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넘나드는 ‘지나친 감정절제’가 원인

故 유니 · 故 이은주 · 흑석동 중앙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던 그룹 빅뱅의 멤버 답이 지난 6일 오후 퇴원을 하고 있다. · 토니안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예계에 ‘우울증 주의보’가 내려졌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연예인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지만 그만큼의 아픔에 시달리기도 하는 스타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연예인의 우울증은 더 힘들고 위험하다.


‘탑’ 입원에 연예계 술렁

지난 주 연예가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인기 그룹 ‘빅뱅’ 멤버 탑(본명 최승현)의 갑작스런 입원과 그 원인을 둘러싼 의문 때문이었다.

지난 5일 오후 1시 경. 탑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병원 일반병동 특실에 입원, 다음 날인 6일 오후 2시 경 퇴원했다. 입원 소식이 알려진 후 ‘탑이 우울증 치료제를 다량 복용했다’는 소문이 돌아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 달 전 불안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하지만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YG는 지난 6일 오후 각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탑이 피로누적에 감기몸살이 겹쳐 병원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탑은 지난 2주간 일본에서 4번의 공연과 현지 인터뷰 등을 소화했고 한국에 도착해 곧바로 광고 촬영에 임해 쉴 틈이 없었다.

여기에 지난 4일이 생일이었던 탑은 광고 촬영 후인 새벽 2시경 빅뱅 동료들이 마련한 생일축하 자리에서 약간의 술을 마셨다. 이후 새벽 4시까지 사무실에 마련된 운동시설에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감기약을 복용하고 잠들었다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됐다.

또 YG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억측보도에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며 괴소문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중앙대학병원 장세경 원장도 지난 6일 간단한 브리핑을 통해 탑의 입원 이유를 “수면부족으로 인한 만성피로와 과로, 스트레스”로 밝혔다. 약물복용에 대해서는 “평소 본인이 복용하는 약이 있을 수는 있지만 기록에는 없다. 위세척도 안했다”고 전했다.

탑의 입원을 둘러싼 각종 ‘설’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지만 그 과정에서 우울증, 우울증 치료제 등이 언급돼 다시 한번 연예인들의 우울증에 관심이 모아졌다.


연예인, 우울증 먼저 고백도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지난 달 초 스스로 생을 마감해 슬픔과 충격을 준 탤런트 故 최진실 역시 5년 전 조성민과의 이혼을 계기로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울증이 자살의 한 원인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가수 故 유니, 탤런트 故 이은주 등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지난 4일 조용히 군에 입대한 H.O.T 출신 토니 안도 4년 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냈다. 토니 안 측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히고 “2년 전부터 증상이 악화됐다. 활동을 못한 것도 우울증 때문이다. 약이 없으면 생활이 힘든데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방송과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 우울증 경험을 밝히는 연예인들도 많다.

비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영화 촬영과 음반 준비를 하면서 우울증을 겪었다. 미국에 머물 때는 극한의 상황까지 가봤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울증에 지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오기로 극복했다고.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으로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장서희 역시 “<인어아가씨> 이후 공백이 생기면서 우울증이 왔다”며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장서희와 함께 <아내의 유혹>에 출연하는 김서형 역시 “우울증을 앓았고 여행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로 큰 사랑을 받았던 아역 배우 김성은은 3년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고 털어놔 안타까움을 자아냈었다.

이 외에도 탤런트 윤정희와 진재영, 홍수아, 가수 황보, 휘성, 전진, 앤디 등 많은 스타들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았던 사실을 털어놔 팬들의 응원을 받았다.

연예 관계자들과 정신과 전문의들은 연예인이 우울증에 걸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나친 감정 절제’를 꼽는다.


