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정파 구분없이 나라의 미래 고민한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바야흐로 싱크탱크 전성시대다.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여기저기서 싱크탱크 출범 소식이 이어진다. 싱크탱크의 원조는 미국이다. 보수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진보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가 대표적이다. 두 재단 모두 기부를 통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들의 영향력은 미국 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만큼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싱크탱크는 상황이 다르다. 정치색이 너무 짙다 보니 특정한 한 후보만을 위한 정책 연구소 성격이 강하다. 자연스레 운영도 대선 기간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한국형 싱크탱크’를 표방한 ‘여시재’가 지난해 9월 공식 출범했다.

그런데 참여한 인사들 면면이 눈에 띈다. 정계, 재계, 학계 가릴 것 없이 전문가라 불리는 유명 인사들이 모두 참여했다.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50대 잠룡’으로 불리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여시재의 정체가 궁금하다. 

개인 위한 재단이 아닌 나라를 위한 재단
미래 정치 지도자 위한 정책 화수분 역할


‘여시재(與時齋)’는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란 뜻이다. ‘범익지도 여시해행(凡益之道 與時偕行)’은 역경의 64괘 중 42번째인 익(益)괘 단전(彖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구절의 뜻은 ‘무릇 도를 깨달아 만사를 알더라도 행함에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즐겨 쓰던 구절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5년 12월 16일 열린 세계 인터넷대회 개막식, 양안정상회담, 영국 런던시장 환영만찬 등에서 사용했었다.

기업인, 정치인, 학자
전문가들 총 망라


‘한국형 싱크탱크’ 여시재를 만드는 데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큰 힘을 보탰다. 재산의 절반인 4400억 원을 출연했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한 금액은 알 수가 없다. 한샘은 이미 한샘드뷰라는 연구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 연구재단을 만든 건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소리다.  

현재 조 회장은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순수한 기금 출연자로서 여시재를 든든히 지원할 뿐이다. 국내 많은 싱크탱크들은 설립자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여시재는 예외다.

여시재는 통일 한국을 준비하기 위한 싱크탱크가 될 확률이 높다. 재단은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한국’ ‘도시의 시대’ ‘신문명’을 주요 연구과제로 설정하고 연구와 토론 등을 해 오고 있다. 특히 통일로 가는 길보다 통일 이후의 국가체계와 경제 재편에 대해 연구한다는 방침이다. 

여시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싱크탱크 참여 인사 면면이 화려하기 때문이다. 여시재 이사장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맡고 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현종 전 UN대사 등이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조정훈 전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지역대표는 상근부원장, 이원재 전 희망제작소 소장은 기획이사다.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박병엽 팬택 창업자,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회장 등도 참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21일 열렸던 출범 공식 기자간담회장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김부겸 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소위 ‘50대 여야 잠룡’으로 불리는 인사들이다. 

국제·통일·정치 문제 
실질적 대안 제시


당시 참석자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여시재의 활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헌재 초대 이사장은 “정파를 뛰어넘어 여러 현안에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솔루션 탱크가 되겠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면면에서 보시겠지만 여야를 떠나 정치지도자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며 “공유와 협업이 바로 시대의 정신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가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 갈림길에서 이 것을 미래·약속의 땅으로 만드는 건 바로 우리의 몫이다. 특히 각국에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안 지사는 “여야와 정파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한 자리 모여 국가 미래를 위해서 함께 힘을 모으는 게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모습이라 생각한다”며 “정파를 뛰어넘어서 국가 미래를 향해서 힘을 모아나가겠다는 저희 세대의 다짐, 이것을 이번 포럼 통해서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고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한중일과 아셈(ASEM) 국가들이 끊임없는 길항관계에 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새로운 아시아 협력질서로 만들어내고, 아시아권역의 번영과 평화 이끌어내는 일이 지난 20세기 불행했던 할아버지·할머니의 역사 뒤따르지 않으려는 후손의 노력”이라며 “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대한민국 젊은 정치지도자의 노력이라고 봐주셨음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근 북핵 문제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봤다. 정말 답답했다”며 “다른 게 답답한 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결정될 중요 문제에서도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이견만 존재하고 문제를 풀어보려는 노력이 부족할까”라며 “남 지사·안 지사, 김세연·나경원·김영춘 의원 이런 분이 우리 미래를 한 정파의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의원도 “지난번에 저희가 같이 중국에 방문해 사드 문제 얘기할 때도 김부겸 의원께서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중요한 발언을 해주시는 걸 보면서 제가 제일 안타까운 건 통일정책이 정권 바뀔 때마다 바뀌는 것”이라며 “보수정권 내에서도 바뀐다. 이런 통일정책으론 절대 통일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요한 건 여야를 넘어서 국민공감대를 만들어가는 일관된 통일정책이다. (여시재가) 그걸 만들기 위한 좋은 대화의 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고 언급했다. 

당시 이들이 말했던 통일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 등은 여시재의 주요 연구주제가 됐다. 여시재는 근시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통일한국의 미래를 제시하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념, 정파의 차이를 넘어 통합이 필요하고 그 장을 재단이 열겠다는 생각으로 판단된다.  

정책 만들고 집행할 
사람들 위한 재단


재단은 보통 연구과제를 전달할 대상이 정해져 있다. 그게 일반인이 될 수도 있고 기업인 또는 정부가 될 수 있다. 여시재는 그 대상을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사람들로 정했다. 젊은 정치인 잠룡들로 분류되는 50대 정치인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들을 일부러 영입한 것은 아니다. 재단의 취지에 공감해 자연스럽게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헌재 이사장도 여시재를 통해 실질적인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만큼 자신들의 연구과제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여시재 이사회는 한 달에 한번 ‘대화당’이라고 이름이 붙은 한옥 건물에서 진행된다. 보통 새벽 6시 30분쯤 되면 이사진들과 연구진들이 도착하고 강의와 토론이 진행된다. 일반적인 재단 이사회 풍경과는 다르다. 재단 운영진 명단에 이름만 올리고 활동은 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실제 연구를 진행할 상근 연구원들 구성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규모만 키우기보다는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전공의 상근연구원들이 다양한 주제의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상근연구원은 20여 명이다.

여시재는 연구 결과 및 지식을 담기보다는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기 위한 재단이다. 새로운 지식플랫폼을 만든다는 계획으로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 권력 위한 
싱크탱크는 지양


여시재는 잠룡으로 분류되는 유력 정치인들이 많이 참여했지만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이념적인 색채를 띠지는 않을 전망이다. 재단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여시재는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 안에 재단이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가장 효율적인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재단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여시재에 젊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는 재단에서 제시한 대안과 해결책을 기초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여시재는 개인을 위한 재단이 아니다. 재단을 만든 한샘의 조창걸 명예회장도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재단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재단에 근무하면서도 직접 조 회장을 대면한 직원이 흔치 않은 이유다.

여시재를 정치권력을 위한 싱크탱크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재단의 운영 형태나 연구과제들을 살펴본다면 오해는 금세 풀린다. 오히려 여시재는 국가적 아젠다를 설정하고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여시재는 여야 등의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교류가 가능하다. 정치현장에서는 정당에 따라 이념에 따라 서로를 공격하고 헐뜯는 게 다반사다. 옳은 정책이더라도 소속 정당의 이익과 이념에 따라 반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시재는 국익이 우선이다. 통일한국을 위해 어떠한 정책이 옳은지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재단은 연구하고 결과물을 내 놓을 계획이다. 결과물을 잘 이용하는 건 정치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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