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미지 벗고 배우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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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가수 출신 연기자 정려원이 비로소 진짜 배우로 첫발을 내딛었다. 영화 ‘김씨표류기’에서 은둔형 외톨이 김씨 역을 맡은 그녀는 흉내만 내는 가식적 연기가 아닌 한층 무르익은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배우’로서 정려원이란 이름을 내밀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는 많다. 하지만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김씨 표류기’에 출연한 정려원은 예쁜 배우 이미지를 벗고 세상에 상처받고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다. 정려원과 ‘김씨 표류기’속 여자 주인공에 대해 알아본다.

영화‘김씨 표류기’의 기자간담회가 지난달 28일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세상 밖으로 마음을 열다

이 영화는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해 무인도 생활을 시작하는 남자(정재영 분)와 세상과 단절한 채 오직 방 안에서만 삶을 유지하는 여자(정려원 분)를 통해 작지만 큰 소통의 의미들을 되새겨 본다.

정려원은 이마에 생긴 큰 흉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얻고 3년째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사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다 밤섬에 표류한 남자 김씨(정재영)를 발견하고 그와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정려원은 “많은 분이 저의 밝은 모습을 많이 보셨지만 감독님이 이 역할을 줬을 땐 저에게 다른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면서 “내가 무언가를 느끼는 시기에 비슷한 정서의 작품이 들어온다. 항상 우울하거나 집에 처박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런 면도 많다. 그걸 감독님께서 잘 끌어내어 영화로 옮겼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이해준 감독은 영화 속 여 주인공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점에서 착안, 방안의 세트를 비롯해 배우들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정려원이 살고 있는 무대는 쓰레기가 가득 찬 방안으로 꾸몄다. 그녀는 멋대로 자란 긴 머리와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등장한다. 유일한 분장은 다크 서클. 의상도 헐렁한 티셔츠 하나와 제자리 걷기를 할 때 입는 트레이닝복이 전부다. 그녀가 세상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통로는 인터넷이다.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가짜 자신을 만들어 또 다른 인생을 즐긴다. 달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다.

정려원은 “정재영 선배는 분장하는데 2~3시간씩 걸렸지만 난 5분이면 끝나서 편하게 촬영했다”며 “많이 망가졌지만 굴욕적이라는 생각보다는 배우로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신났다”고 말했다.

정재영은 밤섬 등 야외에서, 정려원은 세트장에서 각자 촬영을 진행했다. 함께 촬영한 것은 마지막 장면을 찍은 3~4일이 전부다.

그러나 정재영은 “서로의 촬영장을 찾아 응원도 하고 방해도 하면서 함께 오래 촬영한 다른 여배우보다 더 친해졌다”고 말했다.

정려원은 좁은 세트장에서 보이지 않는 남자 김씨의 모습을 그리며 혼자 연기를 했다. 독백과도 같은 혼자 연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외로웠다”

정려원은 “정재영 선배의 모습을 실사로 보지 못하고, 조명 다리 등을 보면서 감정을 끌어내 혼자 울고 웃고 해야하는 점은 많이 힘들고 어려웠다”며 “사람이 외로운 건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혼자 연기하다 보니 감정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을 때 많이 외로웠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스태프들은 저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연기에 몰입해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데, 함께 연기를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카메라 앞에서 외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를 찍고 더 많은 영화들을 찍고 싶을 만큼 큰 매력을 느꼈다. 혼자 촬영한 날이 더 많아선지 감정선을 섬세히 잡을 수 있고, 다양한 표현도 할 수 있어 좋았다”며 “영화의 경우, 엔딩을 미리 알고 연기한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더욱 여유롭게 촬영에 임할 수 있어 좋다”고 덧붙여 스크린 활동에 특히 큰 애정을 표시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녀는 가수 출신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비로소 팬들로부터 배우로 인정받았다.

현재 드라마 ‘자명고’에 출연 중인 정려원은 “영화는 결말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감성으로 풀어가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겨서 좋다”며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더 많이 영화를 찍고 싶을 만큼 (영화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강우석 감독이 제작을 맡고, 지난 2006년 <천하장사마돈나>로 국내 다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고 해외영화제에도 초청돼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예 이해준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특히 정려원을 비롯해 연기파 배우 정재영이 힘을 더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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