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채용 방식, 이렇게 허술할 수가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의사와 간호사는 병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최근 위조 면허증으로 병원을 차리거나 진료 행위를 하는 가짜 의료인이 늘고 있다. 인천에서는 한 남성이 의사면허를 빌려 비뇨기과를 차린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병원의 의사면허를 빌려 병원을 차린 뒤 무면허로 진료를 했다.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이들은 성병과 발기부전 등으로 찾아온 환자 2671명을 상대로 총 5942회에 걸쳐 진찰, 처방, 주사, 채혈검사 등 무면허 의료 행위를 자행했다. 지난달에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가짜 간호사’가 청주의 한 병원에서 수개월간 의료행위를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간호사는 30년 이상 가짜 면허로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 근무했다.

위조면허증으로 취업해 약물·주사제·수액제 투여까지
유사한 사례로 동료들 수차례 사기, 총 13억 원 가로채

청주지법은 지난달 28일 간호사 면허증을 위조해 사기행각까지 벌인 혐의(사기와 위조공문서행사, 업무방해, 의료법위반 등)로 A(56)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의 혐의 중 가장 주목되는 사항은 의료법 위반이다. 그는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청주의 한 병원에서 무자격 간호사로 근무하며 불특정 다수의 환자를 상대로 약물 투입, 주사제 주입, 수액제 투여 등 각종 무면허 의료행위를 자행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A씨가 정식 간호사로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면허증 위조와 병원의 허술한 채용시스템 때문이었다.

간호사 인력 부족
채용 방식 허술

최근 일부 병원의 간호사 인력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메르스 사태 이후 대형 병원들이 간호사들을 대거 채용했고 직업 특성상 업무 강도가 높다보니 간호사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한 병원의 채용 관계자는 “신규 채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를 합해서 9명이 기본이다. 하지만 간호 인력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전했다.

간호사의 퇴직으로 인해 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돼 정부 지원이 끊기는 병원도 대거 등장하고 있다. 또 병동 일부를 폐쇄하는 병원도 속출했다.

한 중소병원은 지난해에만 전체 간호사 250명 중 70여 명이 빠져나갔다. 그 결과 중환자실 두 곳 중 한 곳을 폐쇄하고 입원실도 줄였다. 환자를 돌볼 적정 수의 간호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병상 운영을 포기하는 실정이다.

친구 면허증 훔쳐
가짜 간호사 시작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A씨는 20대 시절부터 의학 관련 서적을 구해 독학으로 공부했지만 ‘초졸’학력에 제한이 걸려 간호사 자격시험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지난 1980년 무렵 우연하게 초등학교 동창생이 간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집을 찾았다. A씨는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친구의 간호사 면허증을 훔쳤고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사진 등을 붙여 여러 장 복사해 면허증을 위조한 뒤 ‘간호사’ 행세를 시작했다.

A씨는 위조한 면허증으로 1983년부터 서울, 경기 등지 병원에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취직했으며 장기간 간호사 생활을 했다. 또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는 충남 천안의 한 종합병원에서, 지난해는 청주의 한 외과 전문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해 환자들을 돌봐왔다.

이 병원의 인사 담당 직원은 위조된 간호사 면허증 사본에도 아무 의심 없이 A씨를 채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3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며 의심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독학으로 의학 전문지식을 쌓았기 때문이었다.

불법 의료 행각
투자 사기 알려져 들통

A씨의 불법 의료 행각은 옛 동료를 상대로 벌인 투자 사기가 들통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은행 대출과 사채 등으로 3억 원의 빚을 져 독촉을 받던 A씨는 과거 함께 일하던 동료 B씨에게 접근했다.

A씨는 2012년 1월 천안의 한 병원에서 4년 동안 일하며 만난 B씨에게 “내 친구가 금융감독원에 근무하는데 친구를 통해 내부자 거래를 하면 1년 뒤 큰돈을 벌 수 있으니 투자하라”고 속여 2015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모두 21차례에 걸쳐 투자금 7690만 원을 B씨로부터 가로챘다.

하지만 A씨는 약속한 기간이 됐을 때 수익금은 물론이고 원금조차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법대로 하라는 식의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고, B씨는 곧 바로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이렇게 A씨의 가짜 간호사 신분과 사기 행각이 드러나게 됐다.

B씨는 고금리 대출까지 받아 A씨에게 투자금을 건네 빚 독촉에 시달리며 심한 우울증까지 앓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조사 결과 A씨는 유사한 사례의 사기수법으로 총 13억 원을 가로채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을 선고받기도 한 전문 사기꾼으로 밝혀졌다.

법원은 “피해자의 신뢰를 악용한 계획적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동종 범행을 반복한 점 등을 고려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유사한 수법의 사기 범행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고,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은 전력도 있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현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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