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사건을 계기로 위험 수위를 넘은 연예인 사생활 노출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연예계가 그야말로 난리다. 일명 ‘전지현 휴대폰 불법 복제’ 사건이 몰고 온 여파에 휘청거리고 있는 것. 정치권에서는 ‘전지현 법(가칭)’ 입법도 추진 중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동시에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침해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연예인들의 사생활. 그 실태를 알아본다.

톱스타 전지현이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올랐다. 휴대전화가 불법 복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전지현, 사생활 감시 받아?

데뷔 후 10년 간 인연을 맺어온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가 개입된 정황이 포착돼 충격은 더욱 크다.

일명 ‘전지현 복제폰’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 1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40여 명의 휴대폰을 불법 복제한 혐의로 심부름센터 운영자 김모(39)씨 등 3명을 체포, 수사했다.

수사과정에서 전지현 휴대폰도 불법 복제됐고 이에 소속사가 개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광역수사대는 19일 오전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싸이더스HQ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직후 싸이더스HQ 관계자 일부는 언론과의 통화를 통해 “전지현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답답하다”는 심경과 “소속사가 소속 연예인의 휴대전화를 불법 복제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달랐다. 언론에 따르면 싸이더스HQ 제작부장 박모씨와 정훈탁 대표의 친형이자 고문인 정모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의뢰 혐의 일부를 인정했다.


안전 위해 관리 필요?

심부름센터 운영자 김씨도 지난 2007년 11월, 싸이더스HQ 측으로부터 640만원을 받고 전지현의 휴대폰을 불법 복제해준 혐의로 지난 21일 구속수감 됐다.

광역수사대는 전지현의 휴대폰 복제 의뢰 주도자를 두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정훈탁 대표에게 1월 22일로 소환을 통보했다. 하지만 정 대표가 설 이후로 소환 연기를 부탁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지현 복제폰’ 사건을 접한 일반인들은 물론 연예 관계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소속사 관계자가 소속 연예인 휴대폰을 불법 복제한 일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기 때문.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며 “연예계 관행으로 비쳐질까 겁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연예인들의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다시 확인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정 휴대폰의 일련번호를 이용해 복제폰을 만들 경우 해당 휴대폰의 통화 및 문자 내역 확인이 가능해 심각해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데 전지현도 이같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

사실 복제폰까지는 아니라도 소속사가 연예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예전에 비하면 연예인의 사생활을 인정해주는 경향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관리한다”는 연예 관계자의 귀띔이다.

연예인이 개인적으로 움직일 경우 일정 간격으로 소속사에 위치를 알려주는 일은 드물지 않다. 연애 문제로 소속사의 간섭을 받기도 하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상호 동의 하에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기도 한다.

작년 11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기획사를 상대로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사생활 침해’ 등을 비롯한 불공정 약관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탤런트 매니저는 “일부 톱스타나 중견배우를 제외하고 대다수 배우가 소속사 영향력에서 100% 자유롭긴 힘들다”며 “사실 관리가 필요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인기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소속사에서 사소한 일도 알고 있는 게 좋다는 것.


홈피·메일 등 해킹 증가

하지만 연예인들의 사생활 침해는 팬을 비롯한 외부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인터넷 및 각종 장비가 발달하면서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횟수도 빈번해져 연예인들의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해킹. 많은 연예인들이 미니홈페이지나 이메일을 해킹당해 사생활이 공개되는 곤혹을 치렀다.

2007년 가수 보아는 미니홈피를 해킹 당해 동료 연예인과 찍은 사진 및 이메일이 유출됐고 이 과정에서 해커에게 돈까지 갈취 당했다.

다행히 범인은 검거됐지만 이 사건은 연예인 사생활 노출의 피해를 실감케 하는 일로 남았다. 가수 휘성과 탤런트 강은비, 아나운서 박지윤 등도 미니홈페이지가 해킹됐고 그룹 동방신기와 류시원은 이메일이 해킹되는 피해를 입었다.

동방신기는 인터뷰를 통해 일부 팬들이 멤버들의 통화 내역서를 뽑아 목록에 있는 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다른 멤버에게 보낸 문자에 답장을 보내오는 등의 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연예인의 전화번호나 집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팬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뒤지면 못 건지는 정보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

이에 인기 연예인들은 주기적으로 휴대폰 번호를 바꾸거나 가족, 친지 등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번호를 바꿔도 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연락을 해온다는 것.

일명 ‘도촬’로 불리는 몰래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도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갉아먹는다.

카메라 기술이 발달하고 보급도 늘면서 연예인들의 일상은 언젠가부터 네티즌과 공유하는 것이 됐다.


폭행 등 또 다른 범죄 유발 가능

촬영장은 물론 지인을 만나거나 여행을 떠나도 카메라에 모습이 포착돼 각종 연예 게시판에 오르고 인기를 끈다. ‘파파라치’로 불리는 언론 취재도 ‘연예인 사생활의 적’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최근 보도된 일부 연예인의 열애설 기사에 적지 않은 네티즌이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연예 관계자들에 의하면 연예인들은 자신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걸 더 걱정한다. 최근엔 해당 연예인을 검색하면 주변인에 관한 정보까지 올라 와 괜한 구설수나 악플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

스타의 사생활 및 신상정보 노출은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던 가수 전진은 성인 사이트를 비롯해 무려 1880여 개의 사이트에 명의가 도용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지난 해 2월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청년에게 집 앞에서 괴한에게 폭행당한 노홍철의 경우 가해자가 “노홍철의 집 주소를 인터넷에서 알았다”고 진술해 연예인 사생활 노출의 심각성이 대두됐었다.


정치권 ‘전지현 법’ 입법 추진?

사생활 노출과 관련, 상당수 연예 관계자와 연예인들은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연예인이 얼굴과 이미지로 먹고 살고 주목받는 직업인만큼 기본적인 신상 노출은 어쩔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지나칠 경우 해당 연예인에게 씻을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스토커에게 폭행 등의 물리적인 피해를 입는 건 물론 노이로제나 대인기피증까지 겪을 수 있다는 것.

탤런트 매니저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지켜보고 모르는 이에게 밤새 문자가 온다고 생각해봐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연예인들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최소한의 개인 시간과 공간은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호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오는 2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당 지도부 요청으로 준비 중인 이 법안은 현행법에 규정된 ‘긴급감청’ 제한 및 통신사의 통신 사용자 위치정보 장기저장 차단 등을 골자로 한다.

개인의 통신비밀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언론에서 ‘전지현 법’으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일반인은 물론 연예인들도 사생활 보호에 도움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예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법 제정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건 ‘연예인도 평범한 인간이며 사생활이 필요하다’는 팬과 연예 관계자들의 인식 및 태도 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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