루머 및 악플(악의적 댓글) 방지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탤런트 故 최진실 자살과 관련된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故 최진실 자살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악플(악성 댓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비판도 급증했다.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악플에 보다 적극적,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인터넷 악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

지난 6일.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이하 ‘한예조’)는 故 최진실 자살과 관련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예조는 “악플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제기돼도 당사자가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성에 있다”며 “인기를 먹고 사는 대중예술인들에게 이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목소리 높였다.


“악플, 연예인 생존 위협”

한예조는 악플의 최대피해자로서 향후 관계기관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비단 한예조만이 아니다. 故 최진실 자살 후 고인의 자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악플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비난과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일명 ‘최진실법’ 마련이 논의됐고 네티즌들은 악플러들에게 거센 질타를 가했다.

지난 9일, 커밍아웃한 모델 김지후의 뒤늦은 자살 사실이 알려진 후 홍석천이 언론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고인이 생전에 악플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전해 악플에 대한 위기의식은 한층 높아졌다. 악플의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한예조는 “악플과 관련해 아직 관계기관과 구체적으로 협의된 내용이 없다”고 했지만 곳곳에서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필요악? 그냥 ‘惡’!

먼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악플의 심각성 재인식’이다.

그동안 연예계에서는 악플을 질타하는 동시에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연예인으로 사는 한 일부 네티즌의 무차별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안티 혹은 악플도 관심이 있어야 생성된다는 점에서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하지만 故 최진실 자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연예 관계자들은 악플이 연예인에게 주는 심리적 상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때문에 악플을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대상이 아닌 연예계 더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 ‘맞서고 근절해야 할 상황’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졌다.

한 탤런트 매니저는 “최근 악플로 고통 받는 연예인이 급증한데다 최진실 자살을 계기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매니저들끼리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을 보다 각별하게 챙기고 인간적 관계를 도모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아”

사실 악플이나 루머는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고 해명 과정에서 자칫 더 많은 ‘말’이 생성될 수 있다. 때문에 대다수 연예인이 웬만한 헛소문과 욕설은 참고 넘긴다.

고소영, 김태희 등 악플러를 고소하거나 김혜수처럼 루머 관련 반박 보도자료를 내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이는 속으로 삭히는 연예인들에 비하면 조족지혈.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관계자도 “악플이나 루머, 오보에 대해 매번 반박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며 “해당 연예인이 인터뷰나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는 소속사 차원에서 악플에 신속, 정확하게 대응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악플을 통해 각종 루머가 순식간에 퍼지고 부풀려지면서 해당 연예인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만큼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것.

연예 관계자는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인터넷을 통한 루머, 악플 등으로 연예인이 받는 심적 고통이 너무 크다”며 과거와 달리 필요하면 보도자료를 내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엔터테인먼트가 늘었다. 엔터테인먼트가 대형화, 체계화된 만큼 악플에 대한 대응도 계속적으로 강경해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예방이 급선무다

최근 연예계엔 악플에 대응하는 것 못지않게 악플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악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이는 ‘선플(선의의 댓글)달기운동’에 대한 관심에서도 확인된다.

선플달기운동은 지난 해 만들어진 (사)선플달기 국민운동본부(대표 민병철 중앙대 교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캠페인. 말 그대로 악플 대신 선플을 달아 기분 좋은 인터넷 환경을 만들고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기쁨을 주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사)선플달기 국민운동본부가 내달 7일을 ‘선플의 날’로 선언하고 이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 연예인들의 동참도 기대된다.

(사)선플달기 국민운동본부의 공동대표인 탤런트 독고영재는 “직접 만난 연예인 거의 100%가 악플의 심각성과 선플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며 “아직 구체적인 명단을 밝히긴 힘들지만 ‘선플의 날’에 연예인들이 동참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이어 “향후 연예인들의 도움을 받아 선플운동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도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독고영재는 악플을 방치할 경우 발생할 사태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연예인들이 악플의 가장 큰 피해자인 만큼 이대로 가면 연예계에 줄초상이 난다. 선플운동을 통해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악플로 고통 받지 않았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개그맨 출신 사업가 주병진이 밝힌 ‘인터넷 살인 시도죄’ 입법안 추진이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도 관심이 모아져 있다.


‘인터넷 살인 시도죄’ 입법안 추진?

지난 7월 주병진은 불법 해외 원정도박 악성 루머와 관련한 법적대응 의사와 함께 ‘인터넷 살인 시도죄’ 입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당시 주병진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터넷 악성 루머가 피해자에겐 육체적 살인 위협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란 점에서 ‘인터넷 살인 시도죄’ 입법안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선임된 법무법인을 통해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좋은사람들의 대표변호사로 선임된 법무법인 ‘화우’의 장덕순 변호사는 전화통화를 통해 “범위가 광범위해 천천히 입법 제안을 준비 중이다”며 “현재 사이버모욕죄 등이 공론화되는 만큼 추이를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아직 입법안 제안은 하지 않았지만 장 변호사는 “언론의 자유와 위배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악플에 대한 규제,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며 “전에는 ‘인터넷 살인 시도죄’가 강한 표현이 아닌가 했는데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서 연예인들에겐 그들만이 느끼는 살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주병진이 악성 루머로 인해 대인기피증에 실어증까지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해 한번 인터넷 악플의 폐해를 실감케 했다.

故 최진실 자살 이후 악플을 이기려는 연예계의 노력이 사회 각계각층의 움직임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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