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쾌활한 카멜레온에서 하얀 도화지로 제 2의 연기 인생 활짝 펼쳐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10여 년 전 CF 왕뚜껑 소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황보라가 저예산 영화 ‘소시민’으로 스크린 앞에 섰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변신한 그녀를 [일요서울]이 만났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UL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난 배우 황보라는 CF 왕뚜껑 소녀로 발탁된 캐스팅 비화로 입을 열었다. 그는 “당시 오디션을 보고 최종에 한효주 씨도 함께 올라갔었다. ‘멍’한 표정연기를 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뽑혔다”고 말했다.

앳되고 개구진 표정 뒤에 연기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가 배어나왔다. 여느 배우들이 바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마다하고 민낯으로 ‘평범한 캐릭터’를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해냈다.

황보라는 데뷔 당시 '논스톱', '레인보우 로망스' 등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어 “연기적인 것보다는 캐릭터적인 표현하다보니까 들어오는 역할들도 강한 역할이 많았다. 연기적인 면을 더 보여드릴 때라고 생각했다”며 이번 독립영화에 도전한 계기를 설명했다.

황보라는 타고난 배우로서의 끼 덕분에 톡톡 튀는 연기들을 데뷔 때부터 꿰찼다. 그런 그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이미지라서 외려 평범한 연기를 ‘도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보다 보통의 연기가 오히려 편하다. '아랑사또전'에서 방울 역할을 맡았었다. ‘캐릭터’적인 연기를 하려면 역할을 치열하게 파악해야 한다”면서 “드라마 '도깨비'에서 간신 박중원 역할을 맡은 김병철 선배님과 영화 일급기밀에서 호흡을 맞춰볼 시간이 있었는데 정말 예민하고 캐릭터 연구를 치밀하게 하시더라. 독특한 연기를 하려면 얼마나 치열해야 할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황보라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이번 역할에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또 연기에 임하는 본인만의 기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을 다룬 영화 '좋지 아니한가'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탄 바 있다. 지금 '불어라 미풍아'에서 조희라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하고 있는 그는 “‘감초커플’로 매력을 톡톡히 보인다는 칭찬에 감사하다”며 “천륜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몰입이 잘된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그런지 부모자식간의 사랑에 대해 애틋한 이입이 잘 된다”고 말했다. 또 그가 평소 보는 방송도 주로 굴곡진 인생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황보라는 “'인간극장'처럼 사람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또 아리랑 TV, EBS의 고부열전 등을 보며 갈등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도 남녀 사랑이야기보다 그런 것을 좋아한다”며 “'좋지 아니한가'와 '불어라 미풍아' 모두 가족 간의 갈등을 극복하며 느끼는 진정한 사랑 내용이 주다”말했다.

황보라는 드라마와 영화를 동시에 촬영하며 수도 없이 부산과 서울을 오갔다고. 바쁜 와중에도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어떻게 맞췄는지에 대해 “이번 영화 '소시민'이 연기인생의 전화점이 됐다. 겉핥기로 연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정말로 사랑해야 해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라도 박애주의자처럼 안아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연기는 저절로 풀리는 것 같다. 앙상블 맞춰져 말이다”라면서 “'소시민'의 황성천 배우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구재필’역할을 한 배우 황성천에게 고마움도 전했다.

영화 '소시민'에서 황보라는 1% 부족해 보이는 구재필 이라는 오빠에게 ‘사이다’ 역할을 하는 똑부러지는 여동생 역할을 맞춤옷을 입은 듯 능숙하게 풀어냈다.

그는 실제 성격도 비슷하다고 운을 뗐다. 황보라는 “시원시원하고 비슷하고 없는 성격 연기하기는 힘들다. 재밌게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양보단 질을 선택하는 편이다. 한 사람과 만나도 깊게 대화하고 친구가 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걸 긁어주는 기자님을 만나고도 싶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여러 영역에서 쌓인 연기 내공을 전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그도 정말 소심했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황보라는 “어릴 적 정말 소심했다. 심지어 목욕탕을 갔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아주머니가 내 자리에 앉아계시면 말도 못하고…이게 내 목욕탕 바구니라고 말도 못하겠더라(웃음) 그게 기억나는 가장 부당한 경험인 것 같다. 그래서 다시는 그렇게 살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영화상 직장을 다니다 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연예계라는 ‘직장’은 어떠한지 물었다. 황보라는 “똑같은 것 같다. 6개월짜리 주말드라마를 하기 위해 현장이라는 회사에 출근하고 선배들을 모셔야 하며 동료배우들과의 친구도 되어야 한다”면서 그는 “인간관계가 확립 되어야 좋은 드라마를 찍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회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직업을 연기하며 또 다른 사회를 배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배우-스태프-매니저-스타일리스트 등 팀들 안의 구성원과 리더 등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영화를 찍을 때 이질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묻자 “제일 중요한 것은 잘 읽히고 해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덕혜옹주는 책을 읽고 영화화 된다면 캐릭터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할이 탐나더라. 애잔하고. 무게와 깊이 있는 숭고한 삶을 산 덕혜옹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2017년 개인적인 목표에 대해 그는 “다작을 하고 싶다. 예능도 하고 싶다. '꽃놀이패'를 재밌게 보고 있다. 리얼리티에 참여해보고 싶다. 신동엽 씨 팬인데 술방을 함께한다면 영광이겠다”라면서 “달리고 싶은 한 해인 만큼 회사에도 이바지를 하고 싶고 보답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이다. 나도 그런 영화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윤여정 선배님이 나의 롤 모델이다. 많이 배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병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시민’은 하루하루 피곤한 나날이지만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소시민 구재필(한성천 분)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가 피투성이로 쓰러진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살인용의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지난 12일 개봉했다.

<사진=송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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