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웠다

<뉴시스>

내부 비리 혐의 지적 ‘소방 감찰 보고서’…檢, 연루자 ‘전원 불기소’

소방관들, “터무니없이 부풀려”…당국, “행정 부분은 문제 있었다” 일축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201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방관 장비 납품 비리 사건’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전원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당시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소방방재청(국민안전처 전신)의 내부 감찰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소방방재청은 일부 소방관들이 구조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특정 납품업체와 유착해 규격에 미달되는 소위 ‘가짜 장비’를 들여와 약 77억 원가량의 국고를 낭비한 것으로 추정·조사됐다는 내부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감찰 결과는 이후 경찰, 감사원,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해 2월 감사원 결과에 이어 지난해 12월 검찰 수사에서도 유착 비리와 같은 비위 행위는 없음이 밝혀졌다. 이에 사건에 연루됐던 소방관들은 “당시 내부 감찰이 크게 부풀려졌다”며 허탈함을 넘어 참담함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2014년 3월 말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의 내사로 시작됐다. 중앙119구조본부 내 직원들이 장비구매 등과 관련해 비위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소방방재청은 조사를 넘겨받아 같은 해 7월부터 9월까지 내부 감찰을 진행했고, 10월 논란의 불씨가 된 보고서가 작성됐다.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은 중앙119구조본부가 구조장비 등의 구매 과정에서 원가산정 부실, 납품물품에 대한 검사 소홀로 인해 76억 8,300만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낭비돼 납품업체와 유착 관계가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소방관들·업체 강력 반발

국감서 알려져 여론 뭇매

하지만 중앙119구조본부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중앙119구조본부 내에서는 당시 소방방재청의 내부 감찰 보고서를 두고 ‘소설’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연루된 납품업체도 강력 부인했다. 중앙119구조본부는 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한 공식 건의서를 제출했으나 당국은 경찰에 이미 의뢰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2014년 10월 소방방재청은 일부 관련자들을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고, 경찰은 2015년 8월 중앙119구조본부 직원 15명과 4명의 납품업체 관계자들을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이후 이 사건은 2015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부 자체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대형 이슈로 번졌다. 국정감사에서 소방관계자들의 비위 의혹이 제기됐고, 소방당국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여론은 ‘돈 없어서 장갑도 못 산다는 소방조직이 특수소방장비를 부풀린 가격에 구입해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경찰의 수사상황 통보서와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

감사원, 비위 사실 언급 無

검찰도 전원 불기소 결정

문제가 커지자 감사원은 소방장비 구매와 유지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지난해 2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장비 구매 과정에서 일부 규격과 다른 장비가 들어왔거나 장비 사용에 대한 교육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이로 인해 77억 원에 달하는 국고가 낭비된 비위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달 16일 검찰의 ‘전원 불기소’ 결정은 이 같은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은 사건에 연루된 소방관 등을 대상으로 업체와의 유착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계좌추적, 휴대폰 모바일분석, 통화내용 등의 수사를 벌였지만 장비 납품업체와의 유착이나 업무상배임 등의 범행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소방관 15명 중 4명은 장비 구매과정에서 집행 시한 내 예산 소진을 위해 장비 일부를 납품 확약만 받고 미리 대금을 지급한 뒤 사후 납품을 받았던 것에 대해서는 피의 사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납품 확약 이후 실제 모두 납품이 이뤄졌다는 점, 이 사건으로 인한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 소방공무원들로서 초범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기소 유예 결정을 받았다.

소방관들 “억울하다” 분통

당국 “행정적 문제는 사실”

검찰이 이들 전원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소방방재청 보고서가 애초에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았던 소방관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조직에 대한 회의감도 표하는 상황이다.

소방공무원 A씨는 “(2년여 동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조직에 대한 회의감, 배신감까지 든다”며 “다른 공무원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행정 처리 문제를 가지고 수사기관에까지 의뢰해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어떤 조직도 우선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그렇게는 안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A씨는 2014년 3월경부터 조사를 받기 시작했는데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진도에 급파돼 잠수 업무를 하던 상황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참사 이후에 조사 받겠다고 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최인창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장은 이에 대해 “급박한 국가 재난을 사력을 다해 수습하고 있었는데 얼토당토않은 예산 낭비 건으로 왜 무리한 감사를 진행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라며 “당시 감사가 국가 재난 사태보다 중요한 사안이었는지 지금이라도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소방관 B씨는 “이 사건으로 승진 심사 4번 누락, 정직 1개월을 받았다”며 “일부 행정 처리 문제로 이 같은 중징계를 받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내부 감찰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수사 기관에까지 (고발해) 큰 범죄를 저지른 양 부풀렸다”며 “(이로 인해) 개인도, 조직도, 국민도 피해를 봤다. 책임자들은 피해자 구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안전감찰담당관실 관계자는 “일반 형사 소송과 행정적인 부분은 차이가 있다. 사건 본질은 같은데 판단 기준은 다르다고 본다. 행정 부분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 않느냐”며 “내부 행정 절차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징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방관들의 유착 혐의 등을 지적한 보고서로 사안이 촉발돼 파장이 컸던 만큼 이 같은 답변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편, 사건 관련자들은 징계가 부당하다면서 법적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B씨는 행정법원에 징계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납품업체 일부도 무고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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