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20일(현지시각)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전후 체제가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공약인 일자리 창출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안보무임승차론에 기초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군사적으로 대미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으로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한반도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자.

<뉴시스>

- ‘정치적 풍운아’에서 세계 ‘No.1’ 대통령으로 파란
- 군사적 대응 등 ‘대북 강경 기조’ 한반도 긴장 고조


미국 내 ‘정치적 이단아’에서 세계 최대 강국의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72세다. 트럼프 대통령하면 떠오는 것은 부동산 재벌 그룹인 트럼프 그룹의 회장이라는 점이다. 최근 포브스는 그의 재산을 37억달러(한화 4조2500억원 상당)로 발표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전 그의 연 수입은 2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34세 뉴욕 부동산업, 일약 스타덤에 올라

그가 3대에 걸친 부동산 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은 대학졸업 후다. 아버지는 브루클린과 퀸즈 일대에 중산층과 서민용 임대주택을 지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럭셔리한 부동산 개발에 집중했다. 트럼프는 뉴욕 한복판인 맨해튼에 뛰어들어 부동산 개발에 나섰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100만달러(약 80억원)를 종잣돈으로 출발했으니 금수저 중에 황금수저를 문 사나이인 셈이다.

호텔 재개발 사업에 뛰어든 트럼프는 34세에 뉴욕 부동산 업계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특히 뉴욕 5번가에 세운 68층 202M 초고층 호텔인 트럼프 타워를 세우면서 명성을 더했다. 1990년대에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어 4차례 파산을 한 경험도 있다. 1995년 그가 신고한 손실액만도 9억1600만달러(1조원 가량)나 됐지만 이를 바탕으로 18년간 소득세를 면제받는 특혜를 받았다. 대선 과정에서 세금 회피 의혹에 시달린 바로 그 사건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트럼프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대중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2004년 자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NBC 방송의 리얼리티 TV쇼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연봉 25만 달러의 트럼프 계열사 관리자를 채용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으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지원자에게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전부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높았던 트럼프는 자신의 호텔에서 촬영된 ‘나홀로 집에2’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1995년도에는 피자헛 TV광고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레슬링광으로 그는 프로레슬링 대회를 후원해 지난 2013년 2월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도에는 미스 유니버스 조직을 인수해 매년 미스 유니버스, 미스 USA 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그가 등장한 ‘플레이보이’ 성인영화 2편이 공개되는 등 그의 여성 편력이 알려지면서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부와 명성을 가진 트럼프가 정치에 관심을 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미 트럼프는 1988년 미국 유명 TV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에 출연해 “내가 대권에 도전하면 승리할 것”이라며 권력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트의 독특한 성향만큼이나 정치적 성향 역시 남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1987년 이전에는 민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정치 자금도 기부했다. 하지만 1987년에는 공화당으로 전향해서 공화당을 후원했다. 1999년부터는 공화당에 등을 돌리고 개혁당을 지지했다.

민주당->공화당->개혁당->독립당->공화당

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다시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2009년까지 지지하고 후원했다. 이후 정치 지원을 멈췄다가 2011년부터 이듬해까지는 독립당을 후원하기도 했다. 독립당은 백인우선주의에 따른 인종분리주의자 성향의 지지자들이 만든 당으로 1968년 미 대선에서 남부 5개주에서 승리했고 4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시 공화당 당원이 된 것은 2012년부터다. 그리고 4년 만에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데 이어 당선까지 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트럼프 인생사도 만만치 않다. 결혼은 3번해서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 1977년 이바나 젤니치코바와 결혼했다가 92년 이혼했으며, 이듬해 마를라 메이플스와 재혼했다가 6년 만에 헤어졌다. 23세 연하인 지금 부인 멜라니아 크나우스(38세)는 슬로베니아 모델 출신으로 2005년도에 결혼했다. 앞선 두 부인 역시 패션 모델 출신으로 상당한 미모를 가진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자녀는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 이바나와의 사이에서는 도널드 주니어, 에릭, 이방카 등 세 자녀를 뒀다. 마를라와의 사이에서 딸 하나, 멜라니아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가 있다. 장녀 이방가는 트럼트 최대 자산으로 미 정계에서 가장 핫한 여성으로 부상했다. 유대인과 결혼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는 유대인의 지지를 이끄는 고리로 통했다. 조지타운대를 2년간 다니다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로 옮겨 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트럼프는 평생 한 번도 공직을 맡거나 군복무를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이단아,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배경이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그러하듯 이민자의 후손이다. 1946년 미국 뉴욕주 퀸스에서 독일계 이민 2세인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와 스코틀랜드 태생의 이민 1세인 어머니 매리 앤 맥러드 트럼프와의 사이에서 3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트럼프는 문제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로 사고를 쳐서 교사에게 불려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음악 교사를 때려 퇴학당할 뻔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부모는 13살 때 말썽꾸러기 트럼프를 뉴욕 군사학교에 보내버렸다. 사관생도처럼 생활하며 공부하는 엄격한 기숙형 사립학교다. 엄격한 군사문화 학교 생활은 트럼프 당시 민감한 사춘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트럼프는 포덤대를 4학기 다닌 후 펜실베니아대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그는 펜실베니아대의 경영학교인 와튼스쿨에서 학부를 마쳤다. 1881년에 설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영학교로 세계 153개국에 10만 동문이 포진해 있다. 여기에는 미국은 물론 글로벌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오너가 포함된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부터 일런 머스크, 코헨그룹의 스티븐 코헨, 구글 CEO 순다이 피차이 등이 트럼프의 동기생들이다.

