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까지 약 10㎞…대규모 차량·인력 투입 예고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본점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현재의 본부를 개보수하기 위해 3년간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머무를 둥지는 태평로의 삼성 본관이다. 한국은행의 주요부서가 이동하는 만큼 본관 역시 업무에 맞게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앞으로 4개월간 내부공사가 진행되며, 완료 후 5~6월쯤 순차적으로 이 건물에 입주할 예정이다. 문제는 현금의 이동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조 원 규모의 현금다발은 강남 본부를 비롯한 수도권 본부로 분산된다. 현금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임시 본부로 삼성 본관을 택한 건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이 서초사옥으로 이동해 공실이 발생해서다. 한은은 을지로 삼성화재 사옥과 태평로 본관을 두고 고민하다가 본관으로 최종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에 따라 한은은 전체 28층 건물 중 1층부터 18층까지를 사용하게 된다. 임차 계약은 이달부터 2020년 4월까지 3년간이며, 임차 기간은 상황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이주열 총재와 금융통화위원, 부총재보 등 주요 고위직은 물론 본관에 입주하고 있는 통화정책국, 조사국, 금융시장국, 금융안정국, 인사경영국 등 본부 주요부서 직원 전원이 입주해 집무실로 활용할 방침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회의도 태평로 건물에서 진행된다. 2020년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부의 개보수 공사가 완료되면 다시 돌아오게 된다.

수조 원대 현금
어떻게 운반할까


설립 이래 첫 이전인 만큼 각종 금융결제가 이뤄지는 전산시스템부터 보안용 문서, 지하 금고의 현금(미발행화폐) 등 처리해야 할 작업이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현금 수송을 어떻게 하느냐다. 여타 문서와는 달리 현금은 도난이나 분실, 범죄에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옮겨야 한다.

금고 관리와 화폐 수급 업무를 총괄하는 한은 발권국은 삼성본관에 입주하지 않고 강남본부 건물로 이전한다.

한국은행 금고에서 강남본부까지 직선거리는 8.5㎞, 가장 가까운 길을 이용해 차량이동하면 9.7㎞다. 택시비 약 1만 원가량(주간 기준)의 거리다.

물론 모든 현금이 강남본부로 향하는 건 아니다. 관리의 편의성 등을 고려해 수조 원에 달하는 한은 지하 금고 현금은 강남을 비롯해 수원, 인천 등 수도권 한은 지역본부 금고에 분산 보관한다.

은행권에 따르면 일단 일정부분의 현금은 이미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 관계자는 “철저한 보안 아래 이뤄진 분산작업으로 현금은 상당부분 이미 옮겨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금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아직도 남아있는 현금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10㎏짜리 사과상자에 5만 원권 지폐를 가득 채우면 12억 원가량이 된다. 이송 대상 화폐는 사과상자 1만개 분량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범죄 노출 가능성에
‘007 작전’ 방불


한은의 현금수송차량을 이용한다면 수십 대가 동원돼야 하며 경비 인력을 포함하면 상당한 규모의 이송 작전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다. 앞서 지난 2012년 한은 제주본부가 신축 건물로 이사할 때도 막대한 규모의 현금을 옮기는 데 대규모 경비인력을 동원한 바 있다.

화폐량뿐 아니라 이송 가운데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휴일이나 밤 시간대를 이용해 운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하지만 분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어느 시간대에 이송하더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게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CCTV나 차량용 블랙박스 등이 감시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측에서도 이송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시로 화폐 유출입이 이뤄지는 점을 이용해 소규모씩 여러 차례로 나눠 이송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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