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장외투쟁 병행 특검 관철에 당력 총 결집특검 불발 대비 국정조사·청문회 등 전략 선회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이 자중지난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 거부권 행사이후 돌입한 장외투쟁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분없이 장외투쟁을 철회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한나라당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장외투쟁 명분은 특검법 관철이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철회하든 재의결로 특검법을 확정하든 특검만 관철되면 장외투쟁을 중단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거부권 철회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재의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국회 파행에 따른 비난 여론을 감안해 국회 등원과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특검 관철을 1차 목표로 정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 강력한 원내투쟁 전략도 물밑 추진하고 있다. 무한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정국상황 배경에는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치열한 두뇌싸움이 내포되어 있다.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국주도권 장악 포석과 맞물려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두 사람의 치열한 기 싸움이 파행정국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실제로 두 사람은 재신임 정국이후 특검 거부권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대립각을 세워왔다. 지금까지는 노 대통령의 강펀치에 최 대표가 휘청거리는 형국이었다는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으로 정국 반전에 성공한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전면 수사’ 카드로 또다시 최 대표와 한나라당을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에 전력을 투구했던 배경에는 빼앗긴 정국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략이 내포되어 있었다.

결국 한나라당은 지난달 10일 민주당과 자민련의 협조를 바탕으로 재적의원 2/3(182명)가 넘는(184명) 정족수로 특검법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이쯤되면 노 대통령도 특검법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25일 또다시 ‘거부권’이란 초강수 카드를 들고 나왔다.한나라당 주변에는 “또 당했다”는 분노와 함께 “더 이상 밀리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한나라당이 국회 등원 거부와 최 대표의 단식투쟁 등 본격적인 장외투쟁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러한 분노와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다.30일부터는 이재오 사무총장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고, 1일부터는 전국 지구당별로 릴레이 농성에 돌입했다.그러나 이러한 장외투쟁 카드도 먹혀들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대여론도 적지 않지만 원내 1당인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반대 여론은 더욱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 일각에서도 장외투쟁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재신임 미끼를 덥석 물어 정국주도권을 넘겨 줬던 최 대표가 이번에도 특검 거부권 미끼를 너무 성급하게 문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당 지도부 일각에서 장외투쟁 카드를 비롯한 특검정국 대응 전략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비난여론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특검 재의결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국회정상화와 장외투쟁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1일 박관용 국회의장 주재의 4당 총무회담에 홍사덕 총무가 참여한 것도 국회 등원 등 국회정상화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한나라당은 또 당분간 특검 관철에 모든 당력을 집중하되 특검이 무산될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에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한나라당이 준비하고 있는 특검 무산 대응책에는 강도높은 원내투쟁과 노 대통령 측근비리와 관련한 추가 X파일 폭로 등이 담겨 있다.

우선 원내투쟁과 관련해서는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물밑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관련 한나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특검이 무산될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국회를 정상화해 국정조사나 청문회 카드로 맞선다면 특검보다 더 파괴력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당직자는 또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한나라당 의석수만으로도 진행시킬 수 있는 만큼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정치권 관계자들도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국회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원내투쟁을 전개한다면 특검에 버금가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한나라당은 또 노 대통령 측근비리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을 폭로하는 등 네거티브 전략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실제로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와 관련해 적지 않은 파일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도 대부분 한나라당이 그동안 폭로한 의혹들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특검법안에 담긴 최도술 전 청와대총무비서관, 이광재 전 청와대국정상황실장, 양길승 전 청와대제1부속실장 등과 관련된 갖가지 로비의혹을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확보에 주력하고 있다.특히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은 이광재·양길승 사건과 관련한 증거 확보 및 추가 의혹 제기를 준비하고 있다. 홍 위원장은 지난 10월 말쯤 이광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성래(구속중) 선앤문그룹 전부회장을 면회하는 등 증거확보에 주력하고 있다.홍 위원장은 또 양길승 사건을 입증할만한 녹취록 등을 입수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한나라당은 또 특검법안에 담긴 이들 3인외에도 10여건에 달하는 노 대통령 측근비리 X파일을 추가로 확보해 무차별 폭로전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이재오 사무총장겸 비상대책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측근들 중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인사들은 10명 정도”라며 “특검이 실시되면 이들 측근들에 대한 조사가 당연히 이뤄질 것으로 보았으나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만큼 다른 형태로 이들 측근 인사들의 비리를 철저하게 파헤쳐 공개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한나라당이 비리 의혹 대상자로 지목하고 있는 노 대통령 측근 인사는 최도술·이광재·양길승씨를 제외한 강금원·이원호·이영로·안희정·이기명·염동연·선봉술씨, 현 청와대 비서관 S씨, 열린우리당 핵심당직자 L씨 등 모두 10여명에 달한다.특히 S씨의 경우 이권개입 및 기업측 자금 수수 의혹이 새롭게 불거지고 있어 사실 확인 작업에 전력하고 있다.

또 L씨의 경우 열린우리당의 운영자금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의 과거 행적과 현역할을 집중적으로 추적하면 적지 않은 X파일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와함께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대표적인 부산인맥인 S씨의 ‘성 스캔들’ 문제와 광주인맥인 L씨의 ‘골프 구설수’ 등을 폭로해 노 대통령과 우리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계획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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