3대걸친 기업가 호평 인종 차별주의 우려

그의 인생사만큼이나 가족사 역시 독특하다. 3대에 걸친 기업가 정신으로 서부 개척과 주택 붐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해 억만장자가 됐다. 그의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트럼프(1869~1918)는 독일 서부 팔츠 지역에 있는 칼슈타트라는 작은 마을 출신이다.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독일이 통일된 지 14년 지난 1885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이발사로 6년간 일했다. 여기서 번 돈을 기반으로 식당을 운영하다 1894년 워싱턴주 몬테 크리스토로 옮겨 호텔을 열었다.

골드러시까지 겹치면서 호텔업에 성공했지만 불법적인 성매매 사업에 손을 대면서 단속이 심해지자 호텔을 팔고 독일 고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독일 당국에서는 탈세와 병역 기피 목적으로 미국으로 일시 이민갔다가 돌아왔다고 판단해 그를 추방했다. 할아버지 프리드리히가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하기 직전 퀸스의 부동산 개발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 가문의 부동산 사업의 모태다.

그의 사후 부인과 어린 아들은 ‘엘리자베스 트럼프&손’이라는 부동산 개발회사를 차려 남편의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13살 때 아버지를 잃은 장남 프레드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부친이다. 22살 때 부동산 개발과 건설업에 뛰어든 프레드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혼자 물건을 고르고 돈을 아끼세요’라는 광고문구를 앞세운 수퍼마켓을 열었다. 당시 슈퍼마켓은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떼돈을 버는 계기가 됐다.

이후 터진 2차 세계대전은 부친 프레드에게 본격적인 건설사업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전쟁이 끝나자 귀환 장병을 위한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이후 뉴욕시에 아파트 붐이 일자 아파트 건설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당시 그는 2만7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부동산 임대업도 함께 벌였다. 트럼프 그룹은 이때 세워졌다. 1968년 도널드 트럼트가 회사에 들어와 사업을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인 프레드는 검소하고 소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자식들에게 공사장에 떨어진 못이 있으면 주워 오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또한 자식들에게 “인생은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는 승부사 기질을 트럼프에게 물려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자수성가형인 그의 부친은 인종차별 성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아파트 임대를 해주지 않다가 1973년 민권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구두쇠이기도 한 부친은 세상을 떠나면서 2억5000만~3억 달러의 유산을 3남2녀의 자녀들에게 남겼다.

트럼프 부친, “인생은 경쟁” 적자생존 강조

트럼프의 형제 자매도 모두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고 있다. 큰누나인 메리앤은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냈으며, 작은 누나 엘리자베스는 체이스 맨해튼 은행 중역이었다. 큰형인 프레드는 알코올 문제로 40대에 숨졌다.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데 큰형의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생인 로버트는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 관리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경영인이다. 차남인 트럼프는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현재의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부와 명성을 통해 45대 미 대통령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어 한반도 역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선 최대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보호무역의 파고도 높아질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중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동에 나설 경우 G2갈등이 격화돼 한국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공산이 높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무임승차론’에 기초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까지 재협상에 나설 경우 한미 동맹 자체도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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