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새해를 맞아 경영방침을 ‘4차 산업사회 선도’로 정하고 이 문구가 적힌 액자를 사무실 벽에 걸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로봇기술,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뜻한다. 박 회장은 최근 4차 산업 관련 언론사 컨퍼런스 및 포럼 등에 참석, 그룹의 명운이 ‘4차 산업’에 달려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도 “4차 산업 사회의 주역이 돼 선두그룹으로 앞장서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의지는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박 회장은 최근 직원 10여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릴 것을 지시했다. TF 팀장은 박 회장 아들인 박세창 경영전략실 사장이 맡았다.

박 사장 역시 아버지 박 회장의 의지와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다른 업무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TF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도 그룹이 4차 산업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및 사업 영역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보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TF 등을 통해 도출된 아이디어는 ‘화물터미널 자동화’ 등 무인운송 관련 아이디어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세창 사장이 TF에만 올인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업무도 같이하고 있다”면서 “화물터미널 자동화 등에 대해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보도는 오보다. 아직까지 도출된 아이디어는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를 통한 그룹 재건에, 박 사장은 4차 산업 TF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4차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한편, 그룹 재건을 마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4차 산업을 선도할 경우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4차 산업의 특성상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 산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열쇠는 ‘융합·연결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산업 간 경계를 허물어 기존의 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유로운 분위기의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기탄없는 의견 제시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경직된 조직 체제를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직위를 없애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금호의 의지처럼 ‘4차 산업 사회의 주역’이 되려면 더욱 강도 높은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4차 산업은 융합·연결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1~3차 산업과 다르다”면서 “AI·가상현실(VR) 등 기존 혁신 기술을 또 다른 산업군과 어떻게 연계해 활용하느냐가 관건인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창의성·독창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이런 필요성을 인지한 듯 보인다. 그룹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각 계열사별로 직원들이 모여 편하게 4차 산업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 이를 기존 사업 영역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 문화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라고만 하는 것은 이 산업을 선도하기에 다소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은) 의견을 제시할 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유·불리나 윗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문화”라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딱히 다른 기업에 비해 자유로운 문화를 갖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각 회사를 이끄는 경영진의 연령대도 높아 새로운 산업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사장은 올해 42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아시아나항공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임원들은 1950~60년대생이 주를 이뤄 ‘젊은 조직’으로 보긴 어렵다.

전문가에 따르면 4차 산업은 지식 중심의 기존 산업과 달리 아이디어 중심이기 때문에 산업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성세대의 경영 방식을 4차 산업에 대입해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앞서 수평적 조직문화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IT업계가 젊은 경영인을 잇달아 영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룹 내부에서도 적잖은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뜬구름 잡는다’는 반응이 직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금호타이어 인수 준비와 노사 갈등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박 회장에 대해 미르재단 출연 등 정·관계 게이트 의혹도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박 회장의 로비로 인해 금호산업 인수는 물론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소송 취하 배경 뒤에도 외부 압력이 있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앞서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는 적자 상황에서도 미르재단에 기금을 투척했다”면서 “그룹 현안이나 4차 산업에 대한 투자는 뒤로 미루고 로비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점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선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선진국에서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산업 아이디어를 직원에게 제시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4차 산업이 일자리를 줄였다는 데이터는 없다”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는 산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요구한 것”이라며 일자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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