감정 절제-성공 부담 커

연예인에게 이미지는 생명이다. 때문에 대다수 연예인이 좋은 이미지를 형성, 유지하려 한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낼 수도 없다. 부당한 대우나 각종 루머도 웃어넘기거나 속으로 삭히기 일쑤다. 괜히 불만을 토로했다가 “성질머리 못된 인간”으로 찍히거나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감정은 드러내지 못하는 반면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고스란히 받아 들여야 한다. 연기력과 가창력은 물론 외모, 스타일,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에 대한 평가가 기사, 블로그 등에서 이뤄진다. 이를 접하고 느끼는 감정 역시 스타는 제대로 표출하기 어렵다. 이렇게 쌓이고 쌓인 감정이 결국 엄청난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우울증과 불면증, 대인기피증 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것.

탤런트 매니저는 “감정을 제대로 분출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연예인을 여러 명 봤다”며 “연륜이 쌓이면 덜하지만 그래도 나이와 성별, 인기 정도를 떠나 모든 연예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악플, 고통 넘어 우울증까지

인기에 대한 부담도 상상을 초월한다. 직업 자체의 수명이 짧고 인기 기복이 심해 대다수 연예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상에 있는 스타일수록 ‘언제 아래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은 커지고 드라마나 음반 등 작품의 흥행 책임이 스타에게 떠넘겨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중압감과 부담이 우울증을 부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엔 악플이 연예인들의 정신건강을 괴롭히는 주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건전한 비판을 넘어 악의적 비난과 루머, 욕설로 가득한 악플은 해당 스타에게 자신감 상실은 물론 자괴감, 대인기피증까지 갖게 만든다.

이무석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전남대 정신과 교수)은 “사람은 자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때 행복한데 연예인은 좋은 모습만 보여야한다”며 “인기가 생존수단이라 이를 유지하는데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 올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에겐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기 위로기능’과 책망하는 ‘자기 비하기능’이 있는데 자기 비하기능이 강할 경우 우울증에 잘 걸린다. 이 교수는 “연예인들처럼 지속적으로 악플이나 공개적인 평가를 받다보면 자기 위로기능이 저하되고 자기 비하기능이 강화돼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억지로 숨기지 말아야

연예인 우울증의 더 큰 문제는 자신의 병을 숨기려는데 있다. 최근 들어 우울증 경험을 고백하는 연예인이 늘고 있지만 병을 극복한 후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연예 관계자들은 “여전히 우울증을 밝히기보다 숨기는 스타가 훨씬 많다”고 입을 모은다. 혹시라도 활동에 지장을 받거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될까봐 친구 등 측근에게까지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탤런트 매니저는 “일반인들도 우울증 치료는 최대한 조용히 하려 한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오죽하겠나”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하지만 무슨 병이든 방치하고 덮어두면 깊어지기 마련. 특히 우울증은 증상이 심각해질 경우 자살 시도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무석 교수는 “연예인은 대화 상대가 제한돼 있고 자기 노출이 힘들다. 때문에 내적으로 고립되기 쉽다”며 “평소에 진짜 자기를 보여주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 통로를 개발해서 우울증 등이 오면 속내를 털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증세가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면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극단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연예인 우울증 예방 및 극복에 중요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스타를 이상화시켜 특별한 존재로 보기보다 우리와 동일한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이해하고 시기하지 않아야 마음의 병을 얻지 않는다.

다행이 최근엔 연예계 내부에서도 우울증 방지 및 치료를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0월엔 혼성그룹 쿨이 “우울증에 걸렸거나 우울증을 예방하고자 하는 모든 연예인에게 열려 있는” 자살 방지 모임 ‘엔돌핀’을 발족하기도 했다.

얼마 전 열린 팬미팅에서 김수현 작가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배우와 작가에게 “인기는 뜬구름, 아침이슬 같은 것이다. 우울증은 누군가가 자기보다 낫다는 비교와 열등감에서 나온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YG는 보도자료 끝에 “모든 소속 아티스트의 건강에 더욱 더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는 문구를 적었다.

한결 여유 있는 연예인들의 마음과 소속사 관계자를 비롯한 스타 주변 사람들의 진실하고 따뜻한 배려. 연예계에 소리 소문 없이 퍼지고 있는 우울증을 막기 위해 이 두 가지의 결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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