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0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월12일 귀국했다. 그는 인천공항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다음 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 총장의 “정치 교체”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정권 교체를 말하지 않고 ‘정치 교체’를 말하는 것은 박근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말로 들린다.”고 했다. 이어 “정권 교체로만 구시대,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대개조(大改造)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정치 교체”나 문 전 대표의 “정권 교체”만으로는 한국의 “4류 정치”를 벗어날 수 없다. 
반 전 총장의 “정치 교체”는 그가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 된다.”고 강조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패권과 기득권” 해체를 뜻한 것으로 보인다. “패권과 기득권”에 찌든 정치를 제거하지 않고서 “정권”만 교체한다면 정치적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는 말로 간주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정권은 매 7년 내지 5년 마다 계속 교체되었다. 하지만 “구체제의 적폐”는 물론 “패권과 기득권”에 갇힌 “4류 정치”는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오직 대통령과 그의 권력에 기생하며 사욕을 채우는 파당만 교체되었을 따름이다. 정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소모적인 정쟁에 휘말려 행정과 법치를 뒤틀고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문 전 대표 말대로 “정권 교체로만…국가 대개조를 이룰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선진 의회민주 국가로 올라섰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정권은 여섯 차례나 교체되었지만 아직도 “동물 국회” “식물 국회”로 난장판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정권은 교체되었어도 정치인의 후진적 “정치문화(학습되고 체질화된 정치의식)”는 바뀌지 않은 탓이다. 미국의 개브리얼 아몬드와 시드니 버바 교수는 “정치문화” 수준이 정치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했다. 법률과 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정치 문화”가 후진적이면 정치는 후진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문화“는 다른 게 아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국민의 법과 질서의식 결여, 권력의 사유화(私有化), 가부장제적 권위주의 의식, 대규모 촛불 시위나 떼법에 휘둘리는 기회주의적 정치권, 권력은 행사해도 책임질 줄 모르는 무책임한 정치, 여야 권력자 주변 참모들의 맹종과 아첨, 인맥·학연·지연 통한 파당 형성, 등의 고약한 악습을 말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후진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정권 교체”만으로는 “국가 대개조”를 이룰 수 없고 “구시대, 구체제의 적폐”도 씻어낼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선 문 전 대표의 “정권 교체”보다는 “패권과 기득권” 청산을 함축한 반 전 총장의 “정치 교체” 주장이 일부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선 “패권과 기득권” 청산을 강조한 반 전 총장의 “정치 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버바와 아몬드 교수가 역설한 대로 후진적 “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조해야한다. 
인간의 정치의식은 하루아침에 변화될 수 없고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개선되어 간다. 구미 선진 정치문화는 수세기에 걸쳐 진화되어 왔다. 그런데도 대권주자들은 “정치 교체”나 “정권 교체”만으로 모든 적폐가 밤 사이에 청산될 것처럼 말한다. 유권자들이 무식한 줄로 얕잡아보고 대선 득표를 위해 내뱉는 기망(欺罔)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권 주자들이 득표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못 믿을 존재로 경계한다. 문 전 대표는 17일에도 현재의 군복무 21개월을 “18개월까지는 물론이고 1년 정도까지도”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는 국민 안보는 안중에 없고 표만 보인다. 그런 그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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