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만에 폐기될지 모를 ‘강한 달러 정책’

거래 규모 막대한 달러의 일방적 환율 변경 불가능
여의치 않으면 보호무역주의 규제 강화 밀어붙일 듯


‘강한 달러 정책’은 미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든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든 상관없이 지난 20년 넘게 미국 행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해온 통화운용의 대원칙이었다. 그런데 이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고 금융전문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그 방향이 더 뚜렷이 드러나겠지만, 현재로서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이 가장 유력한 근거다. 트럼프는 취임식을 불과 나흘 앞둔 지난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특히 중국 위안화를 비롯해 여타 주요국 통화에 비해 미국 달러가 “너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통화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기업들이 그들과 경쟁할 수 없다”면서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이튿날인 17일 국제 통화시장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날 달러화는 한 달여 만에 최저로 떨어져 주요 국가 통화들에 대해 1.3% 하락했다. 
물론 뒤에 다시 달러 시세가 회복돼 ‘강한 달러’ 기조가 이어졌지만 트럼프 발언과 연동돼 크게 출렁거린 달러 시세는 앞으로 달러가 어떤 가치 곡선을 그릴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만들었다.
“달러 가치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식으로 노골적인 달러 약화를 주문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 행정부를 지배해온 ‘강한 달러’ 입장에서 180도 바뀐 것이다. 부시 1기 행정부 시절의 폴 오닐 재무장관(재임 2000년 1월~2002년 12월)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강한 달러가 미국이 선호하는 통화정책이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폴 오닐은 월스트리트 같은 금융계 출신이 아니라 제조업을 배경으로 가진 인물이어서 약한 달러를 선호했던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강한 달러의 이득은 무엇인가? 강한 달러는 미국 경제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가장 뚜렷한 것은 달러가 강해지면 수입 상품의 가격이 내려가 소비자들이 더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강한 달러는 또 외국 기업들과 투자 펀드에 미국에의 투자를 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만약 달러가 다른 외국 통화에 대해 계속해서 강세를 보이거나 적어도 외국 통화들에 대해 가치를 잃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달러는 자연스럽게 보유하기에 더 매력적인 통화가 된다. 최근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다시 말해 미국 달러의 가치가 위안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상승하면서 중국 자본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강한 달러가 중국 자본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강한 달러는 또한 미국 재무부가 국채 발행을 통해 돈을 빌리는 비용을 낮게 유지시켜 준다. 다시 말해, 미국이 국채를 발행해 돈을 추가로 빌리거나 기존 국채의 상환을 연장할 때 달러가 강하면 달러가 약할 때보다 이자 비용을 덜 물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낮아진 금리는 더 싼 주택담보대출과 다른 값싼 대출들로 이어져 일반 소비자들에게 이득을 준다. 강한 달러가 마냥 미국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강한 달러에도 물론 해악이 있다. 강한 달러는 당장 “미국 수출을 늘리겠다”는 트럼프 공약의 실현을 어렵게 만든다. 강한 달러는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국가들에서 생산되는 그것들에 비해 더 비싸게 만든다. 반면 유로화, 엔화, 루블화, 원화 같은 외국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가치가 높아질 때마다 미국 수출품의 상대적인 가격은 내려가며 그렇게 해서 미국산 제품의 세계적 경쟁력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겉으로 보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약한 달러가 외국의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제조 부문과 서비스 부문의 더 많은 일자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미국에 좋다.
그렇다면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과거 강한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한마디로 말해 별로 한 일이 없다. 강한 달러 정책은 크게 보아 수십 년간 입으로만 부르짖어 온 미국의 통화 관련 입장이었을 뿐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직접 행동한 것은 거의 없다. 미국 달러화는 통화시장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리고 하나의 규칙으로서 미국 정부는 다른 세계적 통화에 대비한 달러화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직접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는 유세 과정에서 자주 중국을 지목해 ‘통화 조작국’, 즉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했다. 위안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함으로써 중국산 수출품을 싸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중국을 몰아세웠던 트럼프가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달러화 가치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할 수 있다. 
각국 통화의 환율, 즉 가치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이 원칙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직후 통화시장 안정을 위해 다양한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공동보조를 취한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근년 들어 그런 종류의 행동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 대목에서 “일정 정도의 인플레를 부추기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바닥 수준으로 오래 유지함으로써 사실상 미국 통화정책에서 약한 달러 선호를 드러내지 않았느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연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는 다양한 이유로 지속돼 왔다. 그 가장 뚜렷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심화될 때 세계인들이 안전 자산으로서 미국 달러화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트럼프는 과연 앞으로 약한 달러를 계속 선호하게 될까? 이것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그가 약한 달러를 밀고 나간다면 달러에 대한 세계 주요 통화들의 상대적 시세를 끌어올리기 위해 재무부로 하여금 그 통화들을 매입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일방적인 통화 조작을 금지하는 여러 협약에 가입해 있다. 
게다가 설사 그런 정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미국 달러를 위해 존재하는 방대한 규모의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외환시장에서 매일 5조 달러가 거래되며 그 가운데 방대한 다수가 미국 정부의 통제권 바깥에 있다. 이는 상황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미국 재무부의 일방적인 행동이 어렵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트럼프가 달러화 가치 변동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트럼프 입장에서 가능한 수단은 그가 유세에서 주장했듯이 미국 수출을 부추기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규제를 가하겠다는 위협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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