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문신구 스크린 속EROS 만나다 [5]


“워메, 미쳤나베” 초저녁부터 자신을 곤죽으로 만드는 남편에게 칠성네가 하는 말이다. 자정에 물레방앗간에서 안협집과 밀회를 약속한 칠성이는 계란과 감자로 양기를 보충하며 자신의 아내를 잠재우기 위해 거듭 네 합을 뜬다. 초죽음이 되어 잠에 곯아떨어진 아내의 손가락에서 은가락지를 빼내 안협집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다. 통정을 위한 거래 조건이었다.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천하의 투전꾼 남편 삼보는 동네의 반반한 남정네는 다 거친 안협집의 화냥기에 대해 동네 머슴 삼돌이를 통해 듣는다. 그러나 삼보는 아내의 부정을 고변한 삼돌이를 흠씬 두들겨 팬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아내를 다그친다. “뽕밭에 몇 번 갔었어?” 그러자 안협집은 검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며 “딱 한 번”이라고 말한다. 원칙대로라면 부정한 아내를 징치해야 마땅하지만 삼보는 아내의 교태에 금방 허물어진다.

그런 안협집에게도 한 가지의 지조는 있다. 다른 놈은 다 줘도 머슴 삼돌이에게 만큼은 철저하게 치마끈을 풀지 않는다. 통사정을 해도 도무지 곁을 주지 않는 안협집에게 삼돌이는 사정을 보지 않고 덮친다. 그 때 안협집은 말한다. “싫어, 미워, 미운 것은 싫은 거여. 억만금을 줘도 싫은 거여.”

이두용 감독의 ‘뽕’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도향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내들의 섹스코드를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색정에 눈이 멀면 당장 벼락이 친다 해도 그것에 몰입한다. 천하일색 마누라를 두었더라도 남의 살이라면 환장을 한다. 거기다 해사한 몰골이면 금상첨화다. 동네 남정네들이 주막집에 모여앉아 안협집과의 교합을 평가하면서 ‘천상백옥경(天上白玉京), 운중도원경(雲中桃園景)이 바로 거기더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안협집의 요분질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코딱지만한 용담골에서 벌어진 섹스스캔들이 훗날 유야무야 덮어졌던 당시에는 남성의 외도가 일순간 분란을 일으켰다가 매조짐 되었다. 하지만 시점을 현재에 옮겨두면 난처하다. 서울 도심에서 은밀하게 거래된 지극히 사적인 성행위도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나간다. 사건과 연루된 남녀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일순간 폐가망신 당한다. 현대인의 성심리는 억압받고 통제된다.

청교도적 윤리로 치자면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 정서는 지극히 온당하다. 일부일처제는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지만, 장자상속이라는 경제논리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어느 놈의 씨앗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평생을 피땀 흘려 쌓아둔 재산을 세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억압된 성심리는 경제논리다.

하지만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발하는 성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내들은 왜곡된 매춘의 숲을 헤맨다. 맞춤한 뽕밭을 찾아 무릎걸음으로 숨죽이며 서성거릴 태세다. 해답은 어디에 있는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카마수트라’나 ‘의심방방내기’ 탐독하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문신구 그는 7-8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했으며, 90년대 연극〈미란다〉를 연출했다. 당시〈미란다〉는 마광수 교수의〈즐거운 사라〉와 함께 외설시비가 붙어 법정에 섰다. 이후 그는〈콜렉터〉〈로리타〉등 성과 사회적 관계를 담은 영화와 연극을 제작해 왔다. 현재 연예계 성상납사건을 담은〈성상납리스트〉와 재벌가의 숨겨진 사생활을 담은 <성>을 영화화하는 작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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