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기업비리의 전면수사로까지 확대될 태세라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삼성, LG, 현대차 등 주요 그룹 핵심인사의 출국을 금지 시키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대상 임원은 김인주 삼성그룹 재무팀장, 신동인 롯데쇼핑 부사장,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구본무 LG회장, 강유식 LG그룹 구조본부장,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 등 10여명의 재계 인사들이 출국금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 당초 해당기업들은 “법정한도 내에서 정치자금을 냈거나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정상 처리했다”며 검찰의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주요 그룹 핵심인사의 소환조사에 앞서 검찰 쪽에서 LG그룹 비자금조성 의혹이 흘러나온 데다 현대차도 수백억원대의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재계는 안색이 돌변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대선자금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전면적인 기업비리 수사로 번지는 것 같다”며 당혹스러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출국금지 대상 핵심인사들이 대기업 오너들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김인주 삼성그룹 재무팀장은 그룹의 재정을 도맡아 처리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 신동인 호텔롯데 사장도 신격호 롯데회장의 장조카로 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겸직하는 등 재계가 인정하는 그룹의 핵심인사다. 또 강유식 LG 구조본부장과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도 해당그룹 오너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검찰에 소환될 경우, 검찰의 칼날이 대기업 오너에게 직접 겨냥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재계에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H사의 한 관계자는 “출국금지를 취했다는 것은 검찰이 소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대부분이 오너들의 최측근 인사인지라 검찰이 무엇을 수사하려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검찰은 출금대상자를 소환,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만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그렇지만 결과에 따라서는 그룹 오너마저도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도 예견된다는 게 재계의 분석. 정치자금 후원이 그룹 오너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측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검찰측 관계자에 따르면, 4개 계열사와 3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민주당에 후원금으로 1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진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지난해 당기순익 19억원에 불과한 곳도 있다. 이 계열사가 후원금으로 2억원을 낸 것으로 밝혀져 자금의 성격을 둘러싼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임원이라고 해도 개인 자격으로 1억원씩 민주당에 제공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게 검찰 측의 판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비상장사가 동원된 것은 상장 계열사들의 정치자금 지원 한도를 다 소진했기 때문으로 추측되며 전현직 임원들이 왜 민주당에 1억원씩 후원을 하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삼성 이외에도 현대차와 LG와 SK, 롯데 등도 같은 이유로 조사를 받는다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이런 정황은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민주당 후원금 내역에 따르면 현대차도 현대차그룹 임원 20여명이 약 6억 6,000만원을 민주당에 기부했고, 계열사 후원금까지 합치면 10억원을 민주당에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은 액수가 10억원에 맞춰진 것과 대기업 임원들이 거액을 자발적으로 제공했는지 여부를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룹의 정치 자금지원 지시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룹 전체의 비자금 수사로 확대한다는 게 검찰의 방침이다. 특히 LG그룹 비자금조성 의혹 수사도 관심거리. 검찰은 LG그룹 비자금 조성의혹을 캐기 위해 LG카드 LG화학 등 관련 기업들의 5년치 회계자료를 확보, 정밀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선 자금을 수사하는 중 LG그룹의 비자금 조성 단서를 포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LG 이외에도 카드사 등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한 대기업이 더 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LG카드의 경우 검찰의 압수 수색이 이뤄질 것에 대비해 자료 보관 등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일부 카드사도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비자금 조성 의혹을 둘러싸고 재계에 한파가 닥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한파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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