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나 몰라라, 권한대행 ‘망신주기’ 올인…국회 내 ‘추태 천태만상’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지난 20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한 국회 대정부질의가 열렸다. 경제 상황은 심각하고, 사상 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했다. 뿐만 아니라 여야의 정치적 ‘뇌관’인 사드 배치, 국정교과서 문제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야권은 임시회의를 열어 대정부질문을 강행했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국회 출석이 전례에 없던 일임에도 황 대행이 나와야 한다고 압박했었다. 결국 황 대행이 출석했지만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벌어지고 말았다. 대정부질문이 민생 현안 토론이 아닌, 야권의 ‘정략’적 정치 공세, 나아가 황교안 총리 망신주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전례 없는 요구로 국무위원 총출동했지만… 참석 의원 고작 30명
- ‘황교안 저격수’ 이재정… 이석기 전 의원 ‘내란 음모’ 변호 맡아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의에서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대선 출마 계획이 없냐”라고 묻는가 하면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통령 인사권을 행사하며 마치 대통령과 같은 인사권을 휘두른다고 한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그대로 인용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또 하나의 대통령이 나온 것 같다”며 “현재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조롱했다. 한 술 더 떠 김 의원은 “왜놈들에게 나라를 팔아먹고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한 이완용과 같다고도 한다”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권한대행을 향해 막말을 일삼았다. 경제 분야의 대정부질문에서 경제와 관련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황 대행 ‘저격수’를 자처한 야당 의원들의 원색적 비난이 난무했다.

이날 정부 측은 황 권한대행과 국무위원을 포함해 19명이 국회를 찾았다. 황 권한대행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국회로 출석하면서 자연스레 정부의 국정 운영은 하루 종일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황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면서 “상황을 각별히 잘 챙겨야 한다”고 정부 관계자들에게 당부했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북한군 동향을 수시로 보고받으며 전군의 경계 태세를 긴급 점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黃, 국회와의 협력 위해 출석 결정한 것…”

이처럼 황 대행이 무리해서 전례에도 없는 대정부질문 출석을 강행한 데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황 대행이 고심 끝에 국회에 출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촛불집회의 대통령 권한대행 퇴진 구호에 떠밀려서가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국회를 가장 중요한 소통의 대상으로 존중하고 있으며 국회와의 협력을 통해 현재의 국가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려는 의중에서였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의 국정 수행을 하루 남짓 마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정부질문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은 국회의원은 34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참석한 국회의원들조차 산더미처럼 쌓인 민생 현안을 타개할 방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정치 공세를 통한 황 대행 망신주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심지어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공정거래위원회 장관 3명은 이 자리에서 단 한 번의 발언 기회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야권에서 황 대행의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을 강하게 촉구해 정부의 국정 수행을 정지시켜 놓고 정작 본인들은 본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음날 21일 비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선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황교안 저격수로 나서 신경전을 벌였다. 이날 이재정 의원은 황 대행의 감정을 자극하는 질문들만 쏟아내기 시작했다. 황 대행에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국정화 교과서를 추진할 권능이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국민적 정당성이 없는 총리다. 선출직 권력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 술 더 떠 이 의원은 황 대행에게 “판단하지 말라, 판단할 권한이 없다. 잘 하실 필요 없다”고 막말을 일삼았다.

나아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일은 진행해 나가겠다”는 황 총리의 발언에는 “미래를 위한 고민은 황 총리가 아니라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현상유지란 지금 상태를 그대로 버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원과 황 대행의 신경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1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이미 한 차례 격돌한 바 있다. 당시 이 의원은 통합진보당 해산이 최순실 씨가 기획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 식 주장을 황교안 총리 앞에서 펼쳤다. 나아가 그는 최순실 씨를 거론하며 황 총리에게 오방끈을 던지듯 가져다줘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눈싸움’이 있기도 했다.

“이재정, 종북성 한풀이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에 정치권에서는 이재정 의원이 황 대행에게 유난히 날을 세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변호사 출신인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5촌 조카 살인사건을 보도한 ‘나꼼수의 선거법 위반 사건’과 ‘육군 대위의 이명박 대통령 모욕죄 사건’을 변호했다.

무엇보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사건’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통진당 이석기 씨 변호인 출신인 이재정 의원이 ‘최순실 정국’을 빌미로 종북성 한풀이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한편 정치권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행태가 과거에도 빈발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지난해 9월 2일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조건만남’을 검색했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다. 또한 지난 2013년 대정부 질문 도중 당시에는 새정치연합 정호준 의원이 한 여성과 메시지로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아 논란이 일었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국정 감사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을 향해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야를 막론한 ‘피켓 시위’도 국민의 반감을 사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29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국회의장 공관 항의 방문, 릴레이 단식, 출근 저지 투쟁, 공개수사 촉구 등 망신 주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박근혜 정부 시대 창조경제에 부응하는 창조적인 발상"이라며 여권의 피켓시위를 비난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총리 지명 관련 면담을 위해 국회를 찾자 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대통령 바로 앞에서 ‘하야’와 ‘국정 2선 후퇴’ 피켓 농성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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