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시대·공간 넘는 세대의 공감이다


10년 전 일이다. 지난 2000년 도심의 거리에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댄스음악이 장악한 거리의 레코드점에 차가우면서 염세적이고 묘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노래 하나가 울려 퍼졌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수 조성모가 포크 듀엣 시인과 촌장의 3집 앨범 ‘숲’ 의 수록곡 ‘가시나무’ 를 리메이크해 전국적인 히트를 쳤다. 발표한지 12년이나 지나 이 곡은 21세기 젊은이들에게 다시 회자되며 파란을 일으켰다. 한 인간의 내면속 혼돈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종교적으로 풀어낸 이 곡의 원작자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씨.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고 불린다. 한국 대중음악과 CCM 분야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일요서울]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큰 문화유산을 남긴 시인과 촌장 하덕규씨의 근황을 그를 통해 직접 들어봤다.

“학생들이 좋은 음악가로 성장해 이 시대를 치유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음악을 할수 있도록 도전의식을 주고 있습니다.”

하덕규씨는 지난 6월2일 오후 [일요서울]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워낙 언론에 모습을 잘 비추지 않는 성격이라 기자와는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지금도 방송 등 언론매체로부터 출연 요청이 종종 들어오지만 모두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본지와의 인터뷰도 “잘 아시겠지만 조용히 지내고 싶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기자는 할 수 없이 과거 음악계의 ‘인연’을 털어 놓은 끝에 그를 인터뷰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본명보다 시인과 촌장으로 더 알려진 하씨.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백석대학교 기독교실용음악학과 교수직을 맡으며 후배 음악인 양성을 하고 있다. 벌써 햇수로 9년째다. 하씨에게 대학에서 강의하니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대학교수로서의 꿈은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진정성 있는 음악인들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씨는 우리나라 기독교실용음악 분야를 학문적으로 개척한 인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는 교육자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도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하씨는 2006년 겨울 돌연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지난해 2월 귀국할 때까지 미국 내에서 한인장로회신학대학, 풀러(feuller)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그 결과 지난 3월9일 워싱턴DC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지금은 전국의 교회를 돌며 초청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특정 교회에 연고를 두고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가 아닌 음악목사다. 이렇게 하씨는 시인과 촌장 이후 교육자와 음악목사로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시인과 촌장의 활동 재개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답변은 부정적이다. 하씨는 시인과 촌장 활동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건 힘들거 같다”고 했다. 대신 새앨범 소식을 전했다. 데뷔 30주년 기념앨범이다. 하씨는 내년 발매를 목표로 30주년 기념앨범을 제작하고 있고, 현재 곡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때 그는 처절한 자기 내면의 상처를 술과 담배, 마약으로 자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기독교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복음하며 누구보다 건강한 음악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음은 시인과 촌장 하덕규씨와의 인터뷰 대화내용 전문이다.


-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어떤가.
▲ 진정성 있는 음악인들로 자라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하고 있다. 보람이 있다.

- 올해로 몇 년 째 대학 강단에 서는 건가.
▲ 9년째다.

- 계기가 있나.
▲ 학교 측에서 신생학과가 생겼는데 내가 1990년대부터는 기독교 적인 색채를 담아서 노래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필드에 있는 사람을 교수로 영입 한 것이다. 기독교 실용음악이라는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학문화 되는 첫 번째 전공 이다.

- 대학 교수로서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
▲ 대학교수로서의 꿈은 학생들이다. 요즘 시대가 물질과 성공이 최우선시 되는 시대인데 이런 시대에 인간의 존재 가치, 생존가치가 무엇인지 노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대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을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

- 2007년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출연이후 근황을 찾기 힘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 그동안 학교에 있었다. 교회에서는 노래를 계속했고 노래 초청공연들을 많이 했다.

- 미국에서 지냈다는 말을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어떤 일을 하면서 지냈나.
▲ 신학공부를 했다. 2006년 겨울에 가서 2009년 2월에 귀국했는데 미국 내 해외한인장로회신학대학과 풀러(feuller) 신학교 등 2개 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올해 3월9일 워싱턴DC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교회다니는 목회활동이 아니고 음악목사가 된 것이다.

- 새 앨범 작업 계획은 있나.
▲ 내가 1981년도에 데뷔했는데 내년이 내 음악생활 30주년이다. 30주년 기념음반 내려고 작곡중에 있다. 곡은 좀 써놨다.

- 시인과 촌장이 다시 활동 재개할 가능성은 없나.
▲ 그건 힘들거 같고 하덕규음악 30주년 해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 함춘호 선생님과는 여전히 잘 지내나.
▲ 가끔 보기도 하고 연락도 한다.

- 좋은 음악인이 되기 위해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후배 음악인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그런 질문과 또는 애정을 가지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계속 남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음악을 정말 사랑해서 하는 것과 음악을 통해서 얻을 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시장지향적인 음악과 인간지향적인 음악과는 나중에 다른 평가가 내려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후배들이나 제자들에게 후자의 음악인이 되기를 권하고 있다. 과연 진정성이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평생 질문하면서 음악 해야 한다. 내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지금도 아침에 옥상에서 질문하고 내 음악이 과연 이 시대 속에서 타당하고 사람들의 삶속에 적합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나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작업이 늦다.

[전성무 기자] lennon@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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