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곧 곤두박질이라도 칠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비탈길을 내닫고 있다. 취임한지 채 1년도 안됐는데 흡사 임기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 저기서 ‘말기증상’이 도드라지고 있다. 개혁과 통합의 액셀레이터를 더 힘껏 밟아도 시원찮을 판에 ‘소통령(小統領)’ ‘사설 부통령(私設 副統領)’과 같은 권력의‘하산(下山) 증후군’이 너무도 빨리 발호하고 있는 탓이다. 권력의 하산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한데 꼬불꼬불한 좁은 길목을 돌아갈 때마다 운전석에 앉은 노무현 기사의 운전솜씨가 여간 둔감해 보이지 않는다. 핸들의 각도가 조금만 바깥쪽으로 빗나가도 승객들은 그야말로 천길 나락의 저승길로 직행하고 만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의 위기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 위에 올라 있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벼랑끝 형국인 것이다.

소통령-김현철, 박지원… 강금원

필자는 지난해 9월초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군측간(君側奸)이 판치는 말기적 현상」이라는 글에서 김대중 정부가 당면한 권력누수 현상을 서둘러 지적한 바 있다. 레임 덕으로도 불리는 권력누수현상은 집권말기의 대표적 양태로, 노무현 정부가 처한 오늘의 상황과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말기현상이 어쩌면 그렇게도 같은지 너무나 의아스러울 정도다. 아래의 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노무현 대통령>으로, <소통령-박지원>을 <소통령-강금원>으로 바꾼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DJ는 집권 말기였다는 점이며, 노대통령은 취임한지 채 1년도 안된 집권 초입의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칼럼의 중심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최근 정가에서는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대중 정권의 말기증상을 주도하는 중심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지난 달 두 차례에 걸친 총리지명자 국회인준이 부결되면서 그를 추천한 배경과 관련, 박실장의 실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지원 비서실장을 현정부의 ‘소통령’으로 그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사실상의 대통령’으로까지 묘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현직대통령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낱 보필자에 불과한 인사가 권력의 정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정권말기의 대표적 증세인 ‘권력의 사유화(私有化)’와 특정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화(集中化)’일 수밖에 없다. 현직대통령의 위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박실장과 관련된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한마디로 군측간(君側奸)의 대표적 사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중략)… 거기다가 국민들을 한번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충언과 직언을 허용하는 언로 자체가 망가진지 이미 오래이며,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최고지도자의 청력과 시력이 그 기능을 다했는지도 모른다는 일부 언론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바로보기’와 ‘바로듣기’를 거듭 바라마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2002년 9월 3일>


말기증상-권력의 사유화, 권력의 집중화

권력의 ‘하산증세’ 혹은 ‘말기증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권력의 사유화’와 ‘권력의 집중화’이다. 관계학자들에 따르면 ‘권력누수’라는 말기적 피해망상이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특정인의 ‘편집적 권력 틀어쥐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승만 정권의 이기붕, 박정희 정권의 차지철, 전두환 정권의 장세동, 노태우 정권의 박철언, 김영삼 정권의 김현철, 김대중 정권의 박지원 등이 권력의 사유화라는 말기적 증상을 주도해온 대표적 인물로 분류된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차기후계자로 지목된 인물이거나 청와대 경호실장, 비서실장, 정보기관 책임자들로서 최고권력자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측근 인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도 여기에 한몫 거들고 있다.그렇다면 취임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말기증상을 주도하는 주인공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김영삼 정권처럼 대통령의 아들인가, 아니면 과거의 군사독재시절처럼 정보기관 책임자나 비서실장(경호실장)이 그 주역이란 말인가. 물론 차기후계자는 아직 거론될 단계가 아니니 거명할 필요도 없겠고, 대통령의 아들이 아닌 점도 확실하다. 경호실장(비서실장)은 과거와 같은 위상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국정원장 역시 권위주의시대와 같은 공작정치가 용인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권력의 사유화’라는 의혹으로부터 일정부분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노무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사설부통령’‘소통령’의 주인공은 과거처럼 말기증상을 주도하던 권력자의 위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야당이 벌떼처럼 물고늘어진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강금원이라는 일개 기업인이다. 그는 노대통령 측근비리의 핵심인물로도 지목되고 있다.

“나는 정권내 제1 야당 총재” “문재인 민정수석도 이번에 갈릴 것” “나는 대통령 측근들의 군기반장” “하도 징징거려서 줬다”등 거침없는 언행으로 잇따라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한마디로 호가호위(弧假虎威)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보도에 접한 국민들은 “노대통령이 강씨에게 얼마나 큰 신세를 졌길래 저런 소릴 그냥 들어줘야 하나”면서 동정을 보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대통령이 약점을 잡혀도 단단히 잡힌 모양”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까지 농단하는, 저렇게 오만방자한 소리를 그대로 두고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면서 강씨의 거침없는 언행 뒤에 숨겨진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이같은 무소불위의 언행들은 모두가 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민을 업신여기는 오만불손한 행위”라는 데 동의하면서 강씨와 노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강금원과 같은 특정인 한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말기증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노무현 정부가 전 정권보다 더 어려움에 처한 것은 과거처럼 한 사람의 ‘편집적 권력 틀어쥐기’로부터 ‘권력의 사유화’와 ‘권력의 집중화’현상이 서둘러 발생한 것이 아니라, 측근들중 상당수가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연루된, ‘집단비리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집단비리현상’과 관련 국민들의 반응을 다각적으로 분석해보면, 집권한지 채 1년도 안되어 ‘권력의 하산증세’가 서둘러 찾아오고, 마침내 국가최고지도자의 권위에까지 상처가 날 정도에 이른 것은 다름 아닌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금원, 최도술, 양길승, 안희정, 이광재 등과 같은 측근들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측근비리가 끊임없이 새나오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측근비리의 시점이 집권 이후라기보다는 후보경선 및 대선 과정에서 몇몇 인사들에게 발목이 잡힌 때문으로 보인다. 정경유착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변인사들로부터 십시일반의 도움을 받은 것이 현재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부메랑이 되지 않았는가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재신임국민투표와 특검 거부를 철회하고 빠른 시일내에 특검을 과감하게 수용함으로써, 측근비리에 대한 진상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는 도덕적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다음 남은 임기동안 실패한 전직들을 반면교사 삼아 차근차근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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