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함께 하는 청문회…제보 홍수 덕택”

<정대웅 기자>

실시간 제보·의견 빗발…노승일 “박 의원과 함께할 것”

답답하지만 청문회 의미 있어…“상식선에서 이 사태 봐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최순실 등 국정 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선발’된 국회의원들은 의혹 당사자들을 지난 3주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핵심 증인 불출석, ‘모르쇠’ 일관, 자질이 의심되는 질문 수준, ‘위증 모의’ 논란까지 ‘맹탕 청문회’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간 실타래처럼 얽힌 의혹을 푸는 실마리도 드러났다. 이를 푸는 중심에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56·서울 구로구을)의 역할도 컸다. 그는 이번 청문회에서 ‘법률미꾸라지’라는 별명이 붙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위증을 이끌어내고, 최순실 육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시민들의 결정적 제보는 그의 활약에 날개를 달아줬다.

지난 22일 5차 청문회가 열렸던 국회 본관 245호실. 오후 8시 50분 청문회 정회 시간임에도 박 의원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오늘은 먹었다”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는 식사 후 본인의 휴대전화에 들어온 각종 제보 등을 체크하며 속개될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 의원은 이번 청문회를 ‘국민과 함께 하는 청문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특히 이번 청문회는 국민들께서 제보를 굉장히 많이 해주시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 하는 청문회”라며 “청문회에서 국민들이 궁금해 하시는 것들을 한 가지라도 파헤쳐 알려드리는 것이 저희의 임무”라고 했다.

선발된 의원의 ‘창’을 날카롭게 벼릴 보좌진들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새벽 출근은 예사고, 야근과 새벽 퇴근도 일쑤라고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몇 주동안 토·일요일에 쉬어본 적이 없다”면서 “요즘 정신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민주당 121명의 의원 중 6명의 국조특위 위원에 포함된 박 의원은 평소 대기업들의 편법상속 금지, 불법이익환수 등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줄곧 주창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청와대와 대기업들의 정경유착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당에서 요구해 이번 국조특위에 선발됐다.

박영선 의원과 그의 보좌진들이 청문회를 위한 전략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영선 의원실)

분야별 자료 정리

다양한 채널로 제보 입수

박 의원은 특히 청문회가 있는 날은 오전 일찍 나와 자료를 보면서 보좌진들과의 회의를 통해 전략을 점검한다. 이 때의 자료는 분야별로 정리된다. 청문회는 분야별로 증인이 선정되기 때문이다. 1차 청문회 때는 정경유착을 파헤치기 위해 대기업 총수들이, 2차 때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차은택, 고영태 씨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보좌진은 관련 언론보도와 기관에 자료를 요청해 1차 자료를 확보하고 검토한다. 여기에 제보를 더해 토론을 하면서 구체적인 방향을 정한다. 방향이 설정되면 이를 뒷받침할 근거자료들을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질의서를 만든다. 제보는 1차로 간단하게 인터넷과 관련 자료, 인맥을 통해 제보의 신뢰성을 체크하고, 신뢰가 높다고 판단되면 추적에 나선다.

의원실 관계자는 또 “이번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당 정책위에서 만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 이게 나라야>라는 자료집을 참고했는데 국정농단 사건의 줄기를 정리하고,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자료집에는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검찰 공소장과 관련자별 비리 의혹, 언론보도 등이 정리돼 있다. 

박 의원과 보좌진은 이번 청문회에서 시민들의 제보와 의견이 쏟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메일과 전화, 문자, SNS 등 다양한 채널로 제보가 들어온다고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청문회는 국민들이 질문이 끝나면, '미흡했던 질문을 추가로 손질해 물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문자나 SNS 메시지로 엄청나게 보내기도 한다”며 “국민들의 열정과 응원이 이끌어가는 청문회임을 피부로 느낀다”고 밝혔다.

박영선 의원과 그의 보좌진들이 청문회를 위한 전략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영선 의원실)

이 같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는 박 의원이 청문회에서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지난 7일 2차 청문회에서 박 의원은 시민의 결정적 영상 제보로 철옹성 같던 김기춘 전 실장을 무너뜨렸다. 그간 최순실을 전혀 모른다던 김 전 실장은 최 씨의 이름이 연이어 등장하는 영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포착되자 말을 바꿨다.

지난 22일 5차 청문회에서도 시민들의 제보는 빛을 발했다. 한 시민이 ‘우병우-최순실’ 커넥션을 짐작케 하는 사진을 박 의원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측근과 최 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친박계 의원인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함께 술자리를 갖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는 과거 우 전 수석의 개인 일정에 동행했던 측근이 이날 청문회에서도 함께 동행한 사실을 의심한 한 시민이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속 이들 3명이 같은 향우회 소속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이날 우 전 수석은 최 씨와의 직접적 연관성을 계속 부인해왔는데,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모르쇠로 일관하던 증인들의 허를 찔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민뿐 아니라 K스포츠재단 핵심 관계자의 제보도 박 의원 측에 흘러들었다. 박 의원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제공한 ‘최순실 육성 녹취파일’을 지난 14, 15일 3,4차 청문회에서 연이어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최 씨가 측근들에게 ‘입 맞추기’를 지시하고, 태블릿 PC를 JTBC가 훔친 것으로 몰아야한다고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보와 관련해 노 전 부장은 5차 청문회에서 “제 자료가 잘 전달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박 의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녹취록뿐 아니라 삼성 관련 자료도 넘겼다. 앞으로도 박영선 의원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혀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많은 연결고리 파악

이번 사태는 선악의 문제

이번 청문회를 두고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불러서 호통만 쳤다’는 등 청문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박영선 의원은 “국민들께서 답답한 부분들은 많으셨겠지만, 그래도 나름 밝혀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최 씨의 사전 위증 지시 육성 등을 통해 최 씨 측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몰고 가려는지 알 수 있었고, 우병우 측근 덕분에 ‘우-최’ 연결고리가 파악됐다”며 청문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사태는 보수와 진보, 왼편과 오른편, 촛불과 태극기의 싸움이 아니라 그냥 선과 악의 문제”라며 “편 가르기가 아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상식의 선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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