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김종필·전두환도 탐냈던 고미술품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해 말 검찰은 25년간 논란이 됐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미 천 화백의 유족들과 최고의 과학 감정 기술을 자랑하는 프랑스 감정회사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광학연구소가 “미인도는 위작”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을 조사하고 있는 특검에서 청와대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언을 확보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안 전 수석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IT업체 대표 A씨가 대기업 납품 등을 청탁하기 위해 보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눈길을 끄는 점은 미인도와 훈민정은 해례본 모두 정권 또는 권력자에게 상납된 물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문화재 상납이 암암리에 이뤄졌다. 일요서울에서는 문화재와 얽힌 상납사를 알아 봤다.  

상납 받은 문화재 20~30년 뒤 감정 의뢰, 대부분 ‘가짜’
청와대에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영인본일 확률 높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받았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영인본일 확률이 크다는 여론이 많다. 택배로 받았다는 정황부터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검찰도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영인본은 원본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복제한 인쇄물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도 천 화백이 지난 1977년경 중앙정보부 한 간부에게 선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인도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선물로 건네졌다는 게 정설이다.

천 화백은 순수한 선물로 한 간부에게 선물했을지 모르지만 이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넘어가기까지는 결국 청탁 또는 상납의 가능성이 크다. 

김재규 소유 ‘미인도’
상납 선물일 수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다. 신군부는 김 전 부장을 대통령 살해혐의로 체포했고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부정축재의 근거로는 김 전 부장의 자택에서 발견된 백여 점의 고미술품과 귀금속이었다.

결국 김 전 부장의 모든 재산은 국가에 환수됐다. 기부채납형식이었지만 강제 압수나 마찬가지였다. 신군부가 환수한 김 전 부장의 환수재산 목록은 총 다섯 장으로 155개의 압수 물품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이 안에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들어있었다. 이때 환수된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검찰은 이 기록을 바탕으로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전 부장의 집을 방문해 미인도를 직접 봤던 일부 미술전문가의 증언도 검찰은 확인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만으로 미인도의 진위 여부를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도 지난 1월 31일 출연한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중앙정보부의 오모씨가 김재규한테 상납했다는 걸 딱 보는 순간에 아, 저건 위작이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라며 위작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위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검찰과 과거 신군부가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 전 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고미술품 등이 진품이며 고가인 점을 부각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에게
문화재 상납 많이 해


황평우 소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 상납사를 밝히기도 했다. 과거 경잘서장과 국정원 직원이 자신에게 문화재 진위여부를 묻는 의뢰를 해 왔다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가져오는 문화재나 작품들이 100% 위작이었다고 황 소장은 말했다. 

황 소장은 “이런 권력에 있었던 사람들이 권력 정점에 있었던 분들한테, 도굴이나 도난했던 사람들이 검거됐을 때 실제로 보면 많은 상납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감형을 받기 위해 상납을 한다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상납을 받은 사람들은 끙끙 앓는다고 했다. 누구에게 확인할 방법도 없고 감정을 의뢰했다가 작품을 알아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3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퇴직 후에 감정을 의뢰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위작이었다고 말했다.

오구라에서부터
김종필, 전두환까지


황평우 소장은 2013년 8월 15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오구라컬렉션’으로 알려진 오구라 다케노스케를 소개하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재 상납사 일부를 알리기도 했다.

황 소장은 1981년 오구라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아들이 동경국립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재가 1000점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1000점 중 하나도 환수해 오지 못했는데 빼앗아 온 물품이 400점이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오구라는 1960년대 초반까지 대구에 저택이 있었다. 그 저택에는 국내에서 불법으로 발굴한 다양한 문화재가 일부 남아 있었는데 1964년 혁명군부 당시 방첩대장이 그 사실을 알고 전부 압류를 했다. 당시 방첩대장이 바로 김종필 전 총리다.

황 소장은 당시 이 압류품들은 공화당 창당을 하면서 여당, 야당에 선물로 줬다고 전했다. 그러다 1982년 전두환 신군부 때 김 전 총리는 이후락 등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전 재산을 몰수당했다.    

황 소장은 그렇게 몰수됐던 문화재 일부가 다시 등장했다고 했다. 바로 검찰의 시공사 갤러리 압류 때다. 황 소장은 김 전 총리로부터 몰수된 문화재 일부가 정친인 등에게 상납됐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 몰수하고 이후 그의 아들에게까지 넘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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