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된 성 <파리넬리> 섹스보다 아름다운 음악 영화


조선시대 궁중안의 내시부에 속한 남자 내관으로, ‘불알 없는 사내’, ‘씨 없는 수박’, 즉 사내구실을 할 수 없게 거세된 남자를 일컬어 내시(內侍)라고 한다. 그들이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던 이유라면, 궁궐안 모든 여자(왕의 여자)들의 안위를 위해 무기를 사전에 제거함으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잔혹한 속성은 애초부터 타고났다. 내 유익을 위하고 내 즐거움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누가 희생당하고 불행해지는 것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거세란 단순히 성기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생 전부를 자르는 잔인한 짓이다.

1994년,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카스트라토(castrato, evirato라고도 함)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의 비운의 삶을 그린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영화 <파리넬리>는 불후의 명곡과 함께 진한 감동을 남겨줬던 작품이다. 많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헨델의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답답한 슬픈 고통을 느꼈었다. 고은의 <화엄경> 속에 나오는 슬픈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왕을 위해 갖은 슬픈 고통을 다 겪어야 했던 ‘슬픈 노래 부르는 아이’가 생각났고, 이두용 감독의 영화 <내시>에 나오는 ‘내시가 되어 사랑을 찾아나서는 교리의 아들 정호(안성기)’가 생각나고, 또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어린 카를로에게 “노래하지마라”며 선배 아이가 알몸으로 투신하는 장면에선, 어린시절 영화하겠다며 집 나서는 나에게 “그깟 거 왜 하려구해!”라 말리던 고인 되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던 영화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카를로(스테파노 디오니시)를 작곡가의 야망을 가진 형 리카르도(엔리코 로 베르소)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열병에 의식조차 없는 동생에게 마약을 먹이고 거세하여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로 만든다. 아이의 성기를 잘라 성대의 순(脣)을 자라지 않게 하여 아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당시 유럽에선 여성이 대중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없었던 시절로 공연이나 오페라의 여성의 역할을 소화하기위해 카스트라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져 큰 인기를 누렸다. 아버지의 유언으로 카스트라토란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카를로는, 그때부터 형을 위한, 형에 의한 존재로서 둘이 아닌 하나로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산다면 그건 생명이 없는 하나의 장식이나 도구에 불과하다. 그의 신이 내린 목소리는 오로지 능력 없는 작곡가인 형을 위해서만 쓰임 받아야 했고, 사랑도 사랑하는 여자도 모두 함께 공유(?)해야만 했다. 지켜야 할 율법이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약속이다. 붉은 가운 하나로 전희는 동생인 카를로가, 삽입과 후희는 형인 리카르도가, 동생은 여자의 문을 열고 형은 거기다 씨를 뿌린다. 어디서든 카를로는 없다. 그런 카를로에게 리카르도는 늘 “너희 형제는 언제나 함께해야 된다.”는 아버지의 유언을 쇠뇌 시키고,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때에는 마약으로 잊게 했다.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늘 잔영이 되어 우울한 생활을 하던 파리넬리는 거장 헨델이 나타나고부터 점차 음악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리고 불구인 어린아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다가오는 알렉산드라(엘자 지베르스테인)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절망과 슬픔을 떨치고 진정한 음악을 갈구하던 파리넬리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극장 안에 울려 퍼지고, ‘아리아 카자 스포자!’ 꽉 찬 관객을 감동시키며 생애 가장 위대한 공연을 하게 된다. 헨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온갖 회유를 하고, 동생의 변심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헨델을 통해 숨겨온 과거의 비밀까지 파리넬리가 알게 되고, 영원할 줄만 알았던 함께하는 관계가 깨어지자 리카르도는 카를로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그렇게 인과응보(因果應報),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틀을 갖추고, 아름다운 음악영화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을 가슴 찡한 감동으로 박수치게 하고,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게 하는 핵심 장면은 따로 있다.

떠났던 형이 다시 돌아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함께이고 싶지 않던 파리넬리는 그에게 빨강 가운을 내민다. 그들에게 있어서 빨강 가운은 운명이고 약속이다. 용서이고 다시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데는 알렉산드라의 헌신적 사랑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 했던 것이다.

빨강 가운을 걸친 리카르도는 알렉산드라와 정사를 나누는 카를로의 침실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가운을 벗은 알몸으로 침대위에 오르고, 알렉산드라의 배위에 있던 카를로는 형에게 사랑하는 알렉산드라의 배를 내준다. 동생의 사랑하는 여자 알락산드라의 배위에 오른 형은 열린 문으로 씨를 뿌리기 시작하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동생 카를로는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잡아준다. 사랑하는 남자의 형을 배위에 올려놓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체 그 형의 씨를 받고 있는 알렉산드라의 눈에는 이슬이 맺힌다. 이 긴 숨 막히는 ‘함께하는 쓰리 썸’은 아무도 한마디 말이 없는 가운데 조용히 치러진다. ‘울게 해주오, 슬픈 운명에/ 나 한숨 짓네 자유위해’ 헨델의 ‘울게 해주오(Lascia ch`io pianga)’의 아름다운 선율이 영화의 감동을 더한다.

최근에 기대했던 작품 중에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이 있다. 고려 말, 왕의 호위무사 ‘홍림’이 왕의 명령에 따라 왕위를 이을 세자를 얻기 위해,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비와 대리 합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전에도 대리모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기는 했었지만, 기대 했던 것보다는 설정의 효과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누군가 ‘섹스는 번지점프나 롤러코스터 같아서 위험하거나 스릴이 있어야 짜릿한 쾌감이 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방보다 밖을 찾고, 마누라 두고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정상을 이탈하는 변태는 자체가 위험이다. 둘보다는 셋이 좋고, 셋보다는 그룹이 더 흥분되고, 공유하는 스와핑은 위험해서 더 쾌감을 느낀다면, 그건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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