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비주류 의원 29명이 결국 탈당했다. 이들은 친박 패권세력이 사상 최악의 헌법 유린과 국정농단 작태를 비호했다고 비판하면서 “헌법 가치를 목숨처럼 지키고 정의롭고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할 새로운 보수정당을 세우기 위해 탈당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곤궁한 탈당 명분이다. 우리 좀 솔직해지자. 이들이 탈당한 이유는 뭣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집권정당의 공동책임을 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그들에게 족쇄가 될지 해방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탈당 이유의 보다 실체적 진실은 촛불민심과 친박계를 비판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당을 장악하려 했으나 원내대표 경선에서 졌기에 탈당한 것이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비대위원장을 요구하는 정략도 발휘했다.
명분도 궁색하거니와 탈당의 감동도 없다. 정치는 자고로 감동과 세(勢)가 있어야 명분을 가지는 법이다. 탈당파들에게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안에서 격렬하게 토론하면서 그 같은 탈당할 에너지로 당을 혁신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래야 보수 지지자들에게 그나마 감동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보따리를 싸서 나가버리는 하급 수를 보였다. 
피상적인 원내교섭단체의 면모는 갖추었으나 외연이 확대될지는 미지수다. 신당 컨벤션 효과는 다소 있을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보수의 정치적 뿌리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TK)의 민심은 여전히 새누리당 지지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탈당파가 지니고 있는 결정적인 하자는 이들이 ‘진짜보수’의 가치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는 단지 보수여서는 안 된다. 지킬 가치는 분명하게 지키고 시대에 맞게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도리마저 저버리는 보수는 더 이상 보수일 수가 없다. 사람의 도리를 아는 것이 보수의 본질이고 본성인 게다. 
이를 박차버리고 제아무리 고쳐봤자 그것은 화장이고, 성형이고, 회칠한 무덤에 불과한 것이다. 박 대통령 덕에 국회의원 배지 달고 온갖 특혜는 다 누리다 한순간에 주위 여건이 어려워지자 저주까지 퍼부으며 자기 살길만 찾고 있는 사람들을 보수 개혁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탈당을 주도한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친박·비박으로 당이 갈라져 싸우며 당이 쪼개지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 우리는 집권당이 계파정치를 넘어 풍부한 역사의식을 되찾아 국민의 신뢰를 획득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전형이다. 
이런 이율배반적 정치행위로 잠시 성공할 수는 있으나 얼마 가지 못해 제풀에 몰락하고 사멸돼버린 부침(浮沈)의 정당사가 우리 정치사에 크게 얼룩져 있다. 사람 도리의 기본은 염량세태(炎凉世態)에 따라 배은망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 첫째다. 여권에 몸담고 있은 처지로는 대통령이 설령 잘못하여 감옥에 가는 상황이 온다 해도 끝까지 대통령을 지키는 게 최소한의 사람된 도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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